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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통점재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올라가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 구간에 특별히 멋진 풍경은 없나 봅니다.
 통점재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올라가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 구간에 특별히 멋진 풍경은 없나 봅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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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t win an argument."

직역하면, "당신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가 됩니다. 여기서 '당신'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당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결코'라는 낱말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 문장은 이렇게 풀어집니다.

"누구도 결코 논쟁에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영어를 지지리도 못하는 제가 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배운 문장인데,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내용에 100% 공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놓고 저는 친구들과 논쟁을 자주 벌였습니다. 옳고 그름을 꼭 가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제 성격 탓이었습니다. 논쟁이 시작되면 나름대로 치밀한 논리로 친구들을 밀어붙였습니다. 고성이 오가고 감정이 격해지는 논쟁의 결과 제가 옳았음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도 열이면 여덟, 아홉은 제 주장이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논쟁에서는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고...

산줄기를 따라가는 맥 산행은 경치를 본다기보다는 생각에 잠기며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아닌가 합니다.
 산줄기를 따라가는 맥 산행은 경치를 본다기보다는 생각에 잠기며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아닌가 합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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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논쟁이 끝난 다음에 친구들이 "그래 네 말이 맞다"며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제 말에 수긍하면서 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호의를 갖게 됐을까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대개 "그래, 네 말이 맞아서 기분 좋냐?"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저를 시기하고 적의를 품기도 하고 틈만 나면 반격의 기회를 노렸습니다. 최악의 상황이긴 하지만 본인 휴대폰에 제 전화번호를 수취 거절로 걸어 놓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겨도 결코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옳고 그름을 굳이 따져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집니다. 그리고 세상일이라는 게 옳고 그름으로 딱 나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 사람 처지에서 보면 옳은 일이 저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옳게 인식됐던 일이 지금은 옳지 않은 일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은 상대적인 것이고 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낙동정맥 산길이 무덤 옆을 지나갑니다. 햇볕이 잘 드는 무덤 주위는 들꽃이 좋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낙동정맥 산길이 무덤 옆을 지나갑니다. 햇볕이 잘 드는 무덤 주위는 들꽃이 좋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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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t win an argument."

논쟁을 벌여 이길 수는 없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아 의견이 다른(정치 분야 등) 상대방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렇습니다.

①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들어 줍니다(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어 주면 더욱 좋습니다).
② 긍정적인 표현을 곁들입니다("아~ 그래요?" "네, 그렇지요" 등).
③ 적당한 시점에서 "그런데" 하고서 제 의견을 조심스럽게 얘기합니다.

그걸로 끝! 더 이상의 욕심은 내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다시 반격해 오더라도 그냥 듣기만 할 뿐 반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말에 제가 여간해서는 생각을 바꾸지 않듯이, 제 말을 듣더라도 상대방은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얘기할 때 상대방은 제 얘기를 듣고 있지 않습니다. 상대는 대부분 그 시간에 제 말을 반박할 소재를 찾고 있을 것입니다.

가장 흔한 참나리 말고도 나리꽃은 종류가 참 많습니다. 꽃이 하늘을 향하면 하늘나리, 땅을 보고 고개를 숙이면 땅나리, 어중간하면 중나리입니다. 요놈은 중나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흔한 참나리 말고도 나리꽃은 종류가 참 많습니다. 꽃이 하늘을 향하면 하늘나리, 땅을 보고 고개를 숙이면 땅나리, 어중간하면 중나리입니다. 요놈은 중나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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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에서 승리자는 없습니다. 논쟁이 격해질수록 패배자만 늘어 갈 뿐입니다. 이제는 논쟁을 피하고 좀 동글동글한 모습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두 팔을 벌려 품어 주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부딪치고 반박하고 소리 지르고 종주먹 휘두르고 핏대 세우는 일은 이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결심 16/ 논쟁에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논쟁을 벌이지 않겠습니다.

산은 다투지 않습니다. 어머니처럼 포근하고 너른 품으로 언제나 우리를 맞아 줍니다. 그래서 오늘도 산으로 향합니다.

이번 산행은 지난번처럼 통점재에서 시작합니다. 지난번에는 통점재에서 남쪽으로 걸어갔지만, 이번에는 북쪽으로 걸어갑니다. 이번에 산행하는 구간에 특별히 이름이 난 봉우리나 탄성을 터뜨릴 만큼 풍광이 좋은 곳은 없습니다.

발은 산줄기를, 마음은 생각의 줄기를 따라가

근처에 '간장'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고개 이름이 '간장현'이 됐습니다. 산이나 고개 이름을 짓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근처 마을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근처에 '간장'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고개 이름이 '간장현'이 됐습니다. 산이나 고개 이름을 짓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근처 마을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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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맥이나 지맥 같은 산줄기를 따라가는 맥 산행은 멋진 경치를 보러 가는 산행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를 터벅터벅 걸으며 바깥보다는 저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발걸음은 산줄기를 따라가지만, 마음은 생각의 줄기를 따라갑니다. 과거로 돌아가 회한에 젖기도 하고 미래로 나아가 가슴 벅찬 희망을 품기도 합니다. 분주한 세상사에 잠시 밀려났던 생각의 날개를 펼치며 사람도 만나고 생각의 여행도 떠납니다.

산행은 여럿이 해도 혼자 걷는 일, 깊숙한 내면으로 침잠해 갑니다. 그 시간이 참 행복하니 그 행복을 느끼려고 자꾸만 산으로 들어가나 봅니다.

'간장'이라는 마을 위에 있는 고개 '간장현'을 지나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던 산줄기가 805봉으로 올라갑니다. 805봉은 해발 805m 봉우리를 편의상 부르는 이름입니다. 지도에는 산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데, 나무에 '유리산'이라는 이름이 적힌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근처에 '유리'라는 마을도 없는 거로 봐서 최근에 지은 이름 같습니다.

특별한 이름 없이 805봉으로 불리다가 근래에 '유리산'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 유래까지 알 수 있다면 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름 없이 805봉으로 불리다가 근래에 '유리산'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 유래까지 알 수 있다면 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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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리산이란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요? 또 유리산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근래에는 이름 없는 봉우리에 자신이 지은 이름을 적어 넣은 팻말을 붙이는 분을 보기도 합니다.

민법 252조 1항에는 "무주의 동산을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주인 없는 물건은 먼저 침 바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입니다(이 세상에 주인 없는 물건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근래 새로 생겨나는 산 이름

주인 없는 물건은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이듯이 이름 없는 봉우리는 먼저 이름을 짓는 사람이 우선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름만 지어 놓는다고 해서 저절로 이름이 붙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고(유래라든지 인근 지명이라든지), 또 그 이름이 널리 불릴 수 있게 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봉우리에 팻말도 달고 블로그 같은 매체를 통해 산을 찾는 이들에게 이름을 알리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산 이름이 고착화되면 국토지리정보원 같은 데서 정식으로 공인하게 될 것입니다.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이라는 게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고, 계층마다 쓰는 용어도 다릅니다(예를 들면 요즘 청소년들이 쓰는 낱말 중에 도대체 그 뜻을 알 수 없는 게 많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그 뜻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널리 쓰이게 되면 적절한 시점에서 국립국어원이 표준어로 인정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산 이름을 짓는 일은 쉽겠지만, 그 이름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기까지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질고개로 뚝 떨어지기 전 산불 감시 초소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멀리 주왕산국립공원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다음번에 저곳을 지나가게 됩니다.
 질고개로 뚝 떨어지기 전 산불 감시 초소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멀리 주왕산국립공원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다음번에 저곳을 지나가게 됩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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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산을 지나 오르락내리락을 계속하면서 고도를 조금씩 낮춰 가던 낙동정맥은 멀리 주왕산 풍경을 조망한 다음 질고개로 뚝 떨어집니다. 질고개는 청송군 부남면과 부동면을 잇는 고개입니다. 땅이 하도 질어서 질고개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지금은 포장도로로 바뀌었습니다. 오랜 가뭄에 땅이 밀가루 같은 먼지를 날리는 거로 봐서 비가 좀 내리면 고갯길 양쪽 산기슭은 진창으로 변할 것 같기는 합니다.

<낙동정맥 16구간 종주>

날짜 : 2017년 6월 24일(토)
위치 : 경상북도 포항시, 청송군
날씨 : 구름 많고, 청송군 한낮 기온은 30도 안팎
산행 거리 : 17.6㎞
소요 시간 : 5시간 45분
산행 코스(북진) : 통점재 → 간장현 → 유리산 → 질고개 → 평두산 → 피나무재
함께한 산악회 : 기분 좋은 산행

청송군 부동면과 부남면을 잇는 질고개입니다. 땅이 너무 질어서 질고개인데, 지금은 포장도로가 되어 진창길의 자취는 이름 속에만 남았습니다.
 청송군 부동면과 부남면을 잇는 질고개입니다. 땅이 너무 질어서 질고개인데, 지금은 포장도로가 되어 진창길의 자취는 이름 속에만 남았습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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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고개에서 올라선 낙동정맥은 여전히 오르막내리막을 이어 갑니다. 숲이 하늘을 가려 음습하고 바람이 잔잔한 곳에서 아주 귀찮은 놈을 만납니다.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하루살이입니다. 이놈은 다른 곳도 아니고 꼭 눈알 바로 앞에서 얼씬거리며 산길 걷는 이들을 괴롭힙니다. 손을 휙~ 휘두르면 잠깐, 아주 잠깐 비켜났다가 바로 달려듭니다. 비 올 때 작동시키는 자동차 와이퍼처럼 연신 팔을 휘둘러야 하지만 그 일 역시 번거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좁쌀만 한 놈 때문에 당하는 크나큰 괴로움

눈앞에서 아른거리던 하루살이는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눈 속으로 폭 빠져 버리고 맙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 군함을 향해 돌진하던 가미카제 특공대처럼 눈 속으로 들어와 자기 목숨을 던져 버립니다. 이놈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영리한 제 친구 하나는 이놈들이 이산화탄소를 좋아하는 게 아니냐는 가설을 세우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코 근방에서 얼씬거려야지 왜 눈으로 달려드는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놈들은 산 중의 왕자 호랑이에게도 달려들곤 했나 봅니다.

"이놈은 호랑이 눈곱을 향해 돌진했다. 눈꺼풀이 간질거리는 통에 호랑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호랑이가 눈을 떴는데도 이놈은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호랑이의 눈 속을 파고들 기세로 달라붙었다가 호랑이가 고개를 흔들면 목덜미 뒤로 잠시 도망가 숨곤 했다. 이놈의 공격은 집요했고, 그때마다 호랑이는 앞발을 휘휘 저어 쫓았다. 그러다가 호랑이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앞발에 힘을 주고 단단히 발톱을 세운 다음, 호랑이는 이놈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토끼를 낚아챌 때보다 빠른 속도였다. 그런데 발톱 끝에 찍혀 나온 것은 이놈이 아니라 호랑이의 두 눈알이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놈을 '호랑이눈깔뺀파리'라고 불렀다 한다."

안도현 시인의 <발견>이라는 짧은 글 모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놈의 몸은 좁쌀만 한데, 이놈에게 당하는 괴로움은 좁쌀 한 가마는 될 것이라고 시인은 투덜거립니다. 저 역시 이놈들에게 꽤 괴롭힘을 당하며, 제 눈 속에서 대여섯 마리를 수장시킨 다음에야 바람 부는 봉우리에 올라서면서 이놈들에게서 간신히 벗어납니다. 불편했던 산행이 다시 편안해집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개망초. 원래는 북아메리카에서 들어온 종인데, 산과 들에서 자주 만나니 토종보다 더 친숙한 느낌입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개망초. 원래는 북아메리카에서 들어온 종인데, 산과 들에서 자주 만나니 토종보다 더 친숙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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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아무나 산을 찾을 수 있지만, 조선 시대에는 관리나 양반처럼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이들이 명산을 찾아가서 머물다 오곤 했습니다. 그때는 원시림처럼 우거진 숲에 길도 잘 나 있지 않았겠고, 또 산속에 호랑이 같은 맹수도 많았을 테니 한두 사람이 산을 찾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친구나 선후배 몇 사람이 어우러져서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짐을 나르고 시중을 들 노비도 몇 사람 데리고 갔으니 산을 찾는 일행이 예닐곱 명쯤 되는 건 보통이었습니다.

문약한 선비들이 산을 찾는 모습

사초가 덮인 오솔길을 살방살방 걸어갑니다. 산행하는 이들은 이런 길을 '비단길'이라고 합니다.
 사초가 덮인 오솔길을 살방살방 걸어갑니다. 산행하는 이들은 이런 길을 '비단길'이라고 합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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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선시대 선비들을 보고 문약(文弱)하다는 말을 하는데, 산행에서도 그런 모습을 봅니다. 책을 읽고 글도 쓰고 논쟁을 잘 벌이지만, 정작 몸을 쓰는 일에는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암자의 승려 10여 명이 가마를 메고 내려왔다. 이에 가마를 타고서 골짜기로 들어가니 기이한 봉우리들이 가파르면서도 험준하였다." - 정상 <월출산유산록>, 돌베개에서 펴낸 <조선 선비의 산수 기행>에서 인용

"청허옹 및 양군은 종들의 등에 업혀 올랐다. 양군은 그때 등에 업힌 채로 팔을 들어 환호성을 질렀다." - 양대박 <두류산기행록>, 돌베개에서 펴낸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서 인용

피나무고개에서 산행을 마치기 전 자작나무 숲을 지나갑니다. 자작나무만 보면 <닥터 지바고>에서 시베리아 벌판에 펼쳐지던 자작나무 숲이 떠오릅니다.
 피나무고개에서 산행을 마치기 전 자작나무 숲을 지나갑니다. 자작나무만 보면 <닥터 지바고>에서 시베리아 벌판에 펼쳐지던 자작나무 숲이 떠오릅니다.
ⓒ 배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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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산에 오르지도 못해 가마를 타고 오른다든지, 가마도 오를 수 없으면 종의 무동을 타고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명산 기행을 하고 싶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 종의 역할은 그런 것이었나 하는 생각을 할 때는 자기 다리로 오르기도 힘든 험한 산을 가마를 메고 올라야 했던 노비들, 환호성 치는 주인을 무동 태우고 산을 오르며 괴로워했을 종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오늘 산길은 피나무재에서 끝납니다. 낙석을 막기 위해 쳐 놓은 철조망을 개구멍으로 통과합니다. 개구멍이면 어떤가요. 힘든 산행을 마치는 몸은 노곤하지만, 마음은 하늘을 날 것처럼 가볍기만 합니다.


태그:#낙동정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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