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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지난 역사가 말하듯 정권의 성패란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시민사회의 열망을 등에 업고 출범한 현 정부의 인사 하나하나가 매스컴을 타고 커다란 관심을 받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취임 후 청와대 공직자와 각 부처 수장을 임명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십수 년 전 참여정부의 인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두 차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내며 공직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했고 그들의 업적과 실책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게 불과 십수 년 전이다. 그 경험이 현 정부 인사정책의 자양분이 되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니,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을 들여다보는 건 오늘의 공직자 인사를 이해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책 표지
▲ 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 책 표지
ⓒ 내일을여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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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출간된 <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은 참여정부 시절 고위공직자 인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 알기 쉽게 서술한 책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인사수석실 균형인사 선임행정관과 인사제도비서관을 역임한 최광웅씨가 자신이 직접 겪거나 지켜본 내용을 담아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부터 김원기 전 국회의장,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 유인태 전 정무수석 등 스무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참여정부 인사정책의 허와 실을 현장감 있게 파고들었다.

책이 한 장을 할애해 다루고 있는 인물은 위에 언급한 이들 외에도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홍석현 전 주미대사, 권은희 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 김완기 전 인사수석, 정홍원 전 국무총리, 김만복 전 국정원장, 이인식 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이성남 전 금융통화위원, 김선욱 전 법제처장, 김경임 전 튀니지 대사, 김정숙 전 식약청장,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최연혜 전 코레일사장 등 중량감 있는 인사가 여럿이다. 명단을 보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듯, 성공한 인사 뿐 아니라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인사도 어느 정도 드러내 흥미를 자아낸다.

책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참여정부가 인사정책을 시스템으로 정착시키고자 노력했다는 것이었다. 권력을 가진 몇몇이 사람을 추천해 자격 없는 인물이 공직에 임명되는 일을 막고자 함이었다.

이를 위해 참여정부는 청와대 직제에 인사수석을 신설해 인사추천 창구를 일원화하고 추천은 인사수석, 검증은 민정수석이 맡도록 권한을 나누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의장으로 하는 인사추천회의도 가동해 공식적인 고위공직자 임용체계도 구축했다.

공식적인 시스템을 거쳐 인재를 기용했으니 임명 전에 낙마하는 사례도 적었다. 책에 따르면, 참여정부는 인사청문 대상 고위공직자 78명 가운데 3명이 낙마해 3%의 낙마율을 보였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111명 중 10명(낙마율 9%)이 임명되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에선 책이 출간될 때까지 80명 중 9명이 낙마해 10%를 넘어섰다.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에 편중된 인사를 한다 해서 '고소영' 인사라는 비웃음을 샀던 이명박 정부나 비선실세에 좌지우지된 박근혜 정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취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 충무실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 충무실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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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참여정부는 지역균형, 여성우대, 이공계확대 등 원칙에 맞는 인사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빈약했던 인재풀도 대폭 확장돼 인사수석 관할 아래 체계적으로 관리됐다. 그러나 이 모두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허울만 남았고 비선실세에 의해 2000개가 넘는 공직이 포상처럼 나눠졌다는 합리적 의혹을 받았으니 정말이지 애통한 노릇이다.

'참여정부 이전에는 정무직과 공공기관 임원 후보자 등의 추천과 검증을 모두 민정수석실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담당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를 담보하기 위해 긴장과 견제관계에 있어야 할 두 가지 기능을 단일조직이 수행한 것이다. (...) 후보자 추천과 검증 기능의 분리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다시 '시스템 인사'를 제안했다. (...) 인사수석실이 발굴해 민정수석실에서 검증한 후보들의 자료를 놓고 최적임자를 선정,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자문하는 기구에 불과했지만 노 대통령은 이 시스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되도록 그 결정을 따랐다.' - 8, 9p

추천·검증기능을 나누고 인사절차를 제도화했지만 그것으로 충분치는 않았다. 저자는 일부 분야에서 기용할 수 있는 인재가 현저히 부족해 적임자를 임명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민정수석실의 면도칼 검증과 인사수석실의 인재추천이 상충한 탓에 유능한 인재가 기용되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적고 있다.

'민정수석실 인사검증 과정에서 엉뚱한 문제가 생겼다. 문재인 수석이 음주운전 전과 때문에 안 된다고 제동을 건 것이다. 당시 문 수석은 잣대로 줄을 그어놓고 도려내는 방식의 면도칼 검증을 실시하고 있어서 한 번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식이었다. 그러니 열 사람 말이 통할 리가 만무했다.' -98p

저자는 일부 인사의 경우 인사원칙이 일관되게 관철되지 못했으며 영남인사에 대한 지속적인 우대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인사기준에 합치하지 않았으나 기용된 홍석현 대사와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원칙론에 따라 낙마한 김숙 국장의 사례가 그것이다.

'참여정부는 일관된 인사검증의 원칙을 유지하지 못했다. 탈세 등 혐의로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은 홍석현 대사 카드는 대미 외교 채널을 다각화한다는 '실용주의' 차원에서 용인됐다. 그러나 5개월 만에 조·중·동 기득권을 분리·해체시키지도 못한 채 실패로 결론이 났다. 반면에 음주운전 2회 경력 때문에 유능한 외교관 김숙 국장은 적소적재에 활용하지 않았다. 특히 2006년 상반기 외교안보팀 인사는 특정지역에 치우친 사례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경남 진주), 서주석 청와대 안보정책수석(경남 진주),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경남 밀양) 등 요직을 몽땅 PK출신이 독차지했던 것이다.' -102p

책은 정권 후반부, 혹은 차기 정부에서 새누리당 쪽으로 말을 갈아탄 참여정부 인사들의 사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최연혜 전 코레일사장,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정숙 전 식약처장 등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역임한 수명이 새누리당에 입당하거나 그에 준하는 정치적 변신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 상당수를 양지만 좇는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 묘사하며 지난 십수년 동안 참여정부의 후신이 다시 일어서는데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물었다. 그러는 한편 이를 가려내지 못한 참여정부 인사시스템의 한계도 반성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초대 치안비서관을 지낸 허준영은 참여정부 이후 승승장구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청와대 치안비서관과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거쳐 채 2년도 되지 않아 2005년 1월 꿈에 그리던 치안총수의 자리에 올랐다. (...) 그는 이명박 대선 캠프에 참여해 2009년 코레일 사장에 취임했고 2-12년 총선과 2013년 보궐선거 당시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 노원(병)에 출마했다.' -148p

''꼿꼿 장수'로 알려진 김장수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장관급 장군이었다. 육사 27기 출신인 그에게 대장 계급장을 달아준 것도, 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으로 발탁한 것도 참여정부였다. (...) 그는 2012년 대선에서도 박근혜 후보의 국방안보추진단 단장을 맡아 예비역 장성들을 이끌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초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중용됐으며 2015년부터는 다시 한 번 요직인 주중대사를 맡고 있다.' -149p

'김만복은 2006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국정원 개원 45년 만에 최초로 내부 승진 케이스로 원장에 발탁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받았다. (...) 북한연구실장이던 이종석과 대북정보를 교환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그는 이종석이 참여정부 출범 후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실무책임을 맡게 되자 덩달아 출세를 하게 됐다. (...) 국정원 근무 중 다양한 정치적 행보를 보여 온 김만복은 2012년 19대 총선 출마를 위해 준비했으나 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중도에 포기했다. 2016년 20대 총선은 새누리당에서 당원 제명을 받음에 따라 무소속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160, 162p

'최연혜 사장은 임기 7개월을 앞둔 2016년 3월 14일 돌연 사직을 하더니 새누리당 비례대표 5번으로 당선됐다. 개혁적 지식인의 전형적인 변신, 아니 씁쓸한 말 바꾸기이다. 2004년 당시 나는 철학을 중심으로 보지 못하고 최연혜라는 한 철도경영학자를 주목했다. 지금은 통렬하게 반성한다.' -263p

이 책은 여전히 살아 한국사회의 명망가로 활동하고 있는 수십 명의 인사들을 참여정부가 어떻게 검증하고 기용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누가 어떻게 누구를 발탁했는지 실명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일종의 역사서로의 성격도 지닌다. 과거의 역사가 돌고 돌아 오늘의 현실을 이루는 법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 인사에 관심이 높은 오늘, 이 책이 보다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 / 내일을여는책 / 최광웅 지음 / 2016. 05. / 15000원>



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 - 실명으로 밝히는 참여정부 인사시스템 막전막후

최광웅 지음, 내일을여는책(2016)


태그:#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 #내일을여는책, #최광웅,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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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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