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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공동주택을 꼽으라면 단연코 코티(이전 기사: 정말 못 생긴 '코티', 어떻게 베를린의 상징이 됐나)에 위치한 NKZ(Neues Kreuzberger Zentrum)가 떠오른다.
코티는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의 코트부써 토어(Kottbusser Tor) 역을 중심으로한 인근 구역의 애칭으로, 이곳에 위치한 공동주택 건물군인 NKZ는 지난 수년간 베를린의 (사회)주택 문제를 둘러싼 소식에는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1200명의 세입자 가운데 약 50%가 이주배경을 지니는 NKZ는 특히나 세입자 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코티운트코(Kotti & Co.)와 함께 베를린에서 그 다양성을 바탕으로 남다른 상징성을 지니는 곳이다.

NKZ 매각 소식 이후 각종 항의 플랜카드가  NKZ 건물에 걸려있다.
 NKZ 매각 소식 이후 각종 항의 플랜카드가 NKZ 건물에 걸려있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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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두달간은 NKZ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던 때였다. 사회주택이었지만, 이후 민간 부동산 회사에 의해 운영되며 각종 편법으로 임대료가 오르고,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NKZ를 매각하기로 결정하며 미래가 더 불투명해지고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올해 3월에 있었던 최고가 입찰 경매에서는 약 6천만유로의 위탁금으로 한 민간 투자자가 낙찰을 받았다. 매각 과정에는 지역 내의 부동산 투자자와 베를린의 주택회사 중 한 곳도 참여했으나 매입엔 실패하고 말았다. 

이 매각 결정을 두고 크로이츠베르크-프리드리히샤인 지역 녹색당 정치인인 플로리안 슈미트(Florian Schmidt) 씨는 베를린 정부의 주택 공유화 전략의 후퇴이고, 동시에 베를린 소셜 믹스(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계층이 한 지역, 건물 안에서 섞여사는 것을 의미)가 위협받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NKZ 매매과정과 문제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모임의 모습
 NKZ 매매과정과 문제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모임의 모습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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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정부, 2만5000채의 민간주택 매입하기로

현재 사민당-좌파당-녹색당의 적적녹 연정을 이룬 베를린 정부 연정계약서에는 약 2만5000채의 민간주택을 2024년까지 매입하기로 한 계획이 있다. 약 1200명이 살고 있는 세입자들의 상징과도 같은  NKZ는 이런 계획을 놓고 봤을 때 쉽게 외면할 수 없는 곳이었다.

특히나 낙찰에 성공한 투자자는 투기성 목적으로 주택을 매입하려는 의혹이 짖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대비책을 찾아야했다. 슈미트 씨는 한 인터뷰에서는 우리(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프리드리히샤인 지역 정치인)는 주거공간으로 이윤을 꾀하려는 사람들의 기대를 실망하게 만들 것이고, 모든 힘을 다 동원하여 NKZ가 부동산 투기 시장으로 옮겨가는 것을 막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약 한달 뒤, NKZ는 베를린의 주택회사인 Gewobag에 5600만 유로에 판매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티운트코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의 시위와 NKZ 주변으로 지정되어있던 지역 보호법(Milieuschutz) 덕택이었다.

지역 보호법 등의 도시계획관리대상으로 지정된 특정 지역의 부동산을 판매할 시 지자체가 다른 매입자보다 먼저 부동산을 사들일 수 있는 선매권(Vorkaufsrecht)을 갖게 된다는 독일 연방건설법전 24조에 명시된 권리를 통해 부동산 투기 등으로 세입자와 지역 주민들이 곤경에 처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코티는 우리의 것이다(좌측)와 빚은 공유화하고, 수익은 사유화한다?(우측)라는 플랜카드가 지금 베를린 시가 직면한 주택난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코티는 우리의 것이다(좌측)와 빚은 공유화하고, 수익은 사유화한다?(우측)라는 플랜카드가 지금 베를린 시가 직면한 주택난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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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보호법 아래 놓인 구역 40여 곳

현재 베를린에는 약 40여곳의 지역 보호법 아래 놓인 구역이 있다.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프리드리히샤인(Kreuzberg-Friedrichshain)에는 그 중 8개의 구역이 있고, 지역 주민의 약 45%인 28만 명 가량이 보호법의 영향을 받는 구역에서 살고 있다. 지역의 문화적, 사회적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보호 장치가 필요할 만큼, 이 지역은 최근 수년간 극단적인 부동산 투기의 장이었다.

재미난 점은 NKZ매각 과정에서 지자체는 선매권을 사용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선매권을 쓸 수도 있다는 경고용으로만 활용했을 뿐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선매권 사용 없이 지자체가 주택을 매입을 하게 되었기에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선매권을 검토하고 NKZ매각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슈미트 씨는 앞으로 이러한 주택정책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코티운트코 6주년 기념 거리 시위를 마치고 축하파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모습
 코티운트코 6주년 기념 거리 시위를 마치고 축하파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모습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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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년간 주택난과 부동산 시장이 가열되어왔던 베를린에선 2016년까지 지역 보호법 아래 놓인 구역에서 총 48건의 부동산 매매가 이루어졌는데, 그 중 3건은 선매권을 통해 지자체가 매입을 하였고, 4건은 지자체가 선매권을 사용하기 전 부동산 매입자와 지자체간의 협약을 통해 20년간 임대료를 높이지 않는다는 등의 합의를 맺은 것이었다. 나머지는 매각이 이루어졌다.

NKZ 매각과 비슷한 시기에 베를린 쇠네베르크(Schöneberg)에 위치한 5채 주택의 민간 매각에 대해 지자체가 선매권 사용하려는 것을 베를린 지방 법원이 불허하는 결정이 있었다. 이 주택의 세입자들 역시 오랫동안 투쟁을 해왔고, 지역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선매권 활용을  통해 지역 사회와 세입자의 안전성을 위한 시도를 했음에도 일어난 일이여서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베를린에서는 2016년까지 지역보호 대상 48건의 부동산 매매 중 7건만이 지자체의 중재 혹은 보호가 있었을 뿐이고, 나머지는 세입자의 미래를 쉽사리 장담할 수 없는 민간 매각이 이루어졌다.

NKZ의 사례는 지난 지방선거와 이후 연정과정에서 각종 정당과 베를린 정부가 내세웠던 주택정책에 걸맞는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내딛은 발자국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리고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세입자들의 삶이 지금도 계속해서 위협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의 내용은 경남PRIDE상품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한 글임을 밝힙니다



태그:#독일, #베를린, #도시, #주거,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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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과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1. 유튜브: https://bit.ly/2Qbc3vT 2. 아카이빙 블로그: https://intro2berlin.tistory.com 3. 문의: intro2berlin@gmx.de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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