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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노동인권 공감밥상'의 첫번째 밥상은 요양보호사들과 함께 나누었다.
 '우리동네 노동인권 공감밥상'의 첫번째 밥상은 요양보호사들과 함께 나누었다.
ⓒ 카페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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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초인종이 울리면 요즘은 손님보다 노동자일 경우가 더 많다. 택배기사를 비롯해 배달노동자, 전자·통신기기 AS기사까지 참 많은 노동자들이 우리집을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는지, 또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알기는 힘들다. 만나기는 하나 잘은 모르는 방문노동자들의 세계를 알려주겠다는 이들이 서울 영등포에 나타났다.

바로 '건강한 일터 안전한 영등포를 위한 노동인권사업단'(이하 노동인권사업단)이다. 서울노동광장, 영등포산업선교회, 행복한돌봄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가가호호돌봄센터, 삼성전자서비스노동조합 영등포분회, 택배연대노동조합 등이 함께 하는 노동인권사업단은 서울노동권익센터의 후원으로 '우리동네 노동인권 공감밥상'을 마련했다. 시민들이 방문노동자들과 함께 밥상을 마주하고 그들의 노동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 공감하는 자리다.

첫 밥상은 요양보호사들과 나눴다. 지난 5월 29일 저녁, 영등포역 근처 카페봄봄 안은 40여 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참석자들은 먼저 삼삼오오 모여 노동인권사업단에서 준비한 가정식 백반을 먹었다. 요양보호사, 가정관리사 등 타인의 밥상을 준비하는데 익숙한 참석자들은 "남이 해주는 밥은 다 맛있어" "다 손 많이 가는 반찬들이네. 대접받는 것 같다" 하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곧이어 본 행사가 시작됐다. 사회를 맡은 공군자 서울노동광장 운영위원은 "방문노동자들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함께 나눠 일상에서 방문노동자들을 만날 때 함부로 대하는 일들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우리동네 노동인권 공감밥상'을 준비했다"고 행사취지를 소개했다. '방문노동자의 노동현실 공유하기'라는 사업 목적이 시작 전부터 공감을 얻었는지 영등포마을지원센터, 영등포민중의꿈, 영등포겨레하나 등 영등포에서 활동하는 여러 단체에서도 참가를 했고, 영등포보건소에서 정신건강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거리에 걸린 플래카드만 보고서 참석했다.

요양보호사는 시민을 향한 국가의 마지막 손길

첫 번째 공감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유고만(49) 요양보호사였다. 요양보호사는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으로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노인 요양시설이나 집에서 신체 및 가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령화시대에 접어들어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직업이다. 혹자는 시민 생애의 끝을 함께 하는 국가의 마지막 손길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중요성에 비해 요양보호사의 노동은 그리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유씨가 요양보호사들의 노동조건을 설명했다.

"대상자가 중증이든 경증이든, 요양보호사가 경력이 오래됐든 신참이든 상관없이 임금체계가 같아요. 대상자 한 명당 1일 3~4시간씩 일을 해서 한 달에 50~60만 원 정도 받죠. 하루에 두 집을 가는 사람도 기껏해야 110~120만원 벌어요. 게다가 재가요양의 경우, 대상자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요양원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그러면 요양보호사는 바로 실업자가 되는 거예요."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저임금도 서러운데 이용자들의 대접은 요양보호사들의 마음에 더 큰 생채기를 남긴다.  

"원래 돌봄 원칙이 가족과 살더라도 대상자만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데 어떤 가족분들은 마치 우리를 파출부처럼 대해요. 손님이 와서 같이 밥 먹다가 '아줌마, 우리 식사 다했으니까 가서 커피 좀 타와'라는 식이죠. 빨래도 세탁기에 돌리면 좋은데 '난 세탁기 싫으니까 손빨래해서 널어 줘'라고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고요."

유 씨는 애완동물 목욕과 밥주기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남성이용자들의 성희롱이나 CCTV 설치에 따른 인권 침해, 도난문제 발생 시 무조건적인 절도범 취급 등 말로 다 못할 사연들도 많다. 객석에 있던 한 요양보호사의 "돌보던 어르신이 미나리무침이 먹고 싶다고 하셔서 해드렸는데 맛이 시다고 그 자리에서 갖다 버리라고 했다"는 굴욕은 약과로 여겨야 할 판이었다.

영등포구에만 재가요양보호서비스센터 70여 개, 무한경쟁에 몰려

이렇게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요양보호사들이 제대로 항의를 못하는 데는 치열한 경쟁시스템이 한 몫하고 있다. 사회적협동조합 가가호호 돌봄센터의 이명희(54) 센터장은 "영등포에만 재가요양서비스센터가 70개쯤 있다고 한다. 이용자들에게 초기상담을 가면 서비스는 대상자만 되고 가족들은 안 된다고 설명을 하는데 그러면 이용자들은 '다른 데는 다 해준다는데 왜 당신네만 팍팍하게 구냐'고 항의를 한다"고 애로 사항을 전했다.

이 센터장은 원칙에 맞게 센터를 운영하는 어려움도 토로했다.

"중증 환자들은 욕창에 걸리지 않게 계속 자세를 바꿔주고 마사지를 해줘야 해서 요양보호사들이 근골격계에 잘 걸려요. 저만 해도 시설장이어서 일을 별로 안 하는 편인데도 팔목이 아파서 행주를 잘 못 짜요. 그렇게 요양보호사들 몸이 고장 나서 어느 해인가 산재처리를 1년에 3건 했더니 사업장이 문제 있다고 조사를 나오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산재 처리하는 게 무서워요."

요양보호라는 공공성에 맞게 어렵게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지만 그로써 얻는 혜택도 없다. 같은 구에만 70개가 넘는 다른 민간센터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는 마찬가지다. 융통성 없다고 선택 후보군에서 멀어지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요양보호의 공공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저도 딸이지만 부모님께 1년에 서너 번 갈까 말까인데 요양보호사는 매일 가잖아요. 딸이나 며느리보다 낫죠. 임종하는 걸 보는 게 힘들 텐데도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표면적으로 봐도 이렇게 좋은 서비스가 없어요. 공공시장 안으로 들어가 정부가 어느 정도 책임만 져도 좋을 거예요."

이명희 센터장의 말을 받아 유고만 씨도 한 마디 거들었다.

"요양보호사의 돌봄노동을 로봇이 대체할 수 있을까요? 청소나 빨래 등은 로봇이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로봇과 다른 점은 정서 지원을 한다는 거예요. 노인들은 우울증이 심하고 다들 치매 증세가 조금씩 있거든요. 이것은 로봇이 할 수 없고 꼭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참석자들은 요양보호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개인 부담금은 얼마나 되는지 등 예비 이용자의 입장에서 질문을 쏟아냈다. 문답이 오간 뒤 공군자 운영위원은 "내가 노동할 때는 사람들이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노동자들을 만나면 우리는 또 다른 고객이 된다"면서 "그런 부조화의 간극을 최대한 좁혀내면서 서로의 노동을 인정하고 소통할 때 사회도 발전한다"고 당부했다.

앞쪽에 모여 있던 요양보호사들에게 지역사회에서 어떤 걸 바꾸면 좋을지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그들은 첫 손으로 호칭을 꼽았다. '야' '아줌마'가 아니라 '선생님' 등으로 불러달라는 요구다. 그와 함께 "요양보호사는 가족들의 일이 아니라 어르신 관련 일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주변에 알려 달라"고도 부탁했다.

정책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처우 개선을 간절히 바랐다. 요양보호사들은 공공영역으로의 진입을 큰 그림으로 하면서, 일률적으로 최저시급으로 책정된 임금의 실질적인 조절은 바로 추진되길 바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행사를 마친 참석자들은 그 마음을 모아 '최저임금 1만원'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든 '만원 에이드'를 들고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우리집에 온 노동자 안녕하세요! 당신의 노동 오늘도 고맙습니다' 스티커를 들고서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그냥 지나쳤던 방문노동자들의 노동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

한편 방문노동자들과의 만남인 '우리동네 노동인권 공감밥상'은 9월까지 매달 마지막주 월요일에 이어진다. 6월 26일 택배노동자, 7월 24일 가사관리사·산후관리사·베이비시터 등, 8월 28일 배달노동자, 9월 25일 케이블과 에어컨 설치기사, 가전제품 AS기사들이 시민들에게 자신의 노동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의 노동과 호흡하고 싶은 분들은 누구나 참석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참가신청 문의 070-7534-9117)



태그:#요양보호사, #우리동네 노동인권 공감밥상, #방문노동자, #카페 봄봄, #최저임금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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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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