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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숙소 창문을 열고 을씨년스런 뒷골목을 내다보았다. 더블린의 하늘은 오늘도 대체로 찌뿌둥할 모양이다. 뒤에선 다른 남자 투숙객들의 코고는 소리가 여전히 요란스레 '합창'을 한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5년 전 처음 이용해 본 혼성 도미터리가 별 문제 없길래 이번에도 제일 저렴한 10인실을 예약했는데, 이번 여행의 첫 룸메이트들 중엔 유독 시끄러운 애들이 많다.

어젯밤엔 영국에서 놀러온 듯한 젊은 남정네들 몇이 밤새 히히덕대더니 그 중 내 윗 층 침대에서 자는 한 인간은 코를 심하게 고는 것도 모자라 새벽 내내 방귀를 몇 번을 뀌는 건지... 나중에 여행한 독일 뮌헨의 한 호스텔에서는 심지어 방 안에 있는 욕실에서 샤워 중에 뭐 멱 따는 소리로 고래고래 노래를 불러대는 인간까지 있어 기함을 하고는, 다음부턴 돈을 더 쓰더라도 여성 전용 룸만 이용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날씨만큼 회색빛으로 을씨년스런 더블린의 뒷골목
 날씨만큼 회색빛으로 을씨년스런 더블린의 뒷골목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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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계획대로 골웨이(Galway) 행이다. 하지만 모레 돌아올 예정이라 캐리어는 이 호스텔에 맡기고 간단한 짐만 챙겨서 다녀오기로 했다. 재밌는 건 흔히 '코치 스테이션Coach station)'으로 불리는 고속버스 터미널이 더블린에선 'Busáras'로도 불리는데, 처음엔 '부사라?', '버사라?'로 발음해야 하나 갸우뚱하다가 나중에 버스 내 안내 방송에서 '버스애러'로 발음하는 걸 들었다. 아무튼 몹시 후지고 낡아보이는 이 터미널에서 오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반 정도 달려 골웨이 시티(Galway city)에 도착했다.

골웨이 행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일랜드의 시골 동네 풍경이 정겹다
 골웨이 행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일랜드의 시골 동네 풍경이 정겹다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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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고 공용 주방에서 점심으로 한국에서 가져간 봉지 라면을 하나 끓여먹었다. 김치도 떡도 없이 라면만 달랑이지만 며칠 간 호스텔에서 무료 제공하는 빵 위주의 조식만 먹다가 간만에 얼큰한 걸 끓여먹으니 후끈한 것이 속이 풀린다.

아직 한 낮이라 다시 밖으로 나오니 흐린 하늘에 여전히 거센 바람을 동반한 추위가 만만찮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이대로 계속 돌아다니긴 무리라는 판단에 결국 숙소 근처 대형 의류 할인 매장에서 제일 저렴한 가격의 조금 두터운 긴 후드 점퍼를 샀다. 왜 4월 중순에 이토록 추위에 떨며 옷까지 사야 하는지 문득 화가 치밀었지만 이미 카드는 긁힌 뒤였다.

라틴 지구(The Latin Quater) 내 퀘이 거리(Quay street)를 필두로 한 각 종 펍과 가게들이 즐비한 중심가는 비수기 치고는 주민들과 관광객들로 꽤 붐볐고, 근처엔 각종 수공예품들과 예술 작품들을 파는 골웨이 마켓(GALWAY MARKET)으로 불리는 작은 장터까지 있어 활기를 더했다. 또한 영화 '원스(Once)' 수준의 분위기 있는 버스킹 팀들이 넘쳐날 줄 알았던 더블린에선 허접한 수준의 두 세 팀의 공연을 본 게 다였는데, 오히려 여기에 더 나은 수준의 다양한 거리 공연들이 많았다.

골웨이의 중심거리
 골웨이의 중심거리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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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많은 골웨이 마켓
 볼거리 많은 골웨이 마켓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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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씨가 같다는 이유로 나란히 앉혀 놨다는 아일랜드 대표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왼 쪽)'와 에스토니아의 대표 작가 '에드워드 와일드(Edward Wilde, 오른 쪽)'의 동상
 성 씨가 같다는 이유로 나란히 앉혀 놨다는 아일랜드 대표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왼 쪽)'와 에스토니아의 대표 작가 '에드워드 와일드(Edward Wilde, 오른 쪽)'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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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쉬 전통의상을 입고 하는 거리 인형극
 아이리쉬 전통의상을 입고 하는 거리 인형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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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먹거리들의 축제 골웨이 푸드 페스티발
 다양한 먹거리들의 축제 골웨이 푸드 페스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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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걷다가 골웨이 베이(Galway Bay) 근처 스페인 아치(Spanish Arch) 광장에 오니 'GALWAY FOOD FESTIVAL'이라는 음식 축제가 한창이었다. 지역 특산물 홍보를 위한 연례 행사 같은데 사람들 대부분이 부스에서 음식을 사서 밖에서 먹고 있었다.

이미 점심을 먹은 터라 뭘 사 먹을 생각이 없던 나는 슬슬 구경만 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바람을 다 맞아가며 밖에서 먹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엔 다소 청승맞아 보이는데도, 5년 전 여행에서 아일랜드 못지 않은 추운 지역인 스코틀랜드와 스웨덴 사람들이 그랬듯, 이런 기후에 단련된 이들에게 이런 추위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다들 표정은 밝아 보였다.

골웨이엔 이밖에도 시립 박물관(Galway City Musiem), 골웨이 대성당(Galway Cathedral), 사우스 파크(South Park) 등의 관광지들이 더 있지만, 이곳에 온 주요 목적은 어디까지나 내일 가게 될 일명 '해리포터 절벽'이라 불리는 '모허 절벽(Cliffs of Moher)'이라 바람을 맞아가며 이 작은 도시를 계속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기에 이쯤해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태그:#아일랜드, #골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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