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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때 '더블린(Dublin)'에 대한 작은 로망을 불러온 잔잔한 음악 영화 <원스(Once)>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나 음악 등과 상관없이, 정작 나에겐 특유의 잔잔함 때문에 보는 내내 비몽사몽이었을 정도로 무척이나 졸립고 지루한 영화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나에겐 오랫동안 '아일랜드(Ireland)'라는 나라에 대한 동경과 로망이 있었다.

다양한 신화, 요정의 전설, 아름다운 아이리쉬 휘슬(Irish whisle)의 멜로디, 영화 <타이타닉(Titanic)>에서 위층의 고루한 잉글랜드 귀족들과 대비되어 허름한 지하층에서 나름의 흥을 돋우던 그들, 그리고 여러모로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배경과 국민적 기질... 비록 몇 년 전 어떤 모임에서 처음 만난 한 아일랜드인의 비매너에 불쾌했었고, 5년 전 첫 유럽여행 때 이용한 악명 높은 아이리쉬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Ryanair)'의 불친절한 서비스에 실망했지만, 그럼에도 난 꼭 한 번 진짜 아일랜드 땅을 밟고 지금껏 갖고 있던 환상과 동경의 실체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2017년 올해 드디어 기회가 왔다.

아부다비(Abu Dhabi)를 경유한 긴 비행을 끝낸 뒤 4월 14일 오후 3시가 넘어 출국심사를 거뜬히 통과하고 더블린 국제공항을 빠져나왔을 때,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나의 5년 만의 두 번째 유럽여행의 서막을 장식해 주었다.

이 도시는 시작부터 이렇게 날 거부하는 건가 싶은 우울함으로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우산도 없이 이 비를 맞으며 어떻게 예약한 숙소를 찾아갈까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더블린의 광화문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파넬 광장(Parnell Square)'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가 거의 그쳤다. (공항을 나오면 City center로 가는 버스들이 바로 앞에 대기하고 있으며 바로 옆 간이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타면 된다)

근처의 관광안내소에서 '오코넬 다리(O'Connell Bridge)'를 위치를 물어 숙소를 찾아갔다. 리피 강(River Riffey)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이 다리 근처에 숙소가 있는 것이 방향 감각이 아주 둔한 나 같은 길치에겐 호재였기에, 난 관광 중에 길만 헷갈리면 무조건 행인에게 이 다리 위치를 물어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코넬 다리를 비롯 여러 다리를 기점으로 더블린은 남북으로 나뉜다
▲ 오코넬 다리(O’Connell Bridge) 오코넬 다리를 비롯 여러 다리를 기점으로 더블린은 남북으로 나뉜다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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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블린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날씨였다. 처음엔 비 때문인가 싶었는데 아일랜드를 여행하는 내내 난 뜻밖의 강풍을 동반한 혹독한 날씨에 괴로웠다. 5년 전 3월 초에 방문한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에서 눈까지 동반한 추위에 학을 뗀 적이 있기에, 4월 중순 쯤이면 북유럽이 아닌 이상 유럽 웬만한 나라들 중에 추운 곳은 없겠지 싶어 가벼운 옷 위주로 준비했는데, 흥과 음악의 나라 아일랜드가 이렇게 불안정하고 추운 기후일 줄 전혀 몰랐다. 어리석게도 난 이 나라에 대한 환상과 동경만 있었을 뿐 정작 아는 게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어쨌든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시내로 나오니 고맙게도 비는 완전히 그치고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관광은 내일부터지만 일종의 워밍업으로 숙소 근처만이라도 잠시 돌아보기로 했다. 유럽은 해가 긴 탓에 날씨만 괜찮으면 저녁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데 무리가 없다. 또한 오코넬 다리를 기점으로 웬만한 관광지들은 도보 가능한 거리로 연결돼 있어, 난 더블린에 있는 동안 트램 한 번 타지 않고 오직 튼튼한 두 다리로만 씩씩하게 걸어다녔다.

가장 번화한 그라프톤 거리(Grafton street)가 있는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한 편인 '강북' 지역엔 파넬 광장을 중심으로 또다른 다운타운이 형성돼 있는데 이곳에 대한 첫 느낌은 '촌스럽다'였다.

촌스러운 디스플레이
▲ 더블린의 의류 가게 촌스러운 디스플레이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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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꽤 규모가 큰 한 중저가 대형 의류 쇼핑몰의 쇼윈도를 보고 왠지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는데, 내가 보기엔 솔직히 웬만한 유럽 도시들에 비해 더블리너들의 패션도 상당히 떨어진 편이었다.

남 아일랜드가 남한에 비해 국토 면적도 작고 인구도 훨씬 적은 소국인데다가, 같은 섬 나라인 영국 뒤에 가려진(?) 또 다른 섬이라서인지 전반적으로 낙후되고 상품들의 구색도 좀 부족한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흔히 유럽의 도시 하면 떠오르는 고풍스러운 유럽풍의 건물들도 그리 많지 않은, 뭔가 어정쩡한 풍경을 선사하는 이 도시에 대해 난 내내 시큰둥한 기분이었다.

물론 단 며칠의 여행으로 이곳을 다 알 수는 없고 또 어떤 이들은 더블린만의 매력에 흠뻑 빠지기도 하지만, 난 혹독한 날씨와 더불어 5년 전의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Edinburgh) 못지 않게 어딘가 삭막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내내 당혹해 하며 시무룩했다. 어쩌면 아이리쉬 인들이 그토록 술과 음악과 흥에 몰두한 것은 마음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견디기 위한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나마 표가 나게 무뚝뚝하고 차갑게 느껴지던 스코티시들보다는 그래도 친절하고 부드럽게 느껴진 게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난 어쩌다가 이 나라가 온화한 기후에 밝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한 낙원일 거라는 환상을 갖게 된 것일까...

하지만 아일랜드의 진짜 매력은 도시가 아닌 아름다운 자연환경이기에 다음 목적지인 '골웨이(Galway)'에 갈 때까지는 이 도시를 최대한 느껴보기로 했다.

내가 사는 이태원에서도 연중 행사로 소박하게 열리는 성 패트릭 데이St. Patrick Day) 행사의 나라답게 기념품 가게들은 전반적으로 녹색으로 가득하다.
▲ 더블린의 기념품 가게 내가 사는 이태원에서도 연중 행사로 소박하게 열리는 성 패트릭 데이St. Patrick Day) 행사의 나라답게 기념품 가게들은 전반적으로 녹색으로 가득하다.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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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하다는 템플 바(The Temple Bar). 템플이라기에 종교와 관련이 있나 했더니, 트리니티 컬리지의 학장이었던 윌리엄 템플 경(Sir William Temple)의 집과 정원이 있던 곳이었단다. 난 술을 못 해 들어갈 일은 없었다
▲ 템플 바(The Temple Bar) 그 유명하다는 템플 바(The Temple Bar). 템플이라기에 종교와 관련이 있나 했더니, 트리니티 컬리지의 학장이었던 윌리엄 템플 경(Sir William Temple)의 집과 정원이 있던 곳이었단다. 난 술을 못 해 들어갈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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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펍들이 즐비한 더블린의 번화가
▲ 더블린 시내 각종 펍들이 즐비한 더블린의 번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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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걷다가 작은 아케이드 상가 같은 곳에 있는 어느 중고 음반 가게를 발견하고 무작정 들어갔다. 대충 구경하다가 충동적으로 주인 아저씨에게 아이리쉬 전통 음악 CD 좀 골라달라고 부탁드렸다.

'샐리 가든(Sally Garden)'처럼 여성의 목소리에 아이리쉬 휘슬이 들어간 부드럽고 감성적인 걸로 원한다고 다소 까다로운(?) 요구를 했더니, 맘씨 좋게 생긴 아저씨께서 몇 개를 골라주셨는데 그중 두 개를 샀다. 사실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공짜로 들을 수도 있지만 현지에서 전문가가 골라주는 전통 음반을 듣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듯했다. 귀국해서 빨리 들어보고 싶었다.


태그:#유럽, #아일랜드, #더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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