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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SBS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 시기를 놓고 거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보도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다음 날(3일) 김성준 보도본부장 명의의 사과문이 나왔다. 알맹이는 이것이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나 검토한 데스크를 비롯해 SBS의 어떤 관계자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거나 특정 후보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이리 따지고 저리 돌려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SBS 노동조합이 3일 발표한 'SBS 8시 뉴스, 보도참사에 대한 입장'을 토대로 보도 과정을 '역추적'해보면 더욱 그렇다.

첫 번째 의문... 게이트 키퍼, 그는 누구인가

지난 3일 SBS <8시 뉴스>를 통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 시기를 놓고 거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보도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김성준 앵커
 지난 3일 SBS <8시 뉴스>를 통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 시기를 놓고 거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보도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김성준 앵커
ⓒ SBS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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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세월호 참사 발생 시점부터 진상 규명과 조속한 선체 인양을 위해 취재해왔으며 "2일 문제의 기사 역시 박근혜 정권 내내 시간을 끌던 해수부가 탄핵 국면이 전개되면서 갑자기 인양 작업에 속도를 내는 등 정치권 눈치보기로 일관하는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발제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SBS 노동조합에 따르면 기사를 검토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 의해 "초고 때 담겼던 박근혜 정권 시절 인양 지연과 눈치 보기를 지적하는 문장이 통째로 삭제됐다". 뿐만 아니라 그 '누군가'는 게이트 키핑 과정에서 해수부 소속 취재원이 제공한 정보 신뢰도에 대해 다른 기자들이 문제 제기를 했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아가 '인양 고의 지연 의혹... 다음달 본격조사'란 원래 제목을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로 바꿨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이와 같은 제목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문 후보와 해수부를 '엮은' 취재원 인터뷰 말고도 다른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다. 또 최소한 문 후보 측 반론이 함께 실렸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도에는 이와 같은 '게이트 키핑'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사를 검토한 '누군가'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거나 특정 후보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엄중한 대선 국면에서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갔을 때 그 파장이 어떻게 나타날지를 과연 그 경험 많은 '누군가'는 정말 몰랐을까. 그는 왜 복수의 기자들의 문제 제기를 검토 과정에 반영하지 않았을까.

SBS 노동조합이 밝힌 보도 과정이 사실이라면, '누군가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또 하나 있다.

두 번째 의문... 김성준 앵커는 그 기사를 미리 못 봤는가

지난 해 1월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이윤석 JTBC기자가 올린 사진. 이윤석 JTBC 기자가 "하루 중 긴장되는 순간은? 손 선배가 내 기사 앵커 멘트 고칠 때"란 글과 함께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사진이었다.
 지난 해 1월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이윤석 JTBC기자가 올린 사진. 이윤석 JTBC 기자가 "하루 중 긴장되는 순간은? 손 선배가 내 기사 앵커 멘트 고칠 때"란 글과 함께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사진이었다.
ⓒ 이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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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한 장의 캡쳐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윤석 JTBC 기자가 "하루 중 긴장되는 순간은? 손 선배가 내 기사 앵커 멘트 고칠 때"란 글과 함께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사진이었다.

이를 새삼스럽게 지금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이 사진을 통해 JTBC의 경우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 역시 게이트 키핑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지난 2일 SBS 8시 뉴스를 진행한 김성준 앵커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물음표가 생긴다.

물론 2일 문제의 기사는 최혜림 앵커의 진행을 통해 소개됐다. 하지만 김 앵커는 보도본부장으로서 게이트 키핑 과정의 최고 책임자다. JTBC와 달리 SBS에 '김성준님이 편집 중'이란 검토 시스템이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어떻게 문제의 기사가 '김 앵커의 게이트 키핑 과정까지 통과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만약 김 앵커가 해당 기사에 대한 게이트 키핑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도, 최소한 기사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뉴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는 처음 어떤 뉴스를 내보내고 그다음은 무슨 뉴스를 내보낼 것인지, 뉴스들에 대한 가치 판단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라는 자극적인 제목까지 지나쳤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와 같은 의문을 풀 수 있는 해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김 앵커는 4일 <2017 국민의 선택> 기자간담회를 통해 "'먹히는' 기사를 쓰고 싶었던 욕심과 '눈에 띄는' 제목을 쓰고 싶었던 욕심에서 발생한 미스였다"고 했다. "본질적으로는 세월호 가족들에게 사과드리고, 이 보도를 통해 피해받은 문재인 후보, 무엇보다 신뢰받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온 저희를 믿어주신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가장 크게 사과드린다"는 말도 했다. 종전 입장을 되풀이하는 수준이었다.

세 번째 의문... 그리고 왜, 하필, 지금이었나

지난 해 12월 24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방영돼 시민들 사이에서 많은 호응을 받았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편 엔딩곡과 함께 흐르던 장면.
 지난 해 12월 24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방영돼 시민들 사이에서 많은 호응을 받았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편 엔딩곡과 함께 흐르던 장면.
ⓒ SBS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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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 번째 의문은 보도 시점에 관한 것이다. 해당 기사에 나타난 김창준 선체조사위 위원장 인터뷰는 지난달 21일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4일 해양수산부는 이번 보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인터뷰에 응한 이는 3년 차 7급 해수부 공무원이었으며 지난달 16일부터 일주일간 세월호 현장수습본부 언론지원반 근무 중 인터넷 뉴스 등에 떠도는 이야기를 언급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 발표가 사실이라면 SBS는 적어도 일주일 이상 취재를 보강할 시간이 있었으며, 문재인 캠프 측 반론을 취재할 시간 또한 분명 있었다는 말이 된다. 만약 그럴 수 없었다고 해도 신뢰도에 문제가 있는 공무원 인터뷰를 들어낼지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김 앵커의 표현을 빌리면 "기사작성과 편집 과정에서 게이트키핑이 미흡해 발제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식될 수 있는 뉴스"를 2일 내놓았다. 굳이, 왜, 하필, 지금이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도 SBS는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

지난 2일 김성준 앵커는 방송을 통해 "정치권에 부탁드린다"며 "저희 보도내용이나 해명과정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아 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허나 이와 같은 상식적인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답을 내놓지 않으면서 이런 요구를 한다는 것은 무책임하다.

"전파의 주인인 시청자 대표까지 참여하는 진상 조사를 통해 도대체 어떤 경위로 이렇게 검증 없고 균형이 무너진 기사가 나가게 됐는지 사태의 전말을 파악하고 만에 하나라도 제기될 수 있는 모든 의혹을 검증해 결과를 국민에게 가감 없이 공개할 것이다." (SBS 노동조합이 발표한 2일 성명 중)

SBS 노동조합 주장대로 더 소상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빨리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SBS의 이번 보도는 대선에 개입한 '참사'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태그:#김성준, #SBS, #세월호, #게이트 키핑, #데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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