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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집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대선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의 20대 '흑역사'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던 절친한 이들이 이번 대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솔직한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다. 맥주 몇 잔도 곁들였다.

지난 15일, 시간을 쪼개 이번 '수다'에 응해준 이들은 모두 취업준비생이다. 해외 취업을 노리며 알바로 일하고 있는 김나은(29세, 가명), 대학 졸업 후 취업준비 중인 이해원(28세, 가명),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박영아(28세, 가명). 정치 성향은 제각각이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때는 한마음 한 뜻으로 '난리 블루스'를 췄던 발랄한 사람들이다.

15일 신촌 한 호프집에서 대선후보들의 일자리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지인들.
 15일 신촌 한 호프집에서 대선후보들의 일자리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지인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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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공약을 훑어본 이들은 냉소적이었다. "국가에서 다 해줄 돈이 어디서 나온다는 거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금을 올리겠다는 거냐"며 "돈을 더 내라는 거냐"고 따지기도 했다. 또 "중소기업에 지원해준다든가 그런 얘길 많이 하는데 이건 세금을 쓴다는 얘기"라며 답답함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최저시급 인상을 바라면서도 한편 불안감도 드러냈다. "1만원 공약을 본 사장이 '사람 못 쓰겠네'라고 말했다"며 현실적인 대책이 아닌 것 같다는 속내를 보였다. 또한 단순히 출산휴가 기간을 늘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했다. 경력단절 걱정 없이 당당히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출산휴가 기간이 짧아서 못 쓰는 게 아닌 것 같다"며 "쓸 수 있는 환경이 못 돼서 못 쓰는 경우가 많다"며 입을 모았다.

공공일자리 늘리는 건 좋지만...

조선혜: "문재인 후보(아래 모든 '후보' 생략)는 공무원 늘리기, 중소기업 지원 확대로 131만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했다. 공공부문에서 81만 명을 신규 채용한다고 한다. 이런 것도 있다. 소방 인력 부족하니까 늘리고, 의무경찰 없애고 경찰 인력 늘린단다."

김나은: "일자리 수요가 있느냐 없느냐를 먼저 따져야 하는 거 아닌가. 소방대원이 모자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인원을 늘린다고 해서 그렇게 막 지원을 할까?"

이해원: "아니다. 자리가 없어서 못 가는 거다. 조금만 뽑았으니까. 가고 싶어 하는 사람 널렸다. 경찰 되고 싶어 하는 애들 많다. 위험하거나 복지가 안 좋아서 경찰·소방공무원에 지원을 안 하는 게 아니다."

박영아: "공공일자리 늘리는 건 좋다. 내 친구도 몇 년 동안 떨어지고 그랬는데 늘린다는 말 듣고 계속 준비하더라. 근데 뭔가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길로 나가는 게 아니라 전부 다 시험에 매달리게 되는 건 좀... 그리고 뽑아놔도 별 소용 없는 게, 전에 세무직인가 이쪽 직렬로 확 늘려가지고 사람을 무지 뽑았다고 한다. 근데 그거 관련해서 기본적인 업무도 이해 못할 정도로 모르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뽑아서 이직률이 엄청 높았단다. 그게 무슨 짓인가. 많이 뽑는다니까 이런 걱정도 된다."

조선혜: "사회복지공무원도 25만 명 늘린다고 한다."

이해원: "이게 한 번 늘린 건데 그래도 부족하다고 난리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로 바뀌면서 이곳 공무원들을 '우리동네 주무관'이라고 부른다. '할아버지 어떻게 지내세요' 그런 거 물어보는 사람이다. 아프다고 하시면 의료혜택 받을 수 있게 해준다. 근데 일이 너무 많다. 본인한테 할당된 동네가 너무 큰 거다. 모든 65세 이상을 다 돌봐야 한다. 근데 매달 신규 65세 이상 고객이 생긴다. 공무원이 감당을 못하는 거다."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창출... 다 좋은데 예산은?

청년시민단체들이 지난 2015년 참여연대에서 청년수당 정책에 제동을 걸고있는 정부의 행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청년시민단체들이 지난 2015년 참여연대에서 청년수당 정책에 제동을 걸고있는 정부의 행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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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추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후보들도 있다. 문재인 후보는 휴일노동을 포함해 주 52시간 법정노동시간을 준수하면 최소 11만2000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심상정 후보도 "주 35시간 노동제를 추진해 일자리를 나누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나은: "예산은? 모든 공약이 다 그렇다. 공약 보면 마음이 좀 가다가도... 토론하는 거 보면 '아 얘도 아닌가 봐' 이렇다."

이해원: "중소기업은 돈이 없어서 사람을 더 못 쓰는 건데, 국가에서 다 해줄 돈이 어디서 나온다는 거냐. 세금을 올리겠다는 건가? 돈을 더 내라는 건가? 재정절벽 온다고 그러는데 어떻게 그런 공약을 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공짜로 하겠다는 건가."

조선혜:
"안철수는 중소기업 연봉을 대기업의 80% 수준이 되도록 앞으로 5년 동안 국가가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해원: "그럼 5년 뒤에는?"

김나은:
"문재인도 2명 채용하면 1명 지원 이거 3년만 하겠다고 하더라. 이직을 계속하라는 건가. 문재인이 만약에 되면 3년 동안 지원해주겠지만, 3년 동안 노동자는 자리를 보전받을 수 있겠지만, 이거 계약직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그 이후에는 뭐야, 잘리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든다. 일자리로 가져가겠다는 그런 의지가 있는지... 정규직으로는 채용이 안 될 거라는 걸 안다는 건지. 당장 해결책은 될 수 있겠지만..."

조선혜: "홍준표는 청년 일자리 뉴딜 정책으로 110만개 만들겠단다. 돈이 없어 공부 못 하는 학생이 없도록 '4단계 희망사다리 교육지원제도'를 신설하겠다 이런 것도 있다."

김나은: "그게 도대체 뭐냐. 뭔지 모르겠다,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사람 못 쓰겠다'는 사장님 말에 1만 원 공약은 '불안'

지난해 7월12일 '알바노조' 관계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에 올라가 기습시위를 벌였다.
▲ 최저임금 1만원으로 지난해 7월12일 '알바노조' 관계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에 올라가 기습시위를 벌였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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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혜: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을 무이자로 해준다고 한다. 일단은 무이자 전환 자체를 얘기한 사람은 홍준표 뿐이었던 것 같아서 의미 있는 것 같다."

김나은: "대학을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2000만 원 내지 4000만 원 빚을 안고 나온다. 나도 그렇고, 내 동생도 그렇다. 동생은 또 이과니까 더 들어간다. 어쨌든 그거에 대한 부담은 무시 못 한다. 서울에서 내가 월세 내고 이러면 월급으로 200만원 받는다고 해도 그냥 반은 없어지는 거다. 저축이 안 된다. 먹고, 마시고 이런 부분을 아끼지 않는 이상. 뼈 빠지게 일했는데 남는 게 없다. 악순환인 것 같다.

물론 모든 공약을 다 이해하고 내가 명확한 해답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전 대선에 비하면 급하게 진행되는 것도 안다. 하지만 대선 주자들이 참 현실감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 좋다. 다 좋은데, 그럼 이거는?(손으로 동전 모양 제스처)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계속 그런 거다."

조선혜: "심상정은 2020년까지 최저시급을 1만원으로 인상한다고 했다. 유승민도 마찬가지다."

김나은:"알바하는 데 사장이 그거 보고 딱 하는 말이, '사람 못 쓰겠네'였다. 지금도 힘들어 죽겠다고 그런다."

박영아: "저렇게 주려면 매출이 좋아야 한다. 사람들이 돈을 쓰러 나와야 한단 말이다. 그럴 시간이 있나. 월화수목금금금 아닌가. 야근도 많다. 근무 환경, 임금 격차, 청년 일자리 문제 이런 게 다 연결돼있다는 얘기다. 총체적으로 접근해야지. 그런 걸 다 고려하다 보면 시간은 꽤 많이 걸릴 거다."

조선혜: "심상정이 또 이야기한 건 출산휴가는 3달에서 4달로 늘리고, 부부 출산휴가 1개월 의무제도도 시행한다는 점이다. 안철수도 배우자 출산휴가를 30일 보장한다는 얘길 했다."

이해원: "1개월 유급휴가인 건가. 근데 원래는 출산휴가 같은 거 신청해서 하는 거 아닌가. 이게 필수가 되면, 좋은 거겠지?"

박영아: "이거는 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다. 출산휴가 기간이 짧아서 못 쓰는 게 아닌 것 같다. 쓸 수 있는 환경이 못 돼서 못 쓰는 경우가 많다.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쓸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었으면 좋겠다."

투표장 들어갈 때까지 고민할 듯... 공약 마음에 들어도 현실화 '의문'

SBS-기자협회 대선후보 TV토론 SBS와 한국기자협회 공동주최 ‘2017 국민의 선택,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가 지난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프리즘타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기호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SBS-기자협회 대선후보 TV토론 SBS와 한국기자협회 공동주최 ‘2017 국민의 선택,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가 지난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프리즘타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기호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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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구는 임금 격차를 줄이는 내용을 담은 공약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다만 현실화 가능성이 적어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와 닿는 공약이 없다고 일갈하는 친구도 있었다. 기호 5번까지 후보들 중 어떤 후보는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솔직히 말한 친구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누굴 뽑지 않을지는 결정했지만 누굴 뽑아야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투표장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고민을 계속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선공약을 일일이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다고 했다. 내 살길 찾기가 더 급하다는 것이다. 재원을 알 수 없는 선심성 공약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던 이들은 사실 학자금 갚기에 매달이 버겁고, 알바와 취업준비를 병행하는 평범한 청년들이다. 현실이 얼마나 냉혹한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증세'를 속 편히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냉소를 믿음으로 바꿀 그런 정책이, 리더가 필요하다.


태그:#일자리, #대선,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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