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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생들은 누구를 그리워할까?
 소년원생들은 누구를 그리워할까?
ⓒ 정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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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립니다. 낙화한 봄꽃들이 땅에 뒹굽니다. 찬비가 내리고 찬 바람이 불면서 몸이 으슬으슬 춥습니다. 몸살이 오려는 걸까요? 봄비에 젖은 꽃잎처럼 마음이 젖으면서 까까머리 소년이 생각났습니다. 제 아들보다 어린 소년입니다. 소년들이 있어야 할 곳은 소년원이 아닌데 그 소년들은 소년원에 갇혀 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먹고 싶은 것을 맘대로 먹을 수 없는 소년원에서 소년들은 누구를 그리워할까요?.

2015년 초겨울, 서울소년원 신입방에서 준열(18․가명)이를 만났습니다. 키가 작고 깡마른 준열이는 보호관찰 위반으로 10호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10호 처분은 소년법에서 가장 무거운 처분으로 2년가량 소년원 생활을 해야 하는 처분입니다. 준열이 가정은 엄마가 암으로 떠나면서 해체됐습니다. 준열이 아빠는 아내가 남긴 병원비 빚을 갚기 위해 공사판을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혼자가 된 준열이는 외로웠습니다. 엄마아빠가 떠난 빈집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아빠는 나쁜 친구와 어울리지 말라고 했지만 준열이는 나쁜 친구들이 좋았습니다. 간혹 나쁜 짓도 했지만 그래도 그 친구들은 외로움과 슬픔을 달래주었습니다. 외로움과 슬픔으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함께 울부짖으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떠난 뒤에 힘들어하셨습니다. 비가 오는 날, 막노동 공치는 날은 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해서 "아들아, 아빠가 미안하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셨습니다. 돈을 부치지 못해 미안하다고, 공사업자가 월급을 떼어먹고 달아났다고 했습니다. 준열이는 나쁜 친구보다 더 나쁜 건 엄마 없다고, 아빠가 막노동한다고 무시하며 돈을 떼어먹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는 공사판 막노동으로 떠돌고, 집은 춥고 외로워서 친구들과 거리를 헤맸습니다. 집보다는 덜 추웠고 덜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배가 고팠습니다. 잠잘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훔치고 또래 아이들에게 돈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다 경찰에 붙잡혀 재판을 받았습니다. 보호처분을 받고 풀려난 준열이는 보호관찰소에 제대로 출두하지 못했습니다. 도망다니다 붙잡혔습니다. 보호자가 노다가라고, 보호자 노릇을 못한다고, 주거부정이라고, 위험한 소년이라고 소년원에 보냈습니다.

아내 잃고 공사판을 떠도는 아빠, 독감 걸려 누워 있던 18세 소년수

서울소년분류심사원. 이곳은 소년범들이 재판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곳으로 구치소와 같은 곳입니다.
 서울소년분류심사원. 이곳은 소년범들이 재판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곳으로 구치소와 같은 곳입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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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열이가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아빠에게 서울소년원에 있다는 것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아빠는 아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몰랐고, 아들은 아빠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몰랐습니다. 가족이란 끈끈한 정으로 연결되고, 보호의 끈으로 연결되지만 해체된 가정은 그렇지 못합니다. 가정은 안식처이지만 해체된 가정은 바닥을 나뒹구는 깨진 소주병처럼 산산이 흩어집니다.

준열이 아빠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밤 10시경에 준열이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는데 술 취한 목소리였습니다. 절망의 전화였습니다. 준열이가 서울소년원에 있다고, 아주 잘 있다고, 아빠를 그리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자식을 혼자 키운 적이 있다고, 슬픈 세월을 보낸 사람이라고 했더니 속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내가 암 투병을 오래 했다고, 아내가 떠난 뒤에 남은 것은 빚과 외로움이라고 했습니다. 못난 아빠라고, 무능한 아빠라며 눈물 흘렸습니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서울소년원을 찾아갔습니다. 갑작스러운 추위가 엄습한 날이었습니다. 본방에 배치된 준열이는 독감에 걸려 누워 있었습니다. 마음이 짠했습니다. 준열이에게 아빠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빠가 잘 계신다고, 일 잘하고 있다고, 너를 보고 싶어 한다고, 너를 사랑한다고 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술에 취해 울었다고, 절망에 취했다고 말할 수 없어서 거짓말했습니다. 누워 있던 준열이가 아픈 몸을 일으키며 저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면서 하트 모양을 그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아빠를 사랑해요!"

마치, 제가 아빠인 것처럼 사랑한다고 손짓한 것입니다. 가슴이 울컥거렸습니다. 아픈 준열이를 뒤로 하고 소년원을 빠져 나오는데 찬바람이 훅 덮쳤습니다. 소년원의 겨울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뒤에 소년원을 방문했는데 준열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호송차를 타고 다른 소년원으로 이감됐다는 것입니다. 그 뒤로 준열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준열이 아빠와도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슬픈 목소리여서, 너무 깊은 절망이어서 차마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준열이는 지금 어디서 지내고 있을까요?
준열이 아빠는 쌓인 빚을 다 갚았을까요?

소년의 시 '10호'

가출팸 소년들. 이 소년들은 집세, 전기세, 수도세를 내지 못해 단전, 단수조치 당했습니다.
 가출팸 소년들. 이 소년들은 집세, 전기세, 수도세를 내지 못해 단전, 단수조치 당했습니다.
ⓒ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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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처분을 받은
너는 억울하다고 했다.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낸
너의 아버지는 판사에게
선처를 호소했지만 돌아온 것은
무능한 아비의 등 굽은 눈물이었다.
너를 소년원에 보내고 객지로 떠나
공사판 떠돌이로 저녁을 술로 때운
너의 아버지는 면회도 가지 못한 아비를
용서해라 미안하다 술에 취해 울다 잠들고
까까머리 소년수인 넌 신입방이 춥다고 했다.
죽은 엄마도 억울하고 노가다 아버지도 억울하고
가정해체로 받은 10호 처분이 억울하다고 말했다.
엄마가 살았으면 면회 올 텐데, 하늘나라는 특별사면도 없나
밤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억울한 게 아니라 못난 거라는데
독감 걸린 너는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이불 덮어쓰고 덜덜 떨면서 홀아버지를 그리는 소년원의 겨울


(조호진 시인의 시집 <소년원의 봄>에 실린 '10호' 중에서)




태그:#소년원, #10호, #보호처분, #소년원의 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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