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손바닥에 물감을 잔뜩 바르곤 손도장 찍기 놀이 중인 아이
▲ 물감 놀이 손바닥에 물감을 잔뜩 바르곤 손도장 찍기 놀이 중인 아이
ⓒ 송희

관련사진보기


한 번도 아이와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어린이집에 가질 않아서 단체생활을 한 적이 없던 아이였기에 걱정이 컸다.

평소 집에서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들에게 못된 손버릇을 휘둘렀기에 더욱 우려되었다. 할아버지의 안경을 5번이나 던지고 때려 깨뜨리고, 화나면 긁어대는 통에 습윤 밴드를 항시 구비해두고 있어야 했다.

유치원에 간 지 5일째, 기어이 친구 얼굴을 긁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친구의 장난감 스쿨버스를 뺏으며 싸운 것이다. 그동안에도 투덕거렸다는 말을 듣긴 했어도 상처를 냈다니, 친구에게도 부모님께도 죄송스러웠다. 흉이라도 나면 정말 큰일이었다.

약국으로 달려가 습윤 밴드를 사고, 친구와 그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시간이 된다면 아이와 함께 직접 만나 친구에게 사과를 하게 하고, 친구에게 부모 자신 또한 사과해야 한다. 머리 숙여 미안함을 전하는 것으로 폭력의 상처가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그 친구의 부모에게도 조금은 덜 아프게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다. 

유치원에 간지 이제 막 한 달이 조금 넘은 지금, 아직까진 또 친구들에게 상처를 내진 않고 폭력의 빈도는 조금 줄었지만 손이 나가는 경우들이 생긴다.

며칠 전에도 같이 놀다가 친구의 얼굴을 때려서 울렸다. 미안함에 아이와 부모님을 만나 사과하고 편지를 전해드렸다. 

"미안해. 친구야, 맞아서 많이 아프고 속상했지. 아줌마가 그러지 않도록 잘 알려주고 타이를게. 앞으로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가르치도록 노력할게. 우리 즐겁게 같이 유치원에 다니자."

고맙게도 친구도, 친구의 부모님도 아이가 커가는 과정이니 이해해주셨다. 친구도 아이를 보고 친한 친구라며 제일 좋아하는 친구라고 말해준다. 놀이터에서 함께 시소를 타며 웃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며 무거웠던 마음이 풀리고 조금의 희망이 보였다.

흔히 어른들이 '애들이 치고박고하며 크는 거지.', '애니까 그럴 수도 있지.', '널 좋아해서 건드리는 거야.'라는 말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폭력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었고 아이라고 해서 봐줄 순 없었다. 장난이었고, 그 정도가 약했다고 해서 대충 무마시키면 안 되는 일이다.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쓴다는 건 아이 안에 잠재되어 있는 기억 속에 문제가 있단 뜻인 것 같다.

아기일 때 충격을 받을 만큼 크게 혼났던 적들이 있었고 그때 받은 상처가 덧나서 그 기억이 폭력으로 표출되는 거라 여겨진다. 

설마 아이가 아기 때 일을 기억하겠냐 하겠지만 정말 거짓말처럼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을 때가 있다. 아이가 만2세 때 초등학교를 걸어가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것까지 똑같이 말하고 행동까지 재현해냈다. 또 만1세 때 차 안에서 응가 실수를 하니 아빠가 냄새난다고 창문 열었던 것까지 코를 막는 시늉을 하며 말하는 걸 보면 정말 놀랍다.

예전에는 내가 '애 교육 똑바로 시켜!'란 말을 듣는 부모는 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식 교육을 잘못한 부모가 되고 보니 그 말이 가슴에 콱 박힌다. 

아이도 스트레스였겠지만 유치원에서 처음 그런 연락을 받고 나니 온몸이 떨리고 두려웠다. 내 아이가 한 일이니 그건 내가 한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원을 보내기 전에 이런 연락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예상은 했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그 충격은 컸다.

서서히 나아지리라 믿지만, 만약 아이의 폭력성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내 아이가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이가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지만, 이건 남을 생각하는 배려가 부족해서이기도 하니 커가면서 정서적인 폭력으로 상대를 괴롭히게 될지 모른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한창 '왕따'라는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나도 그 사회적인 분위기를 비껴갈 수는 없었다. 우리 반에서는 유행처럼 돌아가며 서로를 따돌리고 심지어 때리는 경우들까지 생겼다. 아이들은 자기가 왕따가 될까 봐 문제를 알면서도 방조했고 두려움에 떨며 1년을 버텼다.

내 아이와 그 친구에게 이런 고통을 겪게 하지 않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1. 친구 역할 놀이 - 친구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집에 와선 아이와 함께 친구놀이를 하며 친구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빼앗지 말고 "친구야, 빌려줄 수 있어?"라고 먼저 물어보는 것을 연습하고, 손을 휘둘렀을 때는 강하게 양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며 잘못된 거라 말해줬다.

몇 번이고 큰소리를 지르며 윽박지르고픈 마음을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이의 마음에 흠집을 내는 일이니 더 역효과가 날 수 있었다.  

2. 물감 범벅 놀이
정서 안정에 좋다는 물감 놀이를 하기 위해 미술세트를 구입해서 손이며 발이며 물감범벅을 하며 놀았다. 억눌렸던 아이의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풀어질 수 있길 바라면서.

3. 촉감 놀이 - 쌀, 현미, 편백나무, 클레이 
정서치료에도 주로 사용되는 모래놀이와 비슷한 어느 집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쌀과 현미로 촉감놀이를 했다. 장난감 삽과 포크로 양동이에 쌀을 넣고 비처럼 뿌리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매트 이곳저곳에 끼어서 난감하긴 하지만, 부드러운 감촉이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집에 있던 황토베개에 들어있던 편백나무 큐브들을 빼서 노는 것도 좋다.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온 방에 뿌려대고 그 조그만 걸로 쌓기 놀이를 한다. 아직까지 클레이로는 모양을 만들지 못하고 잔뜩 쥐었다가 쭉 늘이면서 실처럼 되는 걸 보며 거미줄 같다며 좋아한다.

4. 물놀이 - 거품만지기
워낙 물을 좋아해 하루에 한번은 대야에 잔뜩 물을 채우곤 핸드워시를 눌러 거품을 만든다. 온몸에 거품을 문지르고 '호호' 불며 날리고, 물놀이용 낚시 장난감으로 물고기 잡기 놀이를 한다. 물총을 천장과 사방에 쏘아대고 손이 쭈글쭈글 할아버지 손이 될 때까지 놀아야 직성이 풀려한다.

이런 놀이들과 훈육으로 금방 아이의 폭력성이 고쳐지지 않을 거란 것은 안다.

오늘 저녁에도 잘 자다가 잠꼬대로 "때려"하며 손으로 베개를 두 번 내려치곤 다시 잠이 드는 아이를 보니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만 번은 더 말해줘도 고쳐질까 말까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해줘야 한다고 내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태그:#폭력, #물감, #촉감, #물, #유치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