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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 95에 대한 기억

1997년도에 처음 접했던 windows 95
 1997년도에 처음 접했던 windows 95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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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20년 전이었다. 당시 난 대학 새내기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처음 접한 문물들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컴퓨터였다.

비록 아버지를 졸라 중학교 1학년 때 큰 맘 먹고 집에 286컴퓨터를 들여 놓았었지만, 그것은 6년 동안 <삼국지2> 오락 용도일 뿐이었다. 그러니 대학에 올라와 컴퓨터로 리포트를 작성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특히 나를 헷갈리게 만든 건 처음 접한 Windows 시스템이었다. DOS와 달리 마우스를 클릭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던 당시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Windows에 이상이 있어서 친구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이들이 피식피식 웃는 것이었다. 내가 딱히 이상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 웃음에는 약간의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영문을 몰라 갸우뚱하고 있는데 친구가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야, 쪽팔리게 Windows95가 뭐냐?"
"응? Windows95를 Windows95라고 하지 뭐라고 그래?"
"이그. Windows '구십오'가 아니라 Windows '구오'라고 읽어야지."

그제야 깨달았다. Windows95는 '구십오'가 아니라 '구오'라고 읽어야 된다는 것을(마이크로소프트사에 공식 확인해 본 결과, '구오'라고 읽는 게 맞단다).

하지만 당시 난 당황스러운 동시에 불쾌했다. 내가 그렇다고 남들보다 아주 Windows 시스템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이름만 조금 달리 불렀을 뿐인데, 그게 어찌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3D프린터는 꼭 '쓰리디'여야 하는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최근 탈당)가 5일 오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대회의실에서 대선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 김종인 대선출마 선언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최근 탈당)가 5일 오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대회의실에서 대선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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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위의 에피소드를 꺼낸 이유는 지난 5일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면서 했던 발언 때문이다. 그는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거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기에 처한 국가는 아무나 경영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3D프린터를 삼디프린터라고 읽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잠깐의 실수로 잘못 읽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결함입니다. 국정 책임자에게 무능은 죄악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난 몇 달 동안 고통스럽게 지켜본 일입니다."

김종인 후보가 언급한 3D프린터는 정확히 나의 20년 전 Windows95와 같다. 그는 문재인 후보가 3D프린터를 '쓰리디' 대신 '삼디'라고 읽은 것을 심각한 결함이라고 지적하며, 그것을 무능이라 주장하지만 그것은 침소봉대일 뿐이다. 내가 호칭과 상관없이 Windows의 기능을 알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3D프린터를 '삼디'라고 읽는 것은 3D프린터를 아는 것과 하등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종인 후보는 이를 몰랐을까? 아니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김종인 후보는 이를 통해 문 후보에게 특정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했을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3D프린터를 '삼디'라고 할 만큼 미래 산업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편견이 공공연히 퍼지길 바랐을 것이다. 현재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할 만큼 상승세를 타고 있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바로 그 지점을 자신의 강점으로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알아야 한다고?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이 4일 오후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완전국민경선 제19대 대통령선거후보자 선출대회에서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 필승 다짐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이 4일 오후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완전국민경선 제19대 대통령선거후보자 선출대회에서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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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밀고 있는 핵심 키워드다. 과거 IT 산업에서 성공을 거둔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며 전략이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한 사회개혁 과제는 정말로 많지만, 그 중 한 가지를 꼽으라면 '정경유착'"
"4차 산업혁명시대에 국가가 해야 될 역할은 민간과 기업이 자율성을 발휘해 자기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할 수 있다."

그는 이번 대선을 4차 산업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장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같은 맥락으로 문재인 후보에게 끝장 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것은 문재인 후보가 아닌 그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결정적 이유이기 때문이다.

물론 안철수 후보의 말은 옳다. 대선 후보가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에 대해서 잘 알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결국 우리의 먹고 사는 것과 직결되는 이상, 차기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분명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이다. 4차 산업혁명이 중요하기는 하나, 대통령이 4차 산업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4차 산업이라는 단어 자체는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4차 산업은 "경제의 지식 기반의 일부를 기술하는 한 방법으로서, 일반적으로 정보 배포 및 공유, 정보기술, 상담, 교육, 연구 및 개발, 금융 계획, 기타 지식 기반 서비스를 포함"이라고 정의되지만 아직까지 그것이 산업혁명이라 불릴 만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지는 미지수이다.

안 후보의 4차 산업혁명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4차 산업이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이번 대선에는 4차 산업혁명보다 더 중요한 키워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적폐청산이다.

적폐청산 없이 4차 산업혁명은 없다


박사모, 탄기국 등 박근혜 지지자들이 모여 5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새누리당 중앙당창당대회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권영해, 정광택 공동대표, 정광용 사무총장, 조원진 사무총장, 박근혜 전 대통령 전 변호인 서석구 변호사.
 박사모, 탄기국 등 박근혜 지지자들이 모여 5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새누리당 중앙당창당대회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권영해, 정광택 공동대표, 정광용 사무총장, 조원진 사무총장, 박근혜 전 대통령 전 변호인 서석구 변호사.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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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그 스스로가 전문가인 이상 4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자신하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실제로 4차 산업혁명이 성공하려면 우선 우리 사회의 구조부터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몇몇 재벌들이 시장을 독점하고, 정경유착을 통해 자신의 자산을 늘려가는 이 구조 속에서 어떻게 4차 산업혁명을 수행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대기업이 빼앗고, 정작 중요한 원천기술을 가진 자는 외국에 스카우트 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어디 그 뿐인가. 국가는 국민에 대한 통제나 감찰을 강화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정보통신 기업들을 협박한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참혹하기만 하다. 당장 국가가 나서서 4차 산업혁명을 방해하는 꼴이다.

그런데 이런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 4차 산업혁명을 수행할 수 있을까? 단순히 대통령이 4차 산업을 잘 안다는 이유로 이러한 구조가 개선될 수 있을까?

3D프린터를 '삼디'라고 해도 상관없다. 4차 산업혁명의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다. 다음 대통령의 할 일은 적폐청산이다.


태그:#4차 산업혁명, #적폐청산,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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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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