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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야흐로 봄입니다. 꽃은 봄의 전령 매화에서부터 진달래, 벚꽃 등으로 차근차근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바야흐로 봄입니다. 꽃은 봄의 전령 매화에서부터 진달래, 벚꽃 등으로 차근차근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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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진달래, 개나리, 벚꽃 등 봄꽃이 만발합니다. 공중에 생동하는 봄기운 가득합니다.

# 부부 사랑 1.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운 깍두기

반면 집은 썰렁합니다. 왜 그럴까? 봄 새 학기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 때문입니다. 딸은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났습니다. 고3 아들은 집과 학교 오가는 시간이 아깝다며 학교 기숙사 가겠다고 조르더니 4월부터 기숙사에 들어갔습니다. 공부할 때 한 번쯤 쓰러질 정도로 해봐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나.

아버지 입장에서 아들이 별 일이다 하면서도 달갑지 않습니다. 인생에 있어 학교 공부는 한 부분이긴 허나 목숨 걸 필요까진 없다는 생각입니다. 살면서 목숨 걸게 얼마나 많은데, 겨우 외우기 지식 공부에 목숨 건단 말인가! 삶에 도움될 지혜를 터득하는 일이라면 또 모르지요. 특히 딸 떠난 후의 허전함을 아들 보는 것으로 대신했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다.

지난 토요일, 학교 기숙사에 아들을 내려주고 온 아내 얼굴에는 공허함이 가득합니다. 어차피 떠날 아들, 고3까지는 곁에 두자는 말 안 듣고 아들 뜻에 따라 보내더니 허전함이 밀려드나 봅니다. 왜 안 그러겠어요. 아이들이 없으니 몸에 붙었던 살이 쏙 빠진 후 뼈만 앙상하게 남은 느낌입니다. 부모에게 아이들은 이런 존재구나 싶습니다. 아내를 달랠, 아니 부부를 어루만질 그 무언가가 절실합니다.

"여보, 우리 심야영화 보러 갈까?"

아내, 고개를 살래살래 젓습니다. 탈진한 듯한 얼굴에서 우울증이 잡힐 듯 말듯합니다. 걱정이 밀려듭니다. 가슴으로 꼭 안습니다. 그래도 허전하나 봅니다. 아내, 주방으로 갑니다. 꼭꼭 싸뒀던 무를 꺼냅니다. 무, 지난겨울 김장철에 보관했던 터라 퍽퍽한데도 아랑곳 않습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깍두기와 무채김치를 담겠답니다. 무를 씻은 후 칼을 꺼내듭니다. 도움 필요 없답니다. 마음 풀리도록 가만 지켜봅니다.

# 부부 사랑 2. 아내에게 꽃 잘보고 있다고 전해주게!

아내가 사무실에 두라며 준 화분입니다.
 아내가 사무실에 두라며 준 화분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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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존재를 넘어 참 사랑스런 여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올해 들어 한 이불 덮는 아내마저 얼굴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신학기라 넘치는 일 폭탄에 평일 야근은 기본. 주말까지 야근에 묻혀 살았습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내가 신경 쓰지 않도록 없는 듯 조용히 지내는 게 최고라 여기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집에 못 보던 난 화분이 있더군요. 무심코 내뱉었습니다.

"웬 화분?"
"당신 사무실에 예쁘게 핀 꽃 화분 가져가요."

속으로 '있는 화분 관리도 힘든데 또 화분이라니' 했었습니다. 근데, 용도가 다릅니다. 바로 후회했습니다. 긍정보다 부정에 가까웠던 질문. "웬 화분?"이라 했던 말을 주어 담고 싶었습니다. 아내 말 속에 들어 있는 예쁜 마음을 알기에.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남편의 국적불문 믿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동료들과 화사하게 핀 꽃 보며 즐겁게 일하세요."

남편과 동료들에게 봄을 선물하고픈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사무실에 꽃 화분을 두었습니다. 사무실 분위기가 화사했습니다. 며칠 뒤, 한 동료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꽃 잘보고 있다고 꼭 전해주게."

# 부부 사랑 3. 가스레인지와 환풍구 청소하는 지인 본 후 각오

주방 환풍구, 박박 문질렀더니 깨끗해졌습니다.
 주방 환풍구, 박박 문질렀더니 깨끗해졌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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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집에 놀러 갔습니다. 늘 깔끔했던 주방이 이날따라 정신없었습니다.

"형님, 뭐하시는 거예요?"
"가스레인지와 환풍구 청소 중이야. 기름 때가 장난 아니네. 환풍구는 뜯어서 기름 때 빠지라고 물에 푹 담가놨어. 아이들이 집에 온다 해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마음, 한 수 배웠습니다. 환풍구를 뜯어서 청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뜯어서 씻으면 되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도 깨달음 하나. 더러워진 집 청소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시간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걸. 그리고 기억해 냈습니다. 온힘을 다해 열심히 사는 아내가 밤늦게 귀가해서 간혹 더러워진 환풍구를 힘들게 닦던 모습을.

그땐 본체 만체 했지요. 아내에게 전, '남편' 아닌 '남편 사람'이었지요. 그랬는데, 집에서 가스레인지와 환풍구를 청소 중인 지인을 보고 다짐했습니다. 환풍구, 내 손으로 꼭 깨끗이 청소하고 말겠다는. 이는 열심히 함께 살아 준 아내에 대한 보답 차원이 아닌, 참으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내에 대한 사랑의 다짐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더군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후다닥 지날 줄이야!

# 부부 사랑 4. 실천이 사랑을 살찌운다?

가스레인지 위 환풍구를 뜯어내 씻었는데, 사진으로 보니 덜 닦였네요. 다시 한 번 도전해야겠습니다.
 가스레인지 위 환풍구를 뜯어내 씻었는데, 사진으로 보니 덜 닦였네요. 다시 한 번 도전해야겠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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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떠나간 빈자리. 빈틈을 채울 수 있는 건 사랑이라 했던가! 부부, 단단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아무도 없는 저녁. 가족과 함께 집 밥을 먹는 저녁 있는 풍경을 그리워하며 혼자 밥을 챙겨 먹습니다. 그 허전함과 쓸쓸함이란…. 이러려고 내가 결혼했나 싶기도 합니다. 이내, 다짐했으나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 냅니다.

미뤘던 가스레인지와 환풍구 청소에 도전합니다. 무심코 누런 기름때가 덕지덕지 낀 환풍구 후드를 만집니다. 어라~, 요게 툭 떼어집니다. 횡재한 기분. 드라이버를 사용해 낑낑대며 어렵게 떼어내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세면장으로 옮겨 세제 등을 풉니다. 물에 푹 담급니다. 찌든 때 쏙쏙 빠지길 기도하면서.

가스레인지 위에 주방세제를 풉니다. 조금 기다렸다가 철 수세미로 박박 문댑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만큼 닦이리라 믿으며. 땀이 송글송글 맺힙니다. 손가락 힘이 점점 빠집니다. 이에 반해 가스레인지와 환풍구 등은 점점 깨끗해집니다. 물에 담가뒀던 환풍구 후드를 건져내 솔로 빡빡 닦습니다. 물기를 빼고 싱크대에서 말립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가스레인지와 환풍구를 조립합니다. 말끔하게 변한 주방을 보니 마음이 괜히 흐뭇합니다. 이렇게 아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랬던 우렁이 남편이 되었습니다. 시원한 캔 맥주 한 모금으로 갈증을 시원하게 풉니다. 혼자 잠자리에 듭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내가 보낸 문자가 도착해 있습니다.

"여보 고마워용~^^"

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아내, #부부사랑, #남편, #집청소, #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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