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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기를 안고 광복군이 된 유순희 지사(광복군 제3지대 본부 연병장에서, 1945년 7월)
 갓난아기를 안고 광복군이 된 유순희 지사(광복군 제3지대 본부 연병장에서, 1945년 7월)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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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가운데 지난 3월 31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구 신내동에 살고 계시는 생존 독립운동가 유순희 애국지사를 찾아뵈었다. 올해 92세의 유순희 애국지사는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지만 흔쾌히 방문을 허락해 주셨다. 사실, 유 애국지사를 찾아뵈려고 했던 것은 5년 전부터다. 하지만 그때마다 몸이 안 좋으시다며 집에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셔서 줄곧 찾아뵙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간신히 뵙게 된 것이라 기자는 더욱 기뻤다.

이날 유순희 지사님을 함께 찾아 뵌 분은 생존 독립운동가이신 오희옥(92세) 지사님이셨다. 오희옥 지사님과 유순희 지사님은 왕래하시던 터였지만 몇 해 전부터는 유 지사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번번이 방문 계획이 취소되곤 했다. 이날 수원에 사시는 오희옥 지사님을 모시고 서울의 끝자락 동대문구 신내동에 살고 계시는 유순희 지사님 댁을 찾아 나섰다. 이날은 메마른 대지 위에 촉촉한 봄비가 내리고 있었고 아파트 주변에 심은 산수유 꽃이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갓난아기 안고 광복군 활동, 유순희 지사


황해도 황주 출신인 유순희 지사는 광복군 제3지대에 제1구대 본부 구호대원(救護隊員)으로 광복이 될 때까지 활동하셨다. 그의 나이 열여덟 때의 일이니 벌써 73년 전이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고 계시는 사이, 기자는 거실 벽면에 걸린 한 장의 흑백 사진을 발견했다. 유리 액자를 떼어 유 지사님 손에 들려드리자 막혔던 말문이 터지듯 73년 전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들려주셨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 앨범을 펴보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유순희 지사(가운데), 오른쪽 빨간 웃옷차림은 오희옥 지사로 이들 생존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기자가 꼼꼼히 새겨듣고 있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 앨범을 펴보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유순희 지사(가운데), 오른쪽 빨간 웃옷차림은 오희옥 지사로 이들 생존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기자가 꼼꼼히 새겨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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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흑백 사진은 해방되기 1개월 전인 1944년 7월 광복군 제3지대의 제1구대 본부 구호대원들을 찍은 것이었다. 유 지사는 맨 앞줄에 자리한 자신을 가리켰다. 아뿔싸. 그런데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녀석이 제 아들이에요. 갓 낳은 핏덩이가 지금 일흔을 넘었으니 세월이 많이도 흘렀지요."

유순희 지사는 유일한 '유부녀 광복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대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갓난쟁이 아들 이름은 '광삼(光三)'으로, 광복군 제3지대를 의미하는 뜻에서 부대원들이 지어주었다. 그 어린 광삼이를 안고 유순희 지사는 당당한 광복군이 되어 뛰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에서 조선을 침략해 점령한 일제를 몰아내고자 한국광복군총사령부(韓國光復軍總司令部)가 창립됐다. 광복군은 4개 지대(支隊)로 편성하고 각 지대 내에 3개 구대(區隊)를 두고, 다시 각 구대 내에 3개 분대(分隊)를 설치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광복군 부대 편성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부대원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남의 땅에서 군대 조직을 꾸린다는 게 예삿일은 아니다. 다행히 1942년 4월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가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함에 따라 2개 지대 편성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광복군총사령부는 1942년 2월 김학규를 산동성으로 특파해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당한 한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초모공작을 전개했다. 이때 김학규는 양자강 이남의 안휘성 부양에 머물면서 3년 남짓 초모 활동을 전개했다.

유순희 지사는 1944년 11월 중국 하남성 녹읍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전방 특파원 조성산과 접선해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했다. 1945년 2월 김학규가 이끄는 광복군 제3지대 화중지구 지하공작원 윤창호로부터 광복군 지하공작원으로 임명받았다. 그 뒤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한 뒤 제3지대 제1구대 본부 구호대원으로 활약했다.

"유 지사님. 이런 갓난아기를 안고 정보활동을 하시다니 굉장히 위험했겠어요. 만일 아기가 울기라도 하면 어쩌려구요."

기자의 질문에 유순희 지사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쩌겠는가! 갓난아기를 안고라도 광복군에 뛰어들 수밖에 없던 상황을 어찌 지금의 시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은 이애라(1894~1922) 지사가 갓난아기를 업고 독립운동을 하다 아기가 우는 바람에 서울 아현동에서 잡혀 아기가 죽음을 당한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광복군 제3지대 부대원들이 지어준 어린 핏덩이 광삼이와 유순희 지사는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행복했다. 아이 아빠가 같은 부대원으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광삼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최시화(崔時華, 1921~?)씨로 당시 나이 24살이었고 유순희 지사의 나이는 19살이었다.

건강이 몹시 안 좋은 유순희 지사(가운데) 왼쪽은 오희옥 지사, 그리고 푸른 한복은 기자
 건강이 몹시 안 좋은 유순희 지사(가운데) 왼쪽은 오희옥 지사, 그리고 푸른 한복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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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슬 좋은 광복군 동지 출신의 부부 독립운동가였던 유순희 지사는 불행하게도 환국 후 6·25전쟁 때 남편과 헤어지게 됐고 홀로 어린 세 자녀를 키워야 하는 운명과 맞닥트렸다. 길고 긴 고난의 길이 시작됐다. 그래도 유 지사는 꿋꿋하게 자녀들을 키워냈다. 지금은 손녀딸(둘째 아드님의 딸)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다.

손녀딸이 딸기 등 과일 준비를 하는 동안 유 지사는 한국광복 제3지대의 활약상이 담긴 <항일전의 선봉>이란 앨범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1982년에 한국광복군제3지대사진첩발간회에서 만든 흑백사진첩 속에는 유순희 지사를 비롯한 수많은 광복군의 활동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유 지사는 당시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듯 손가락으로 한 분 한 분을 가리키며 설명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동지이자 남편인 최시화 지사의 사진이 나오자 감회에 젖는 듯 멈칫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생존 여성 독립운동가는 단 세 분뿐

유 지사가 활동하던 흑백 사진 속의 시간은 어느새 73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의 나이 92세! 참으로 무정한 세월이었다. 일제의 침략에 저항해 어린 핏덩이를 안고 광복군에 뛰어든 시절부터 환국하여 또 다시 겪은 민족의 비극 6·25전쟁, 그 전쟁에서 남편의 생사도 모른 채 어린자식들을 부여잡고 살아온 세월.

"정말이지 내가 92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유순희 지사는 기자가 사들고 간 안개꽃 화분을 지그시 바라다 보았다. 마치 안개 속 같았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듯했다. 이날 함께 유순희 지사 집을 찾은 오희옥 지사는 유 지사와 동갑이지만 건강이 조금 나으신 편이다. 그래서 적지 않으신 연세에도 각종 기념식이나 독립운동 관련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신다.

 2015년에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생존여성독립운동가인 민영주,박기은,오희옥,유순희 지사의 손도장 모습, 그러나 이 가운데 박기은 지사는 올해 1월 7일 타계하셨다
▲ 대한독립여자선언서 2015년에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생존여성독립운동가인 민영주,박기은,오희옥,유순희 지사의 손도장 모습, 그러나 이 가운데 박기은 지사는 올해 1월 7일 타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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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생존한 여성독립운동가는 유순희, 오희옥, 민영주 지사 세 분뿐이다. 이제 이 분들에게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을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유 지사님, 햇살 고운 가을날, 오희옥 지사님이 수원에서 용인으로,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하고 나면 제가 모시러 올게요. 함께 나들이해요."

기자는 두 손을 꼭 잡아 드렸다.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는 수척한 모습의 유순희 지사. 대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 왠지 코끝이 찡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계 바늘이 얼마를 기다려줄지 모르는 세월 앞에서 그저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는 말 밖에는 건넬 수 없다는 사실이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참고로, 남편 최시화 지사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고 유순희 지사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이 시대 우리가 진정 기억해야할 부부 독립운동가다.

부부독립운동가 최시화, 유순희 지사의 훈장증서
 부부독립운동가 최시화, 유순희 지사의 훈장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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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유순희, #광복군, #여군소대, #여성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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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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