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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장을 청구한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에 영장청구 소식을 들은 박사모 정광용 회장 등 지지자들이 몰려와 탄핵무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 박근혜 자택앞에 나타난 박사모 회장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장을 청구한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에 영장청구 소식을 들은 박사모 정광용 회장 등 지지자들이 몰려와 탄핵무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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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진실이 강물처럼 흐르는 그 날이 올 때까지, 그리하여 마침내 저 거짓의 무리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단죄할 때까지 우리는 이 치욕을, 이 불의를, 이 거짓을 잊지 않겠노라고 뼈에 새겨야 한다."

한국현지시간으로 지난달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되자 정광용 '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박사모) 회장이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이다. 정 회장의 성명은 사뭇 어조가 비장하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무고하다는 확신에 차 있다. 정 회장의 주장이다.

"오늘 새벽 우리는 서울구치소 앞에서 두 눈을 뜨고 단 돈 1원도 착복하지 않은 이 나라 대통령이 처참하게 끌려들어 가는 장면을 보았다. 그래. 말 돌릴 것 없다. 오늘 우리는 졌다. 그동안 목이 터져라 정의와 진실을 외쳤지만 오늘 우리는 비참하게 패배했다.

남창 고영태 일당이 설계하고, 검사장금(편집자주-검사장급의 오기로 보임) 검사가 협잡하고, JTBC 손석희, TV조선 이진동 기자 등 거의 모든 언론이 조작에 가담하여 녹음파일 등 그 증거물까지 완벽함에도 그 더러운 어둠의 세력은 승리했고, 우리는 참패했다."

이 같은 정서는 정 회장에게 국한되지는 않아 보인다. 박사모 회원들은 박 전 대통령을 무흠결의 존재로 보는 듯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스>조차 이들을 '이교적'(cult-like)이라고 칭했다.

박 전 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 정권에 불리한 쟁점이 떠오를 때마다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 극우단체는 물타기를 시도했다. JTBC 등은 이들의 활동 자금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댔고, 전경련의 돈을 받은 극우단체들은 집회 후 참가자들에게 소정의 일당을 지급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극우집회 참가자들이 모두 일당에 동원됐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참가자들 가운데엔 나라를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든 이들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보수 대형교회 신도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을 그저 그릇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이들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이루는 소중한 일원이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이들의 사고방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어 보다 주도면밀한 분석을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시민도덕을 심어서 다시 공동체로 돌려보내야 한다.

나치의 과오를 재조명한 독일 전후문학

독일의 사례를 보자. 딱히 장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작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그리고 지그프리트 렌츠의 <독일어 시간>은 '전후문학'의 범주에 넣는다. 전후문학이란 말 그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온 문학이라는 말이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인 오스카르 마체라트(양철북)와 지기 예프젠(독일어 시간)이 정신병동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르 마체라트의 회상이다.

"그래, 사실이다. 나는 정신 병원에 수용된 환자다. 나의 간호사는 거의 한눈도 팔지 않고 문짝의 감시 구멍으로 나를 지켜본다. 하지만 간호사의 눈은 갈색이기 때문에 푸른 눈의 나를 들여다볼 수는 없다."

작가들이 왜 이런 이야기 전개 방식을 택했을까? 독일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산업·문화 강국이다. 영국의 사회주의 역사가 E. J. 홉스봄은 자신의 책 <극단의 시대>에서 독일의 생산력이 산업혁명을 꽃피웠던 영국을 능가해 결국 유럽의 주도권을 장악할 것이고, 두 번의 전쟁도 독일의 부상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예언은 옳았다. 지금 독일은 유럽의 강국을 넘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경까지 힘을 키웠다. 독일의 저력은 경제와 산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문화면에서도 독일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프리드리히 실러, 하인리히 하이네 등 걸출한 문인들 및 베토벤 같은 음악가를 배출했다.

불행하게도 경제, 문화 강국 독일은 명백하게 반이성적이고 반지성적인 국가사회주의(나치)의 광풍에 휘말렸다. 이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전쟁 이후 독일은 물론 연합국까지 나서 독일이 왜 나치에 열광했는지를 분석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일었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지그프리트 렌츠의 <독일어 시간>은 이 같은 시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올바른 시민도덕의 함양, 최우선과제 되어야 

독일의 사례는 '박근혜 이후'의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박사모를 축으로 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행태를 돌이켜 보자. 이들은 박 전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온 몸을 던졌다. 박 전 대통령이 영장실질 심사를 위해 삼성동 자택을 나서기 직전인 30일 <한겨레신문>은 박사모의 행태를 이렇게 전했다.

"일교차가 커 아침은 추운 날씨여서 대체로 고령인 지지자들은 마스크, 장갑, 털모자 등으로 무장했고, 이들의 손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억지 탄핵, 원천 무효'라고 적힌 피켓 등이 들려 있었다. 일부 지지자들은 지난 21일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간 날 아침처럼 길바닥에 드러누워 "우리가 죽더라도 대통령을 살려야 한다"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아이고 우리 대통령님"하며 울부짖는 이들도 있었다. 한 남성 지지자는 취재 중인 사진기자에게 먹다 남은 커피를 뿌리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단지 일당 몇만 원에 동원됐다고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을 신적 존재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분명 이들은 누군가에겐 좋은 남편이자 아내, 좋은 엄마이자 할아버지, 할머니일 텐데 말이다.

박사모를 그저 일당 받고 난동부리는 시위꾼으로 치부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건 배를 움켜쥐고 응급실을 찾은 환자에게 소화제 처방을 내리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실제 병원현장에서 이런 식으로 처방을 내린 의사는 선배 의사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는다.

그보다 우리 사회 공동체가 모두 발 벗고 나서서 왜 이들이 준동했는지 면밀히 분석해 원인을 찾고,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올바른 시민의식을 심어줘야 한다. 만약 이런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얼굴을 한 박근혜 세력이 박사모 같은 맹목적 지지자를 자산으로 삼아 권토중래를 노릴 것이다.

무엇보다 5월 대선을 통해 들어설 새 정부가 박사모를 끌어안으려는 노력에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미주 한인매체 <뉴스M>에 동시송고했습니다.



태그:#박사모, #정광용, #귄터 그라스, #지그프리트 렌츠,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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