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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세월호가 들어온 목포신항 철재부두 철책 앞에 많은 시민들이 모여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31일 세월호가 들어온 목포신항 철재부두 철책 앞에 많은 시민들이 모여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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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목포시민이라 짐작했지만 아니었다. 서울에 사는 40대 후반 박소영씨는 하루 전 세월호를 보러 목포에 와 있었다고 했다. 참사에 가족이 희생된 이도 아니었다. 타인의 슬픔을 자기의 슬픔으로 받아들였을 뿐인 박씨는 목포신항만 철책을 붙잡고 서서 한참이고 세월호 밑바닥을 응시했다.

"우리 애들이랑 동갑인 애들이 죽었어요. 그래서 더 와 닿은 것 같아요. 그 아픔이, 아이들을 먼저 보낸 부모들의 마음이."

세월호가 반잠수식 선박에 실려 목포신항으로 들어온 31일, 세월호를 보러 부두로 온 이들 중 한 사람인 박씨는 "세월호가 침몰할 때부터 계속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요, 그동안 나도 너무 가슴이 아팠는데, 세월호가 이제 올라온다니까 안 와볼 수가 없었어요"라고 했다.

그는 "정말 아쉬웠던 건 세월호를 자꾸 교통사고라고 하고 인양비용이 어떻다고 하고 자꾸 정치적으로 얘기하는 거였어요"라며 "대한민국을 끌고 갈 아이들이 죽었는데, 이게 당연히 국가 책임인데 '여행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는 게 그게 말이 돼요?"라고 되물었다.

박씨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사고가 났으면 국가가 대처를 해야 하는데 그런 체계도 없었던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라며 "이제 그런 일이 일어나도 아이들이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언론에도 고마움을 표했다. "그래도 기자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애를 많이 쓰시고 해서 세월호도 이렇게 인양이 되지 않았나 해요"라고 말하며 "우리 같은 남들이 끝까지 관심을 가져줘야지 저분들(미수습자 가족 및 희생자 유가족)이 힘을 내서 끝까지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어요"라고 했다.

"정말, 진짜, 한 사람도 안 빼먹고 다 찾아야지" 

▲ [전체보기] 세월호 목포신항 이동 및 도착 현장 <오마이TV>는 목포신항을 방문한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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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민인 이현섭씨(63)는 아내와 함께 부두로 왔다. 그는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 다 찾아야 할 텐데…, 단 한 사람도 안 빠지고"라면서 "만에 하나 한 사람이라도 못 찾으면 그 사람은 세 번 죽는 거여"라고 했다.

참사로 인해 한번, 그동안 시신 수습을 못 한 채 미수습자로 한번, 세월호 인양 뒤에도 찾지 못하면 영영 찾을 길이 없어 또 한 번, 세 번을 죽는다는 우려였다. 이씨는 "이번에 못 찾으면 영영 찾을 길이 없지"라며 "정~말 좀 찾았으면 좋겠어. 진짜 한 사람도 안 빼먹고"라고 했다. 그 역시 참사에 가족을 잃은 이가 아닌 그저 '같은 대한민국 사는 사람'일 뿐이었지만 바람은 이토록 간절했다.

이씨는 업무차 진도와 팽목항을 오가며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고 했다. "그동안 봐 왔으니까. 너무 맘이 아팠고, 이렇게 배가 올라온다니 안 와볼 수 있었겠어요?"라고 했다.

마침 이날 새벽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이씨는 "그게 참... 이게 참... "하며 말을 잇지 못하더니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요, 박근혜가 들어가니 세월호가 나왔다 말이요,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고 막 그렇대"라고 했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선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온 박 전 대통령의 구속과 세월호의 인양 성공이 겹쳐진 게 참으로 공교롭다는 얘기였다.

이씨는 "세월호를 우리 목포시민들이 잘 맞아줘야죠. 다 같이 안고 보듬고 가야죠"라며 이후에도 관심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31일 세월호가 들어온 목포신항 철재부두 철책 앞에 많은 시민들이 모여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31일 세월호가 들어온 목포신항 철재부두 철책 앞에 많은 시민들이 모여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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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한 사람으로 죗값 치르러 왔다. 목포시민들 고마워"

그동안 팽목항 등 세월호 참사 현장에 가보질 못한 '부채의식'으로 멀리서 이날 현장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휴가를 내고 서울에서 목포로 세월호를 보러 왔다는 조영진씨(54)는 "세월호 참사 때는 어머니 병간호 때문에 못 왔어요"라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 죗값을 치르러 왔어요"라고 했다.

조씨는 "목포시민들이 세월호를 맞이하는 현수막도 걸어두는 걸 보면서 목포시민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조씨와 함께 온 친구 김동영(53)씨는 "희생자 가족들한테는 미안해서 말도 못 붙이겠다"며 말을 아꼈다.

단원고 희생자들과 동년배인 대학생들도 세월호를 보러 왔다. 충남대학교 역사교육학과 재학생 70여 명은 단체로 사적답사 여행으로 목포에 있던 참에 세월호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오전 일정을 잠시 미루고 목포신항으로 왔다.

세월호를 보며 눈물만 흘린 이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근처에 있는데 어떻게 안 와볼 수 있겠어요"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라고 했다.


태그:#세월호, #철재부두, #목포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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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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