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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을 타고 섬·포구·서해바다를 만날 수 있는 인천여행을 종종 떠나곤 한다. 이 도시에서 구도심 혹은 원도심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신도시를 지어 아파트와 주요 시설들을 모조리 옮겨 놓다보니 휑한 구도심이 생겨난 것. 구도심은 옮길 수 없는 전통시장과 항구, 기차역 같은 것만 남아 황폐화되고 있는 중이다. 어느 곳이나 할 것 없이 '구도심 활성화'가 지자체, 단체장 선거의 단골 공약이 되고 있다. 

목포와 부산에 여행을 갔을 때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두 명의 도시계획 전문가가 쓴 이 책 <강남의 탄생>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대한민국의 많은 광역시와 소도시들이 모두 제2의 강남을 꿈꾸며 신도심을 개발하는 것이라는 걸. 사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강남'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훨씬 더 엄청나다.

한국 현대사에서 강남은 단순한 행정구역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강남이 품고 있는 사회, 문화적 내용 외에 지난한 현대사와 도시 개발사가 담겨있는 강남의 '진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러 역사적 사실과 수면 아래 잠겨 있던 이야기들이 마치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펼쳐진다.

강남 개발의 역사와 흥미로운 뒷이야기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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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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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서울은 포화 상태였다. 전국 농촌에서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일자리를 찾아 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서울 인구를 분산시키고, 불과 10여 년 전의 한국전쟁 때를 생각해 유사시 피난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강남 개발을 결정했다.

강남은 지대가 낮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개발 가능한 공간이 엄청나게 넓다는 장점도 있었다. 개발 부지의 면적은 937만 평으로 강북의 사대문 안 면적이 500만 평과 비교하면 강남의 면적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할 수 있다. 이때 강남의 땅값은 강북에 비하면 거저나 다름없었고, 강남 개발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은 적지 않은 정치자금을 조성할 수 있었다. - 본문 가운데  

강남은 한국인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빨리빨리 정신'이 최대한으로 구현된 지역이다. 강북의 명문 학교와 대법원·검찰청·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옮겨 갔고 각종 특혜가 퍼부어졌다. 그렇게 불과 10여 년 만에 드넓은 미개발 불모지였던 강남은 완벽한 현대 도시로 탈바꿈했다. 책에서도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초고속 상전벽해의 도시 개발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강남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바로 부동산 투기일 것이다. 1966년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 건설과 함께 개발되기 시작한 강남은 우리나라 땅 투기의 발원지였다. 이는 영화 <강남 1970>(2014년)에도 생생하게 나온다.

당시 부동산 투기를 가장 먼저 시작한 이는 유신 정권의 실세 중 한 사람이었던 경호 실장 박종규였다고 한다. 그가 서울시 도시계획과장 윤진우와 함께 땅 투기를 벌인 후, 박정희 정권에 상납한 돈이 지금의 가치로 치면 6천억 원으로 고스란히 제3, 4공화국의 정치자금이 된다.

1963~1979년 16년간 학동의 땅값은 무려 1333배, 압구정동은 875배, 신사동의 경우 1천 배가 올랐다니 그런 천문학적인 수익이 생길 만하다. 이 '원죄'로 인해 강남을 포함해 대한민국의 땅값을 지금과 같은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치솟게 만든 일등공신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낳게 된다.

가장 강력한 환경보호 제도인 그린벨트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주요 업적인 그린벨트가 사실은 정부가 원하는 지역의 땅을 팔고 싶어서 나머지 땅을 개발 제한 지역으로 만든 것에서 나온 것이라고. 선의로 시작한 정책이 나쁜 결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린벨트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강남 개발이 품은 지난날의 그늘

1971년 잠실 지구 종합개발 기공식 기념 잠실섬 폭파 장면.
 1971년 잠실 지구 종합개발 기공식 기념 잠실섬 폭파 장면.
ⓒ 미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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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도로 등 강변에 도로를 지으면서 서울 동서 간의 교통이 아주 편리해졌다. 하지만 엄청난 대가도 치러야 했는데, 서울 시민들의 한강 접근이 봉쇄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한강의 접근성을 두고 센강이나 템스 강과 비교하면서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옛 한강변이 풍기던 전원적이고 예술적인 풍경은 완전히 말살되고 말았다. - 본문 가운데

자전거 타고 한강가를 산책하는 취미가 있어선지, 강남 개발을 하면서 모습이 변한 한강의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잠실섬, 부리섬, 저자도, 주작도... 신도시를 짓기 위해 매립하거나 골재를 얻기 위해 폭파되어 사라진 한강의 섬들이다. 1968년 여의도 개발을 위한 골재를 얻기 위해 폭파 해체된 밤섬처럼.

강남 지역 개발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비리

사건과 참사 사건을 낳기도 했다. 저자가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괴인으로 표현한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 1979년 대치동 은마 아파트 건설로 돈을 벌기 시작한 그는 '한국의 보물'같은 기업을 만들겠다며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도 뇌물을 받치는 등 온갖 부패, 비리를 저질렀다. 현재 해외 도피한 상태로 체납 세금은 자신과 아들들의 체납까지 더해 무려 3100억 원이 넘는다. 그 같은 인물이 아파트를 지은 땅이어서 일까. 지금도 전국의 세무 체납액 1위 지역은 강남이다.

1995년 직원과 손님 등 502명이 사망한 해방 이후 최대의 참사인 서초동 삼풍백화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사건은 세월호 참사와 너무도 닮아 놀라울 정도였다.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 경영진은 모두 빠져 나가면서도 엉터리 안내 방송을 하면서 사람들의 탈출을 막았다.

편법으로 건물을 증축하고, 참사가 일어나기 불과 13일 전에 실시된 안전진단에서 늘 그랬듯이 '이상 없음'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참사 이후 난지도 쓰레기처리장에서 유품와 사체 일부가 나와 유족들이 당국에 거세게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등 '불법과 탈법' 자체였던 삼풍백화점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최대의 법원단지 바로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다.

책 후반 강남을 따라해 도시를 개발한 여의도, 노원, 목동 등 '작은 강남' 편도 흥미로웠다. 강남을 닮고 싶어 했던 각각의 동네에 담긴 역사 속 이야기가 마치 단편소설처럼 극적으로 펼쳐진다. 유독 관심이 간 건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안양천변의 낮고 평범했던 동네 목동.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비행기 때문에 동네 운명이 바뀐 사연이 소개된다. 강남이나 작은 강남 어느 곳에서나 정부와 대자본이 주도하는 속전속결식 개발로 인해 원주민들의 저항이 벌어지는데, 목동 원주민들의 끈질긴 '목동투쟁'은 이후 서울시 도시 개발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된다.

책을 읽다가 드는 생각은 강남은 한국 현대사의 얼굴이라는 사실이다. 강남은 안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를 안다는 것과 같다던 저자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강남은 강남 사람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한국 사람들을 닮아있다. '한 나라의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말이 있다. 현대의 도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1978년 압구정동 개발 당시의 풍경.
 1978년 압구정동 개발 당시의 풍경.
ⓒ 미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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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한종수 | 강희용 (지은이) | 미지북스 | 2016



강남의 탄생 - 대한민국의 심장 도시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한종수.강희용 지음, 미지북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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