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2일 오후 성공회대학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한 정책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백승목 후보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했다.
 22일 오후 성공회대학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한 정책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백승목 후보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했다.
ⓒ 선거운동본부 '바다'

관련사진보기


"저는 게이입니다."

2017년 3월 22일 오후 6시 30분. 한 사람이 벽장 문을 박차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는 가면을 벗은 채로 세상을 향해 외쳤다.

"이제는 저를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커밍아웃의 주인공은 성공회대학교 제32대 총학생회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백승목 후보다. 백 후보는 성공회대학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한 후보자 정책토론회에서 자신이 게이임을 당당히 드러냈다. 그의 커밍아웃은 일목요연했다. 중학생 때부터 지속되어온 성적 지향에 대한 고민부터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과정, 학내 인권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 피력까지, 한 삶의 굴곡을 읽으며 자연스레 그의 커밍아웃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백 후보의 커밍아웃에 대한 언론 보도도 잇달았다. <경향신문>은 백 후보의 커밍아웃 발언 내용을 전달함과 동시에, 성소수자에 대한 대학 사회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학생들의 의식이 점차 개선됨에 따라, 출마한 후보의 성적 지향이 아닌 공약과 비전에 무게를 둠으로써, 성소수자의 학내 자치기구 출마 및 당선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5년 김보미 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시작으로 다수의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들이 총(여)학생회 정·부회장, 동아리연합회장 등에 당선되어 학내 자치기구를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 후보자의 커밍아웃을 단순한 '선거 전략'으로 치부하는 기사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크리스천투데이>는 23일 보도를 통해 "최근 대학가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한 후 총학생회 출마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며 "대부분 단독 출마이기 때문에 '투표율'이 관건인 선거를 앞두고, 동성애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투표 참여 유도 전략 중 하나로 사용하는 듯한 느낌도 주고 있다."고 서술했다.

<크리스천투데이>의 관련 보도는 '무례함과 무지함의 산물'이다. 커밍아웃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세상에 드러내는 행위다. 그렇다고 해서 커밍아웃을 단순한 '공표' 행위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세상을 살고 있다. "동성애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식의 위협으로 상징되는 조직화된 폭력 앞에,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기란 용기를 뛰어넘는 '중대한 결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행'이란 표현으로 커밍아웃의 본질을 호도하기 바쁜 <크리스천투데이>의 보도 작태는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크리스천투데이>의 망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성소수자 후보자의 커밍아웃을 '투표 성사를 위한 동성애 문제 이슈화'로 폄하하며, 일종의 '투표 참여 유도 전략'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후보자가 성소수자면 투표율이 오르는가? 투표율이 오른다고 후보자의 지지율 또한 무조건 오르는가? 입증된 통계나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크리스천투데이>의 보도에 얼마나 억지스러운 주장이 내포되어 있는가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크리스천투데이>는 커밍아웃한 백 후보를 대학 내 '논란거리'정도로 치부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들이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커밍아웃이 일종의 투쟁 선언이라는 점이다. 성소수자인 자신을 한참이나 짓누르고 있던 배제와 억압을 떨쳐낸 이들은 결코 차별과 혐오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세게 맞서 싸운다. 그러므로 커밍아웃은 '선거 전략'보다 진솔하고 강력한 '투쟁 전략'에 훨씬 가깝다.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진 '퀴어 프라이드' 말이다.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성소수자뿐 아니라 성공회대 모든 사람을 위해 필요합니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학교, 모든 폭력에 저항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백 후보가 커밍아웃과 함께 밝힌 포부다. 그의 포부가 하루 빨리 실현되길 소망해본다. 아울러 더 나은 대학 공동체를 위해 출사표를 던진 그에게 심심한 응원과 묵직한 격려를 보낸다. 저항과 연대를 무기로 그가 일궈낼 승리에 비하면, 선거에서의 승리는 시작에 불과하기에.


태그:#커밍아웃, #성소수자, #인권, #대학 성소수자, #크리스천투데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을 읽습니다. 글을 씁니다. 그 간격의 시간을 애정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