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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유진(민언련 정책위원),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서명준(언론학 박사),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용마(MBC 기자), 정민영(변호사), 정연구(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정연우(세명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말

지난해 3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개발진들이 15일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시상식이 끝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가치를 생산'하는 로봇 기자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개발진들이 15일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시상식이 끝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가치를 생산'하는 로봇 기자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 구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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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비를 줄이시려면 오늘 당장 로봇 하나 장만하세요! 로봇이야말로 제일 싼 값으로 노동력을 제공해드리거든요."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Carel Čapek)는 그의 작품 <R.U.R(Rosuum's Universal Robots)>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1920년대 작품인데, 그는 여기서 로봇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해 세상에 알린 작가이다. 로봇은 체코어로 노동을 의미하는 단어 'robota'에서 온 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로봇은 독일어, 영어, 불어 그리고 체코어 등 4개 국어를 사용한다.

차페크의 로봇이 출현한 이후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로봇은 스스로 '커뮤니케이션'을 깨우쳐 나가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로봇은 이제 더 이상 먼 미래에나 나오는 꿈을 그린 희곡작품의 소재가 아니다. 그것은 생산 과정의 일부이자, 일상이 되고 있다. 인간과 닮아가는 것,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로봇기사, 보도의 새 장이 열린다

사람으로 거듭나려는 로봇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한 가지 능력이 있다. 언어능력 즉,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오늘 로봇은 이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자동차산업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로봇은 인간 생활의 다양한 영역으로 존재를 확장해가고 있다. 이 변화에 매우 민감한 영역이라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저널리즘이다. 언어로, 커뮤니케이션으로 '가치'를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이 스포츠 기사를 자동 생산하는 알고리즘 '스탯 몽키Stats Monkey'를 개발하고, 이 기술로 아예 네러티브 사이언스(Narrative Science)라는 뉴스 벤처를 창업해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 2010년이다. 로봇이 기사를 생산하기 시작한 지도 곧 있으면 10년째가 된 셈이다.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Berliner Morgenpost)>와 같은 독일 언론들도 알고리즘 기사를 생산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독일의 연방정보국(BND)은 네러티브 사이언스와 유사한 독일 기업 엑세아(Aexea)에 투자하고 있다.

간단히 로봇기사는 이런 식이다. 축구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2:0 승부처럼 일반적인 결과에 해당하면 "이겼다"고 쓴다. 반면 10:0처럼 흔치 않은 결과가 나오면 "도륙했다"는 표현을 적용한다. 비바람이 부는 날 치러진 경기가 10:0으로 끝난 경우라면, "비바람처럼 도륙했다"고 쓴다. 더구나 로봇은 스스로 배워나가는데, 예컨대 10:0으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면 그냥 "이겼다"고 쓰기 시작한다.

인간 기자가 작성한 기사가 누구에게 적합하고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지도 로봇 기자가 정해준다. 더구나 알고리즘 설정에 따라 비판적, 냉소적 기사나 신뢰가 강조되는 기사 등 논조도 조정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금융·경제, 날씨 기사 등이 하룻밤 사이에 만 수백만 건이 작성되어 타깃 독자에게 도달할 수 있다.

로봇 이야기가 나오면 늘 따라다니는 것이 바로 로봇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다. 저널리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위키피디아에서 로봇 프로그램들은 서로 상대 로봇이 고친 내용을 다시 돌려놓거나 엉뚱한 링크를 걸어놓기도 한다. 지난 2011년 미국 코넬대의 실험에서는 대화용 로봇인 챗봇(ChatBot)들이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고 결국 신에 대한 논쟁으로 끝을 맺은 적이 있다.

엑스큐봇-다크니스봇이 콘텐츠를 관철시키기 위해 벌인 경쟁이나, 일본의 다치마봇-루스봇의 경쟁은 2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인간 기자의 편집 경쟁은 며칠이나 길어야 몇 달 정도 가지만, 로봇 기자의 그것은 수년에서 수십 년도 갈 수 있다. 가히 편집전쟁이라 할 만하다.  

인간 기자, '창조적 기사'로 살아남으라

사정이 이렇다면, 로봇 기자가 작성하고 편집한 기사 콘텐츠는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언론사는 이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할까, 적극 도입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논쟁은 늘 현실에 기반해서 진행되어야 의미가 있다. 그것은 로봇의 저널리즘 노동이 얼마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가져다주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에서 핵심은 '산업'에 있다. 그것의 물질적 현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먹고 살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리다 결국 정리해고 당하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Modern Times)>는 그래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자본주의 리런칭(Relaunching)의 시절에 인간 기자들의 정리해고는 불가피해질 것이다.

이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인간 기자는 기계들과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데이터 저널리즘의 경쟁에서 기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법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충실한 창조적인 기사 생산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제껏 밝혀지지 않은, 또는 가려져 있던 인간 고유의 영역을 발견해내야 한다.

로봇 기자는 동료로서 인간 기자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우리의 노동이 보다 큰 인간적 가치를 가지기 위해 당신들은 새로운 창조성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로봇 기자여, 당신의 입사를 환영한다.

덧붙이는 글 | 서명준 기자는 베를린자유대 언론학 박사이자 민언련 정책위원입니다.



태그:#로봇기자, #로봇기사, #스탯 몽키, #인간기자, #시시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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