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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정치적 경험도 없고 대통령으로서의 자질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트럼프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트럼프는 전국 유권자 득표율에서는 약 2%p차로 클린턴에게 패했지만, 30개주에서 승리하여 각 주별로 배정되어 있는 선거인단 538명 중 306명을 확보함으로써 승리를 확정지었다.

트럼프의 당선은 양극화가 심했던 지난 두 차례 대선보다 더 강하고 복잡해진 미국 사회의 균열을 반영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심화되어 온 정치적 양극화 결과 최근 몇 차례 대선에서는 공화-민주 양당에 대한 지지 세력이 안정적으로 고착화된 경향을 보였다. 농촌 및 소도시에 거주하는 백인 남성들과 중장년층 유권자들이 주로 공화당 후보를 선호하고 대도시에 거주하는 유색인종 및 여성, 그리고 청년들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왔다. 또한 공화당 지지자들은 대부분의 이슈들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민주당 지지자들은 진보적인 태도를 강화시켜 왔다.

이러한 경향을 바탕으로 다수의 언론들은 트럼프의 승리를 '보수화된 백인 남성들이 공화당의 투표 블록을 강하게 형성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오바마 시대를 거치면서 기존 지지 집단들의 이념적 양극화가 보다 뚜렷해진 결과, 그간 유색인종 및 여성 우대정책에 불만을 가져 왔던 백인 남성들이 더욱 보수화되어 트럼프 지지로 결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의 이면에는 이념적 양극화나 보수화된 앵그리 화이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다. 트럼프 자신도 이념적 정체성이 약한 후보였거니와, 무엇보다 트럼프의 열렬 지지자들은 보수성을 강하게 띠지도 않고 공화당의 전통적인 정책에도 그다지 찬성하지도 않는 계층이다.

그들은 오바마의 사회보장제도 및 의료보험 정책의 폐기를 원하지 않으며, 월가를 혐오하고 자유무역에 반대할 뿐 아니라 공화당의 입장과 달리 부유세나 기업 규제에 찬성한다. 더구나 민주당 경선에서 사회주의적 입장을 바탕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샌더스의 지지자들 중 상당수 젊은 유권자들이 클린턴 대신 보수정당의 트럼프에 투표했다는 사실은 트럼프의 당선을 전통적인 보수-진보 스펙트럼으로 분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2016년 미국 대선 유권자들의 후보 지지 분포
 2016년 미국 대선 유권자들의 후보 지지 분포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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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정치에 혐오하는 사람들

트럼프 지지자들 다수는 백인 남성이었다. 그러나 백인들의 표가 유독 2016년에만 공화당 후보에게 몰린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백인 유권자 중 57%의 지지를 받음으로써 2012년 롬니 후보가 백인들로부터 받았던 59%보다 낮은 득표율을 보였다. 백인들의 공화당 후보 쏠림 현상은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나타났으며, 2012년에 이미 그 정점에 도달한 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2016년에 특히 트럼프를 지지하고 선택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트럼프의 승리에는 플로리다, 아이오와, 오하이오 등 전통적 경쟁주에서의 승리와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그간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주들의 이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주들은 오하이오를 제외하고는 모두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가 공화당의 롬니를 5% 이상 차이로 이겼던 지역이다.

민주당 우세 지역이던 이 지역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북부 러스트벨트를 형성하고 있는 이 주들에서 저소득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한 때 자동차, 기계 등 제조업이 발전했던 이 지역은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대거 실업자를 양산한 곳이다. 트럼프는 공장이 사라진 이 지역의 백인 노동자들에게 제조업 부활과 인프라 확충을 약속하면서 일자리 증대에 대한 희망을 심어 주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트럼프는 러스트벨트를 넘어 전국적으로 백인 저소득층 유권자를 동원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트럼프 승리의 가장 큰 요인이 된 저소득·저학력층 백인 유권자들은 '기존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이들은 미국 정치를 보수와 진보가 아닌 기성정치와 새정치로 바라본다. 연방 정부에 대한 신뢰가 1960년대 이래 가장 낮게 나타나고 있는 현재의 미국에서 기성정치에 분노하는 유권자들은 기존 시스템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가 도래하기를 원한다. 바로 여기가 트럼프 지지층과 샌더스를 지지했던 백인 젊은층의 요구가 일치하는 지점이다.

이에 더하여, 트럼프는 인종주의적 색채를 띤 캠페인을 통해 노동계층 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백인들을 동원하는 데 성공하였다. 2000년에 인구의 75%를 차지했던 백인 비율이 2015년에는 61%로 낮아지고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백인들의 지위와 영향력 하락에 대한 불안은 오바마 대통령 시기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트럼프는 인종주의·반이민정책을 통해 백인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더불어 트럼프의 당선에는 남성들의 여성 후보자에 대한 배제와 적대감이 한몫했다. 2016년 대선에서는 여성 후보가 출현하고 여성문제가 이슈가 되었음에도 여성들의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는 지난 선거들보다 더 높아지지 않은 반면, 남성들은 트럼프에게 예상을 상회하는 지지를 보냈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 여성 후보의 출마는 여성 유권자를 동원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기보다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편견을 자극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트럼프의 인종주의적 색채를 띤 캠페인은 다양한 계층의 백인들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의 인종주의적 색채를 띤 캠페인은 다양한 계층의 백인들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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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당제와 양극화 심화의 산물

트럼프는 백인 저소득층과 농촌 및 소도시를 중심으로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주로 농촌과 소도시에서 포퓰리즘적 정책으로 유권자들을 자극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캠페인은 고학력, 대도시 거주 보수주의자들을 포기한 듯이 보였다. 이 때문에 공화당 지도부는 외연의 확장성이 없어 보이는 트럼프 캠페인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양당제와 양극화의 심화는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그다지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던 기존 공화당 지지자들까지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선택하지 않으면 민주당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출구조사에 의하면, 트럼프에 투표한 유권자들의 51%는 트럼프가 좋아서라기보다는 클린턴이 싫어서 투표했다고 한다. 경쟁력 있는 제3의 후보가 등장하기 힘든 상황에서 양극화로 인한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이 예상 밖의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한 것이다.

한편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민주당의 행보 또한 트럼프 당선의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샌더스가 일으킨 새정치의 바람을 캠페인에 녹여내기 위해 클린턴은 정책적 좌클릭을 감행했지만 클린턴은 2016년 미국 유권자들이 원했던 새로운 정치를 기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클린턴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퍼스트 레이디, 국무장관, 상원의원을 거치면서 많은 정치적 경험을 쌓았다는 점에 있었다. 결국 클린턴은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인 청년층과 히스패닉 유권자를 동원하는 데 오바마만큼 성공하지 못하였다.

새로운 정치와 변화에 대한 열망은 트럼프 정부 시대를 도래시켰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기본 가치를 배척하면서 정치참여 경험과 정치적 지식이 낮은 유권자들을 동원하고 상대진영에 대한 적대감을 자극하여 만들어진 트럼프 시대가 이 열망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취임 한 달도 안 되어 들려오는 탄핵의 외침을 그냥 흘려 보낼 수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소영님은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트럼프, #미국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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