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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가임여성 지도'를 만드는 촌극을 벌여 사람들의 공분을 산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이야기를 꺼내자니 뒷북치는 감이 없진 않지만, 필자는 기존 논란과 조금 다른 접근을 취하려고 한다. 그전에 기존 논란부터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행정자치부는 가임여성 지도를 만들 때 GIS(지리 정보 시스템)을 활용했다. 지방자치단체별 15~49세 여성 수를 한 명 단위까지 공개하고 핑크색을 입혀 순위까지 매겼다.

이 행동에 대해 사람들이 분노한 포인트는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출산 기계 취급한다', '여성의 신체를 공공재 취급한다', '불필요한 정보를 공개해 여성혐오만 조장한다',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 등등. 요컨대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끊긴 작금의 상황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고 대책을 마련하긴커녕, 여성의 인격과 삶 그리고 고통은 지운 채 단순한 '포궁1'로 계산해버렸다는 지적이다.

사회 현상을 통계적으로 추상화하는 사람들은 늘 이 과정에서 중요한 맥락들이 지워지지 않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성이 일정한 연령대에 도달하면 꼭 아기를 낳아야 할 의무는 없다. 어떤 여성들은 애초에 결혼이나 아기 낳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행자부는 젊은 여성들에게 '가임'이란 딱지를 붙였을까?

가임여성 지도가 탄생한 이유, 고루한 '경쟁 논리'

왼쪽부터 마스다 보고서인 <지방소멸>, 한국고용정보원 지방소멸 지도, 행자부 가임여성 지도.
 왼쪽부터 마스다 보고서인 <지방소멸>, 한국고용정보원 지방소멸 지도, 행자부 가임여성 지도.
ⓒ 와이즈베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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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사람들의 추궁이 계속되자 행자부는 "지역별 출산통계를 알리고 지역별로 출산 관련 지원 혜택이 무엇이 있는지 알리기 위해 제작"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내놨다. 이때 필자는 무릎을 탁 쳤다. 왜 정부가 괴상한 지도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는 여성계의 지적처럼 정부가 가부장적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고루한 사고의 틀에 갇혀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바로 '경쟁' 논리다

중앙 정부는 직접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 재무장을 하기보다 지자체끼리 누가누가 젊은 여성들이 살기 좋고, 아기 낳기 좋은 혜택을 주는지 경쟁을 붙여 각자도생하게 만든 것이다. 지난해 9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에서 <한국의 '지방소멸'에 관한 7가지 분석>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경쟁'이다.

이 보고서는 일본 정부 총무대신, 이와테현 지사를 지낸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소멸>(일명 '마스다 보고서')의 접근을 차용했다. 위 그림의 한반도 남쪽 지도가 바로 마스다의 방식을 차용해 만든 거다. 마스다는 2040년이 오면 일본의 지방사회 대부분이 소멸한다는 암울한 전망을 제시한다. 마스다는 20~39세 여성 비율을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로 나눈 상대비에 주목한다.

젊은 여성이 많을수록 잠재적 출산율이 높고 고령 인구가 많을수록 소멸에 가까워지는 경향성이 있다는데 착안한 것이다. 이 상대비가 최소 방어선인 1.0 이상을 유지해야만 존속 가능한 사회인데, 한국은 이미 2015년에 이에 근접했다. 2.0에서 1.0으로 줄어드는데 한국은 12년이 걸렸다. 일본 16년, 미국 21년보다 빠른 추세다.

위 지도상의 주황색, 붉은색 지방의 지역들이 바로 1.0 미만인 곳들이다. 마스다의 방식을 차용한 한국고용정보원의 보고서가 나온 이후 보수 언론이든 진보 언론이든 가리지 않고 기사를 냈고 인구 절벽 위기감도 고조됐다. 이런 위기감이 팽배해진 가운데 행자부가 '가임여성 지도'를 만든 것이다. 이 지도는 한국고용정보원처럼 젊은 여성과 고령 인구의 상대비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젊은 여성 수에 주목하고 있고 결국 '젊은 여성이 많을수록 잠재적 출산율도 높다'는 막연한 기대를 공유하는 점은 같다. 문제는 이 가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게 점점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독창적이지도 않다는 것. 생물학적 관점에서 젊은 XX 염색체 소유자가 아이를 더 잘 낳는 경향이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게 사회학적 관점에도 바로 적용돼도 좋냐는 거다. 둘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마스다가 원래 하려던 말.. '경쟁'보다는 '공생'에 가까워

신생아.
 신생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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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과 고령 인구의 상대비 1.0이 최소방어선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합계출산율이(여성이 평생 낳는 평균 신생아 수) 2.1명 이상이고, 지역별로 인구 유출도 없는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했을 때만 의미가 있다. 물론 그런 상황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며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이미 약 1.24(2015년 기준)명이다. 이제 젊은 여성이 아무리 많아도 아기는 잘 안 태어난다.

반면에 일본의 합계 출산율은 1.43명으로 한국보다는 체감이 덜 할 것이다. 유능한 행정가나 연구원이라면,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신생아가 울지 않는 원인에는 젊은 여성 수 말고 '뭔가 다른 잠복 변수들이 더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게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가임여성 지도'를 보면 행자부는 이 문제를 심각히 재고하지 않은 것 같다.

재고했다면 최종적으로 '가임여성 지도' 같은 쓸모없은 자료를 만들어 사람들의 기분만 상하게 했을 리 없다. 물론 지역의 젊은 여성의 일자리, 주거환경, 문화시설, 양육 및 교육 등의 여건이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책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정하려면 어떤 변수들이 문제 상황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그중 무엇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확인부터 해보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여기서 지역별 '젊은 여성 수'와 '경쟁'에 초점을 맞추는 잘못을 했다. 이러면 정작 고용률, 유리천장 지수, 가계부채, 가사노동 시간, 부부의 가사분담률 등 진짜 중요하고 보편적인 문제들은 2차적인 문제로 밀려난다. 여성 내지 청년의 삶, 그들이 겪는 고통의 해소가 목적 그 자체가 아닌 수단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별로 젊은 여성 수 순위를 매겨놓고 경쟁을 부추겨서 뭘 어쩌자는 걸까. 중앙 정부는 "정보 제공"이라는 미명 하에 책임을 지자체에 전가하고, 순위나 매기며 구경이나 하는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 중앙 정부가 바로 저출생 극복에 적극 나서야 할 책임 주체이기 때문이다. 경쟁 논리 하에서는 반드시 그 경쟁에서 밀려나는 지역이 생기고, 승리하는 지역이 생긴다. 그러면 전자는 없어져도 되는 지역이라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마스다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경쟁'보다는 '공생'에 가깝다. 젊은 여성을 유혹할 수 있는 매력적인 지역 순위 따위를 매긴다면 지방은 도시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도시는 지방보다 고용 능력이 높아 젊은 인구를 블랙홀처럼 집어삼키는 '극점사회'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도시는 생활비가 높고 일자리가 불안정해 청년층이 자녀를 낳기 어려운 만큼 지방으로부터의 인구 유입에 기댄다. 그런데 지방이 소멸한다?

그 결과 장기적으로 도쿄도 공멸한다는 게 마스다의 지적이다. 한국 정부와 언론은 '젊은 여성이 많으면 잠재적 출산율도 높다'는 마스다의 가정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해 독창적인 인식틀을 만드는 데도 실패했지만, 마스다의 진짜 메시지조차 제대로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있다면 <시사인>의 천관율 기자 정도다. 그는 2016년 7월 29일 <아이즈>에 <지방소멸>에 관한 서평을 썼는데, "이 책이 빛나는 대목은 지방이 소멸하면 수도권도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논증이다"라고 말했다.

국가통계포털 누리집 메인 화면.
 국가통계포털 누리집 메인 화면.
ⓒ 국가통계포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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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출생의 진짜 원인은 뭘까. 그 원인을 찾으려면 다시 통계로 돌아와야 한다. 통계는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다. 나쁜 것은 통계적 사실을 선택할 때 중요한 정보와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구분 못 하는 것이다. 이 사실 선택 과정에서 주관이 개입할 여지는 충분하다. 따라서 정부의 '가임여성 지도'에 대해 여성계에서는 가부장적 관점의 산물이라고 비판할 수 있고, 필자는 경쟁 논리의 소산이라고 비판을 추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과학의 객관성 역시 주관의 한계 안에서의 객관성일 수밖에 없으며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좋은 통계는 진실에 대한 주장이 좀 더 현실에 부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데 있다. 가임여성 지도를 만들 게 아니라, 산아제한 정책이 있었던 40년 전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사회 지표들과 신생아 수 사이의 관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는 통계적 기법(VAR, 그랜저 인과검정)을 취해볼 수 있다.
이 방식으로 왜 과거에는 아기가 많이 태어났고 지금은 그렇지 않은지 잠복 변수들을 찾아낼 수 있다. 저출생에 영향을 줄 만한 변수들 몇 가지를 떠올리며 가설을 세워봤다. 우선 총 소비지출 총액 대비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인 '엥겔 지수',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인 '슈바베 지수', 취학 전후 어린이들에게 드는 비용의 비율인 '에인절 지수', 가계부채 등이 떠올랐다.

먹고 사는 데 부담이 없고, 주거비 부담이 적고, 양육 부담이 적고, 빚이 없어야 아이를 낳을 기본적인 여유가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 고용률, 유리천장 지수, 비정규직 비율, 남녀 임금격차, 남녀 가사분담률 등이 떠올랐다. 여성이 경제적 불평등을 겪고 일과 가정의 양립이 불가능한 사회는 여성들이 임신, 출산, 육아를 꿈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밖에 몇 가지 지표들을 포함해 필자가 직접 분석을 해보고자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관련 지표 데이터들을 수집해보고자 했다. 정부가 데이터를 관리하는 곳은 몇 군데 있지만, 이곳이야말로 가장 많은 자료를 총망라하도록 돼 있고(중앙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 국책 연구 기관 등 300곳) 통계청의 승인을 받은 공신력 있는 자료만 등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집 단계에서부터 황당한 문제에 부딪혔다. 분석을 의미 있게 진행하려면 충분히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일부 데이터는 최근 것밖에 없거나(특히 여성의 삶과 관련된 지표들), 또 연령별(청년층) 혹은 성별(여성)에 따른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거나, 조사 주기가(년, 분기, 월) 불일치하거나, 아예 데이터가 없는 등 숱한 문제들이 발견됐다.

수십 년간 정부가 너무 근시안적이었던 것 아닐까. 과거 정부들이 장래인구 추계를 잘 살펴보고 저출생을 장기과제로 진지하게 재고했다면, 미래 세대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맞춤형 데이터들을 충실하게 축적시켜 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인구 절벽이 현실로 다가와 이 현상을 분석해보려 하니 쓸만한 데이터가 없다. 최근 지표(가령 엥겔 지수)와 저출생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는 존재하지만, 다양한 사회 지표들을 총망라해 신생아 수의 관계를 살펴본 국가 차원의 대형 프로젝트가 없는 것도 이런 점과 연관 있지 않을까.

현재 저출생은 과거 정부들, 특히 박정희-신군부 정권의 탓이 크다. 1980~90년대 출생자들은 성비 불균형이 심하다. 당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 제한 정책이 남아 선호 사상, 초음파 의료 기술 발달과 맞물려 '여아만 골라 떼며' 아들을 갖고자 했기에 (젊은 여성들이 있어도 이제 아이를 낳기 힘들지만) 젊은 여성 수 자체가 준 것이다. 근시안적이고 차별적인 정책이 고스란히 지금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중앙 정부는 지자체들의 경쟁이나 부추길 생각을 하고 있다.

얼마나 무책임한가? 이미 늦었을지 모르지만 저출생에 미련이 남는다면 정부는 당장 젊은 성인 여남을 상대로 무엇 때문에 '행복한 엄마, 아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라도 실시해야 한다. 또한 그 결과로 회귀분석을 실시해 어떤 변수가 저출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발견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세워야 한다. 이렇게 하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수들의 영향력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현재 시점에서 당장 뭐가 저출생의 원인인지는 아쉬운 대로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게 과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태그:#저출산, #출산율,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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