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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밥을 참 좋아합니다. 김을 좋아하니 김밥도 즐겨먹습니다. 김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습니다.

김밥은 좋은 날 먹었던 특식

푸짐하게 싸는 김밥
 푸짐하게 싸는 김밥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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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할 때 김밥은 최고입니다. 정상에서 먹는 김밥은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여러 반찬 준비 없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어 좋습니다.

김밥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 김밥은 특별한 날에나 먹는 별식이었습니다. 소풍가는 날이거나 학교운동회 때 너나할 것 없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내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께서 김밥을 싸주실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어머니는 이것저것 속 재료를 많이 넣지 않았습니다. 일손도 바쁜데다 여러 가지 재료를 갖추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다꽝을 길게 썬 것에다 배추김치를 씻어 쭉 찢은 뒤 그걸 넣고 둘둘 말아 김밥을 만들었습니다.

다꽝이 뭐냐고요? 다꽝은 일본말인데, 단무지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집에서 만든 다꽝과 단무지는 좀 다르기는 합니다. 다꽝은 가을철 기다란 왜무를 꾸득꾸득 말린 다음, 왕겨 속에 소금을 절여 만들었습니다. 요즘 먹는 단무지는 신맛에 단맛이 있는데, 다꽝은 꼬돌꼬돌 씹히는 맛이 있습니다. 다꽝은 주로 갖은양념에 무쳐서 밑반찬으로 쓰고, 김밥을 말 때도 썼습니다.

대충 말아 만든 어머니표 김밥이었지만, 그땐 엄청 맛이 있었습니다. 쌀밥에 단순한 속 재료지만 김 자체가 귀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딸아이가 싸준 김밥

계란지단도 부치고 김밥 속 재료도 준비합니다.
 계란지단도 부치고 김밥 속 재료도 준비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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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집에 오면 나를 위해 특별히 김밥을 말아줍니다. 나는 딸이 집에 다녀오면 은근히 김밥을 기대합니다.

아내는 외출하고, 딸아이가 냉장고 뒤적이다 나를 부릅니다.

"아빠, 우리 풍물시장에 가요. 장구경도 하고 김밥재료도 사게요."
"집에 있는 걸로 대충 하지? 햄도 있고, 계란도 있을 건데."
"중요한 것이 없어요. 시금치하고, 단무지랑!

녀석은 재료가 제대로 갖춰져야 맛나게 할 수 있다며, 내 손을 잡아끕니다. 딸아이는 가게에서 당근, 단무지, 시금치를 사더니 깻잎도 한 묶음 삽니다.

집에 돌아와서 팔을 걷어붙이는 폼이 야무집니다.

"아빠, 집에 소고기 좀 있을까? 소고기가 있으면 더 좋은데."
"불고기거리로 냉장고에 있을 걸!"

소고기를 볶아 넣을 셈인 모양입니다. 오늘 김밥은 소고기김밥이라고 녀석은 이름을 붙입니다.

김밥 준비를 하는데, 딸아이 손끝이 매섭습니다. 우선 압력밥솥에 하얀 쌀밥을 고슬고슬하게 짓습니다. 스텐그릇에 밥을 퍼놓고, 들기름을 두른 뒤 뒤적입니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다음으로는 김밥 속 재료를 준비할 차례. 소고기를 잘게 다져 양념을 한 뒤, 달달 볶아놓습니다. 그냥 먹어도 맛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시금치는 나더러 다듬으라하고, 딸아이는 계란지단을 능숙하게 부칩니다. 부친 지단과, 당근, 햄을 길쭉하게 썰고, 단무지도 준비합니다. 깻잎은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뺍니다.

마지막으로 데친 시금치에 가는 소금을 술술 뿌려 들기름 넣고, 조물조물 뚝딱 무칩니다. 깨소금도 조금 넣습니다.

딸아이가 정성 가득한 김밥을 말고 있습니다.
 딸아이가 정성 가득한 김밥을 말고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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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재료 준비가 끝나자 김밥을 말 태세입니다. 네모 김발에 김을 펴 한김 나간 밥을 얹습니다. 다음으로 깻잎, 그리고 준비한 재료를 한 줄 한 줄 얹고서 둘둘 맙니다. 김밥 옆구리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힘을 주어 꼭꼭 마는데, 솜씨가 있어 보입니다.

딸아이 손끝을 보니 시집보내도...

녀석이 이웃에서 가져온 전과 함께 김밥을 썰어 접시에 올려놓습니다. 먹기도 아깝습니다.

"집에서 먹는데, 이렇게 얌전하게 안 해도 돼?"
"아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그릇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걸 모르실까?"

우리 딸아이가 싸서 예쁘게 담은 김밥
 우리 딸아이가 싸서 예쁘게 담은 김밥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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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나물을 조물조물 무쳐 김밥 속 재료로 씁니다.
 시금치나물을 조물조물 무쳐 김밥 속 재료로 씁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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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 쌀밥과 갖은 속 재료를 얹고 김밥을 쌉니다.
 김에 쌀밥과 갖은 속 재료를 얹고 김밥을 쌉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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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내면 맛도 달라집니다. 그릇에 담긴 김밥이 먹음직스럽습니다.

김밥이 따뜻하니까 더욱 맛있습니다. 야채와 소고기가 어우러져 씹히는 맛에다 들기름의 고소함이 더해집니다. 깻잎에서 풍기는 향도 좋습니다.

"야! 우리 딸 손맛이 엄마 이상이야?"
"아무렴 엄마를 따라갈까?"

내 칭찬에 딸아이는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두툼한 김밥 두어 줄 먹으니 배가 든든합니다.

저 녀석 시집가면 살림이나 제대로 할까 늘 걱정했는데, 김밥 싸는 정성을 보니 시집가서도 살림을 곧장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마음 한편 뿌듯합니다.

딸아이에게 은근슬쩍 말을 건넵니다.

"아빠는 이젠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무슨 걱정이 있는데?"
"넌 몰라도 돼!"


태그:#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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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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