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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작년 11월 19일 광화문에서 열린 제 4차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11월 17일 치러진수능시험 뒤에 열린 첫 집회였기에 고3 학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양손엔 '박근혜는 물러가라'라는 문구가 표기된 촛불이 들려있었다.

이런 경험은 그들 입장에서 처음이었기에 얼떨떨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큼직한 사건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00년대 들어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집회와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운동 밖에 없었는데, 이는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사건들은 아니었다. 마음속으로 정치적 의견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엔 우리 사회가 너무 경직됐었고, 후진적이었다.

의사를 표출할 수 있을 만큼의 공론의 장이 필요했지만 어른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8년이 지난 지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폭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 내엔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이 자리했고, 헬조선의 수저계급론에 지쳐있던 청소년들은 이를 계기로 그간 참았던 울분을 토해냈다. 그렇기에 11월 19일은 수능을 끝낸 고3학생들의 집회 참여에 의의가 있던 날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무대에 올라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사이다처럼 표명하였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자유발언 내용을 적어본다.

"저는 아직 어리구요, 19년 밖에 안 살았습니다. 저는 그래도 제 위치에서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말합니다. 너희가 정치적 책임이 있냐고요.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 따위가 감히 싸가지 없게 나라의 주인들을 농락하는 걸 학교에서 그리고 집에서 주머니에 손꽂고 구경하는 게 어른들의 정치적 책임이라면 저는 어른이 되는 걸 포기하겠습니다." 

어른들은 몰라요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원 및 주요당직자회의를 주재하며 마이크를 잡고 있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원 및 주요당직자회의를 주재하며 마이크를 잡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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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 어른들은 청소년들을 여전히 어린애로 본다. 아직 사고가 완전하지 않은 불완전한 인격체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세대를 거슬러 올라갈 록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 87년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 IMF를 경험한 세대 등 각 세대별로 특징지어진 경험에 의해 성숙도의 차이를 가늠한다. 그러니 지금 청소년들을 어떠한 어려움 없이 잘 먹고, 학교 잘 다니는 그런 온실속의 아이들로 생각하는 것이다.

개인 중심적이고도 상대적인 경험을 우선시하는 대한민국 기성세대들의 특성은 그러했다. 그러나 어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정보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쉽게 주고받을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쉽게 판별할 수 있다는 것을.

인터넷을 이용하여 기호 1번과 기호 2번이 내세운 공약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으며, 이를 근거로 자신의 미래를 위해 투표가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그들은 잘 수행할 수 있다. 특히 입시가 일생의 주요쟁점으로 떠오른 만 18세(고3) 학생 입장에선 투표권을 행사하여 교육정책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을 수 있다.

그들은 또 외친다. 병역의무 이행(병역법 8조), 혼인 가능(민법 제 801조), 운전면허 취득 가능(도로교통법 제 82조), 공무원 채용시험 응시 가능(공무원 임용 시험령 제 16조 제 1항), 성인물 관람 가능(영화 및 비디오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모두 만 18세에서 가능한데 왜 참정권만 안 되냐고. 성숙하지 않은 만 18세 청소년이 결혼은 어떻게 하며, 공무원 시험은 어떻게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아무리 봐도 형평성에 어긋난다.

우리나라만 19세 

타 국가와 비교하기에 가장 용이한 데이터가 바로 OECD 국가 간 비교분석이다. OECD 회원국 34개 국가 중에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만 18세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OECD 회원국이 아닌 타 국가들에서도 만 18세 참정권은 보장되는데,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그 숫자가 205개국에 달한다. 이것은 아프리카의 빈국들도 이미 만 18세 참정권은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UN아동권리협약 제12조에는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선 유독 문항 속에만 존재하는 문구가 되어버렸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선거 참여 연령을 만 18세로 낮출 것을 권고 하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약이 없다.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고, 인권위의 권고도 무시할 만큼 18세 참정권이 갖고 있는 의미가 그렇게 무거운 것일까.

지금은 논쟁중

만 18세 선거권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11월 1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과 '장하나 의원실' 주최로 18세 선거권과 청소년 참정권을 위한 토론회를 진행한 바 있다. 또한 지난 2016년 총선을 앞두고도 18세 선거권에 대해 언급이 있었다. 하지만 논쟁 시점이 각각 대선과 총선을 코앞에 둔 시기였기 때문에 파급력이 크지 않았고, 무엇보다 지금처럼 청소년들이 대거 나서서 주장하지 않았던 이유가 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와 투표권을 행사하는 정치 참여를 주장하고 있으며, 정당 가입 등의 정당 활동도 할 수 있도록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시민단체와 야권 정당들이 18세 선거권 운동에 뛰어들어 정의당,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당론으로 채택한 상황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에서 탈당 후 새로운 보수를 지향한다며 만든 '바른 정당'은 18세 선거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당론으로 채택은 불가하다며 오락가락 입장을 보였다.

한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인 인명진 목사는 1월 18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에서 18세가 고등학생이 아닌 자유로운 신분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학제개편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19일 정책조정회의에서 학제개편은 18세 선거권 하지 말자는 얘기라며 나쁜 반정치 논리라고 강하게 반박한 바 있다.

학제개편이 이뤄지려면 당장 이번 대선에선 18세 선거권이 불가능하며, 추후 몇 년 동안은 꾸준히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라는 점에서 2018년에 열릴 지방선거에서 조차 불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 학제개편, 미성숙, 입시, 학교의 정치판화 등의 여러 논쟁 속에 더불어민주당 18세 참정권 특위 위원장인 이동학씨는 페이스북에 글을 남겨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참정권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 이동학 페이스북 갈무리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참정권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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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모였다

1월 25일 오전 10시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에서 주최한 18세 참정권 확보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 토론회에는 각 정당에서 내로라하는 청년 정치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18세 참정권 확보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이날 토론회 발제는 김시연 부천학생자치회 대표와 황인국 한국청소년재단 이사장이 맡았으며, 배준호 정의당 부대표, 조성은 국민의당 전 비대위원, 장예찬 자유미디어 연구소 대표, 정두현 전 새누리당 대학생 위원장, 이나영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의회 의원이 토론자로 나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18세 참정권을 위한 청년당원 토론회
▲ 청년당원 초청 토론회 18세 참정권을 위한 청년당원 토론회
ⓒ 이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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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연 부천학생자치회 대표는 발제문에서 "청소년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규탄하고 결국 대통령을 끌어내린 촛불집회의 한 축이었다"며 "이 변화는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옛날부터 지속되던 변화가 표면적으로 나타난 계기"라고 밝히며 18세 투표권을 통해 그들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조성은 국민의당 전 비대위원은 "투표권만 18세에 확대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정당의 문호를 청소년에게 개방을 한다면 수많은 정치 문화가 바뀌어질 것"이라 하면서, "청소년 때부터 배워가며 참여하는 정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이 20대가 될 10년 후, 30대가 될 20년 후에는 분명 대한민국의 정치 중심에는 청년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하였다.

장예찬 자유미디어 연구소 대표(바른정당 창당 발기인)은 "국회의원 출마 나이 제한, 대통령 출마 나이 제한 등 연령으로 참정권을 제한하는 제도에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 "보수당이 유불리를 이유로 진지하게 토론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 하였다.

이나영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의회 의원은 "현 시국에서 많은 학생과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꿈꾸고 지향하는 삶과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의 괴리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해왔다. 그 속에서 폭력과 무질서는 없었다. 이는 그들의 정치적, 문화적 시민으로 성숙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라고 18세 참정권의 당위성을 설명하였다.

참정권을 위한 청년당원 초청토론회가 열렸다
▲ 청년당원 초청토론회 참정권을 위한 청년당원 초청토론회가 열렸다
ⓒ 이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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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참정권에 대한 법안 발의가 여러 차례 이뤄졌지만 대부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세계의 흐름에 부합하고, 예전과 달리 청소년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열망이 큰 이 시점에 18세 참정권은 꼭 관철되어야 하는 사안이다.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정치가 무엇인지 올바르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18세 참정 특위(위원장 이동학)는 미디어 홍보와 거리 선전전을 통해 대대적인 활동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여 귀추가 주목된다.



태그:##18세 참정권, ##국회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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