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차례상.
 차례상.
ⓒ wiki commons

관련사진보기


올해는 사정상 서울에서 설을 쇠기로 했다. 역귀성을 결정 하고 나니 그에 따른 일거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이들만 있는 서울 집에서 차례를 지내기에는 없는 게 너무 많다. 차례 음식을 차릴 교자상, 제기, 커다란 프라이팬, 설을 대비해서 준비해 놓은 음식 재료들 등등.

역귀성을 하자니 예전에 우리 시부모님께서 역귀성하시던 생각이 난다.

"어머님 번거로우시니까 저희가 내려갈게요."
"아니다. 니들은 네 식구 움직여야 되지만 우리는 둘만 움직이면 되잖냐. 그리고 시골 살림은 니한테 익숙지 않으니까 우리가 올라가는 게 니들이 편하제."

아이들이 차표을 구하지 못해서...'역귀성' 명절 나기

이런 시어머님 덕분에 솔직히 시부모님의 제사 때보다 명절 때 시부모님이 더욱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20일 전에 서울에 와 있는 중이다. 병원은 다니고 있지만 설에 차례는 모셔야 하겠기에 1월 23일 시골 가는 차표를 사놓았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이 시골 가는 차표를 구하질 못했다. 의논 끝에 시골에 혼자 남아 있던 남편이 상경하기로 한 것이다.

맏이의 책임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4년 전, 내가 암 수술을 하고 한 달 쯤 뒤에 설이 다가왔었다. 어지간하면 그해에는 연미사를 올리고(천주교에서 명절이나 제사 때 드리는 기도)차례를 안 지낼 수도 있겠으나 남편은 기어이 시어머님의 차례를 지내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딸아이는 나와 함께 서울에 있고, 시아버님과 남편, 아들, 이렇게 남자만 셋이서 시골에서 시어머님의 차례를 모셨다. 무엇을 어떻게 차렸는지 궁금해 할까봐 남편은 인증사진까지 보내왔다. 주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것도 노인네 두 분과 미혼의 아들이 차린 차례상을 보는데 심경이 참으로 복잡 미묘하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 상차림이 어땠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 여러분의 상상만으로도 가늠이 갈 것이다.

그러기에 젯상과 제기는 못 가지고 오더라도 준비해 놓은 음식재료는 남편이 가지고 상경하기로 했다. 그 음식 재료들 중에는 현미떡국 떡이 있다. 꼭 쌀떡이 아니면 어떠랴. 현미떡국 떡은 일 년 내내 끊이지 않고 비상시를 대비해 준비해 둔 시골의 비상 식품이다. 치솟는 물가, 더구나 명절이면 더 올라가는 물가에 주머니 사정 빠듯한 서민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있는 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

서울에 있는 집(자식들이 사는)은 화요일마다 장이 선다. 마트보다 가격이 비싸지 않으면서 상품이 뒤지지 않는 데다가 배달도 그때그때 해 주니까 장사가 제법 잘 되는 것 같다. 지난 화요일에도 장이 섰다. 오후에 나갔더니 채소 가게는 대목장답게 이미 동이 난 물건도 있었다. 과일 가게와 채소가게 상인과 잠시 인터뷰를 했다. 먼저 채소 가게 주인의 말을 들어 봤다.

설을 앞두고 동이난 물건들.
▲ 대목 값 설을 앞두고 동이난 물건들.
ⓒ 김경내

관련사진보기


"물건이 많이 빠졌네요. 대목이라서 장사가 잘됐나 봐요."
"예, 아무래도 평소보다는 좀 낫지요."
"어떤 물건이 제일 많이 나갔나요?"
"무나 양파 당근 등 오래 둬도 상하지 않는 거 위주로 많이 나가네요. 다른 것들도 평소보다는 훨씬 많이 나가는 편이에요. 여기 오시는 분들은 이미 마트에서 물가 조사 다하고 오시는 분들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단골도 생기는 거고요.
"대목이라고 해서 평소보다 채소 값이 좀 올랐나요?"
"한 15% 정도 올랐어요."

한 개에 2500원~3000원정도 하던 배 값이 세 개에 1만원이다. 그런데도 과일가게 주인의 말은 달랐다. 배 세 개를 사면서 물었다.

"과일값이 좀 오른 것 같은데, 얼마나 올랐나요?"
"과일값은 그대로예요."

취재차 나왔으니 좀 도와달라고 하자 주인은 나를 흘끗 돌아보더니, "딸기 값만 조금 올랐어요"라고 한다.

제사나 차례 상에 빠질 수 없는 과일들
▲ 제수용 과일 제사나 차례 상에 빠질 수 없는 과일들
ⓒ 김경내

관련사진보기


다 큰 자식들에게 세뱃돈 주는 이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만하면 낱개로 조금씩 사려고 했는데 너무 비싸니 시골에서 차례 지내려고 준비해 놓은 과일 세 개씩하고 고기, 무, 배추까지 가지고 오라고, 꼭 가지고 오라고.

말끝에 남편이 묻는다.

"올해도 애들 세뱃돈 줘야겠지요? 얼마를 주지?"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다 큰 자식들한테 세뱃돈을 받아도 시원찮은데 무슨 세뱃돈을 주냐고. 맞는 말이다. 우리 아이들 나이 때 우리는 부모님께 세배를 올리고난 후 많든 적든 간에 정성껏 준비한 세뱃돈을 드렸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 집은 딸과 아들이 한 명씩 있다. 딸은 취직을 해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들은 직장을 구하다가 잘 안 되자 뒤늦게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이다. 게다가 학비와 용돈을 아르바이트로 해결하고 있기에 세뱃돈은커녕 오히려 용돈을 줘야 될 형편이다. 이런 형편을 뻔히 알고 있는 딸은 명절이 되면 현금 대신 장을 봐 준다거나 동생 몰래 봉투를 주곤 한다. 딸의 생각은 이랬다.

'엄마 제가 세배를 올린 후에 세뱃돈을 버젓이 드리고 싶지만, 동생이 그걸 보면 얼마나 미안하고 속상하겠어요.'

그 생각이 하도 대견하고 고마워서 '너도 안 줘도 돼. 네 동생이 취직하면 그 때 같이 받을께.'라고 말하지만 엄마 가슴은 아프다. 그 마음들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아들은 집안일을 곧잘 도와준다.

올 설은 의도치 않게 간소화하게 되었다. 시동생도 해외여행을 갔다. 떠나기 전에 미리 시골에 내려와서 차례장 볼 금일봉을 주면서 엄청 미안해했다. 명절 연휴면 인천공항이 여행객으로 넘쳐난다더니 과연 그럴 만하구나 싶다. 36년간 한 번도 없던 일이 우리 집에도 일어났으니. 시동생마저 여행을 떠났으니 음식만 간소화 된 게 아니라 식구도 단출해졌다.

몸은 서울에 있어도 시골이 자꾸 신경 쓰인다. 명절이면 인사를 챙기던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해야 되는데 남편 혼자서 잘 하는지. 하지만 역귀성해서 좋은 점도 많다. 무엇보다도 자식들이 장거리 여행에 지친 몸을 쉴 틈도 없이 다시 상경해야 되는 일도 없지 않은가.


태그:#설, #세뱃돈, #역귀성, #설날, #대목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