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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병영성 풍경. 복원된 남문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복원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병영성 풍경. 복원된 남문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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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를 앞둔 지난 25일. 조금은 특별한 곳, 그러면서도 의미 있는 곳을 찾아간다. 정겨운 고향 집처럼, 고풍스런 담장과 함께 지역말이 살아 숨 쉬는 마을이다. 넓은 성곽이 있고, 아름다운 홍교도 있다. 우리 땅의 역사가 집약된 곳,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이다.

'강진'하면 다산초당과 백련사, 무위사, 청자도요지가 먼저 떠오른다. '남도답사 일번지'라는 명성을 가져다준 곳이다. 요즘엔 마량항, 가우도, 강진만을 찾는 여행객들도 많다. 예나 지금이나 병영은 강진관광에서 다소 비켜나 있는 곳이다.

강진여행이 아기자기하고 감성적인 여성미를 지녔다면, 병영은 장대하고 선 굵은 남성적인 멋을 지닌 곳이다. 예부터 왜구에 시달렸고, 그에 맞선 선인들의 저항과 희생이 뒤따랐던 곳이다. 개성상인과 함께 조선 상권을 좌우했던 병영상인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하멜 덕분에 서구 문명도 일찍 접했던 땅이다.

병영마을 입구에 서 있는 전라병영성지 표지석. 복원되고 있는 병영성의 북문 쪽에 자리하고 있다.
 병영마을 입구에 서 있는 전라병영성지 표지석. 복원되고 있는 병영성의 북문 쪽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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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병영성의 남문 진남루와 성곽. 현재 병영성의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복원된 병영성의 남문 진남루와 성곽. 현재 병영성의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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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이란 지명도 이와 관련이 있다. 병사들이 주둔하는 구역을 병영(兵營)이라 한다. 강진 병영도 이와 같다. 실제 여기에 1417년(태종 17년)에 전라병영성이 들어섰다. 전라병영성은 호남과 제주의 53주 6진을 통할했다. 요즘의 육군 지휘본부였던 셈이다. 전라도의 중심지였다.

전라병영성은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초대 병마절제사 마천목 장군이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895년(고종 32년)년 갑오경장 때까지 470여 년 동안 호남과 제주를 거느려 다스렸다.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성이 동학농민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지고, 성곽만 남았다.

문화재청에서 발굴 조사한 결과, 성의 둘레가 1060m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는 4개의 성문과 4개의 옹성, 성 위에 낮게 쌓은 8개의 치성이 있었다. 동헌과 객사, 내아, 군기청 등이 있었다. 이것을 2000년부터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성곽과 옹성, 동서남북의 4개의 문을 복원했다. 전라병영성이 있었던 성 터가 현재 국가 사적(제397호)으로 지정돼 있다.

복원되고 있는 병영성과 수인산. 병영성은 왜구에 침입에 대비해 평지에 쌓은 성이었다.
 복원되고 있는 병영성과 수인산. 병영성은 왜구에 침입에 대비해 평지에 쌓은 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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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성 홍교. 역사가 오래 되고, 조형미도 빼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병영성 홍교. 역사가 오래 되고, 조형미도 빼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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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성 부근에 홍교도 있다. 병영성 뒤쪽으로 흐르는 배진천 위에 놓여서 '배진강다리'라고도 부른다. 직사각형의 화강석 74개를 무지개 모양으로 짜맞추고 잡석을 채워서 만든 다리다. 1730년에 승록대부, 종1품으로 현재 부총리급의 벼슬에 오른 유한계를 기념해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300여 년 다 돼가는, 역사가 깊은 다리다. 조형미도 빼어나다.

여기에 전해지는 러브 스토리도 감동적이다. 노비 유총각과 양반집 딸 김낭자의 이야기다. 양반이었다가 몰락한 집안의 아들 유총각이 양반집 김씨 집안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다. 양반집 규수 김낭자가 유총각한테 연정을 품었고,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사랑을 나눴다.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고, 이 아이가 나중에 과거에 급제해 정승이 됐는데, 그 사람이 유한계라는 얘기다. 그의 금의환향을 기념해 세운 다리가 병영성 홍교이다.

병영마을의 돌담길. 여느 마을의 돌담과 달리 지그재그로 높이 쌓은 게 특징이다.
 병영마을의 돌담길. 여느 마을의 돌담과 달리 지그재그로 높이 쌓은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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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재그로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그 위에 엇갈려 쌓은 병영마을의 돌담. 이른바 빗살무늬 형식을 띠고 있다.
 지그재그로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그 위에 엇갈려 쌓은 병영마을의 돌담. 이른바 빗살무늬 형식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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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마을의 돌담도 독특하다. 등록문화재(제264호)로 지정된, 품격이 다른 돌담이다. 다른 지역의 돌담에 비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당시 병영성의 군사들이 말을 타고 순시를 했는데, 그 군사들의 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밖에서 집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담을 높이 쌓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담장도 이채롭다. 지그재그로 15도가량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그 위에 엇갈려 쌓은 이른바 빗살무늬 형식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돌담이다. 지난 2002년 병영을 찾았던 주한 네덜란드 대사를 통해 네덜란드식 전통 담장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네덜란드 풍의 돌담이다.

병영마을에 있는 하멜기념관 전경. 7년 동안 생활했던 하멜을 기리는 공간이다.
 병영마을에 있는 하멜기념관 전경. 7년 동안 생활했던 하멜을 기리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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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기념관에서 만난 하멜표류기 복제본. 조선을 유럽에 처음 소개한 자료가 됐다.
 하멜기념관에서 만난 하멜표류기 복제본. 조선을 유럽에 처음 소개한 자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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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식 돌담은 하멜(1630∼1692)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하멜 일행은 풍랑을 만나, 1653년 8월 제주에 발을 들여놓았다. 13년 동안 조선 땅에서 억류생활을 했다. 11년을 전라도에서, 그 가운데 7년을 병영에서 보냈다. 마을의 담장이 이때 쌓인 것이다.

표류기로 조선을 유럽에 처음 알린 사람도 하멜이다. 하멜은 조선에 억류돼 있었던 기간의 임금을 받으려고, 자신이 속해 일하던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 임금청구 보고서를 냈다. 이것이 하멜 보고서, 우리가 아는 하멜 표류기이다. 이 보고서를 통해서 조선이 유럽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그 인연으로 1998년 강진군과 네덜란드 호르큼시가 자매 결연을 맺었다. 병영에 하멜의 동상이 서 있고, 소장 유물 2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는 하멜기념관이 들어서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옛 추억이 서린 양은도시락. 병영의 와보랑께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옛 추억이 서린 양은도시락. 병영의 와보랑께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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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보랑께 박물관의 김성우 관장이 자신의 그림 앞에 서 있다. 김 관장은 2월 1일부터 전남대학교 치과병원 현관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와보랑께 박물관의 김성우 관장이 자신의 그림 앞에 서 있다. 김 관장은 2월 1일부터 전남대학교 치과병원 현관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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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성 부근에 다른 가볼 만 한 데도 있다. 가까운 도룡리에 있는 와보랑께 박물관이다. 가난해서 불편했던, 불편했기에 더 애틋하고 그리운, 그때 그 시절에 많이 쓰던 전라도 지역말과 생활용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전라도를 이해하고 정겹게 느낄 수 있는 박물관이다.

박물관 여기저기에 전라도말을 적어놓은 나무판이 세워져 있다. 김성우 박물관장이 직접 써놓은 것들이다. 지역말을 쓰는 사람이 많이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생각나는 대로 하나둘씩 써 놓았다.

한번 와보랑께, 이리 뽀짝 와바야, 오매 사삭스렁거, 참말로 밸시럽네, 암시랑토 안하당께, 오매 문 열어 농께 개안하네, 건더꿀로 보고 옹께 고 모양이제, 오매 징항거 호랭이는 뭐한다냐 등등.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 웃음이 나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옛날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생각나게 하는 문구들이다.

오래된 생활용품도 만난다. 옛날 흑백 텔레비전과 라디오, 사진기, 타자기, 계산기, 다이얼식 전화기가 전시돼 있다. 중장년층이 학창시절 자취하면서 썼던 석유곤로도 있다. 옛 교과서와 양은도시락, 장작난로, 풍금 등 지금은 추억 속의 얘기가 돼버린 물건들이 2층 규모의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와보랑께 박물관 전경. 김성우 관장이 모은 전라도 지역말과 옛 생활용품이 빼곡한 공간이다.
 와보랑께 박물관 전경. 김성우 관장이 모은 전라도 지역말과 옛 생활용품이 빼곡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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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병영성, #병영성홍교, #하멜표류기, #와보랑께박물관, #병영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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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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