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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 해법은 요금을 깎는 것이 아니라 한여름과 한겨울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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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싼 전기요금으로 인해 3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산업의 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일수가 늘었다. 냉방기 전기소비가 늘어나면서 전기요금 폭탄 논란이 뜨거웠다. 결국,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2월 13일 전기위원회 최종심의까지 거쳐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대폭 완화했다.

이번 개편으로 가구당 전기요금은 연평균 11.6퍼센트, 여름과 겨울엔 14.9퍼센트의 인하 효과가 기대된다고 하는데 전기소비 양에 따라 다르다. 적게 쓰는 사람보다 많이 쓰는 사람은 그만큼 더 할인된다. 한 달에 200kWh 이하로 적게 쓰는 가구는 전기요금 차이가 없다. 하지만 400kWh 쓰는 사람은 15퍼센트 가량, 600kWh 쓰는 사람은 30퍼센트 가량, 1000kWh 정도 쓰는 사람은 48퍼센트 가량 인하 효과를 보게 된다.

동하절기 기간 1000kWh 이상의 과도 소비자(Super User)에 대해서는 기존 최고요율(709.5원/kWh)을 적용하겠다는 방안인데 기존에 501kWh 이상 쓰던 이에게 적용하던 전기요금이다.

부가가치세와 기금부담 비용을 제외했을 때 2만 원 정도 전기요금을 내는 가구는 그대로, 7만 원 내던 가구는 5만8000원, 11만 원 내던 가구는 10만 원, 19만 원 내던 가구는 13만 원, 47만 원 정도 내던 가구는 24만 원으로 대폭 할인을 받는 셈이 되었다.

작년 통계로 주택용 전기요금 수용 가구의 95퍼센트 가량이 400kWh 이하로 쓰고 있으니 국내 대부분의 가구는 15퍼센트를, 반면 전기 많이 쓰는 5퍼센트의 가구들은 30~48퍼센트 할인 받는 셈이다.

개편되기 전의 주택용전기요금 누진제
 개편되기 전의 주택용전기요금 누진제
ⓒ 한국전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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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용누진제 전기요금 개편 최종안
 주택용누진제 전기요금 개편 최종안
ⓒ 산업통상자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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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에너지 수요관리 유도 원칙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세계적으로 싼 편이다. 싼 전기요금으로 인해 경제수준 대비 1인당 전기소비가 너무 높다보니 2013년에 수립된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에너지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에너지 수요관리'를 제시했다. 그런데 이번 개편 원칙에서 에너지 수요관리 원칙은 사라졌다. 개편 결과는 수요관리 원칙에 위배된다.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할인해주니 전기를 더 쓰라는 신호가 된 셈이다.

전력 과소비에 대한 최소한의 억제 대책도 무너졌다. 기존 최고요율(709.5원/kWh) 적용 구간은 정부 개편안의 1000kWh가 아닌 600~700kWh 초과 사용량에 적용해야 했다. 기존 누진제 구간에서 최고요율인 1kWh당 709.5원은 501kWh 이상 소비구간에 적용되었다. 올 여름 폭염에 이 구간의 전기수용가가 16배로 증가해서 전기요금 폭탄 논란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최고요율은 600~700kWh 구간 사이가 적당하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8월에 701kWh 이상의 전기를 소비한 수용가는 전체의 1.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극소수이다. 601kWh 이상의 전기를 소비하는 수용가들을 다 포함해도 2.9퍼센트이다. 이들에게 최고요율인 709.5원을 적용하지 않고 한계비용인 280원을 적용하는 것은 누진제 취지에 맞지 않는다. 한 달에 40만 원 이상을 내던 이들이 20만 원대로 할인받게 된 것이다.

정부는 이 개편안을 추진해도 주택용 전력수요가 수요가 몰리는 낮보다는 밤일 경우가 많으니 최대전력소비인 피크에 대한 기여도가 50만 kW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전기요금 깎아줘도 화력발전 1기 분량의 전기소비량이 늘어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계산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주택용 전기요금 한계비용은 1kWh당 280원

현재 95퍼센트의 가구는 4단계 이하의 요금을 내고 있다. 4단계 전기요금은 1kWh당 280.6원인데 이 금액이 사실상 한계비용이다. 즉 전기소비자의 입장에서 전기 1kWh를 더 쓸 때 흔쾌히 내는 비용의 한계가 280원 정도라는 의미다. 5, 6단계의 가구는 전기요금에 의한 가격탄력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 올려도 더 내려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관건은 4단계 이하 가구들이다.

전기요금 폭탄이 문제가 된 것은 4단계 전기요금을 내던 가구가 여름 냉방소비로 인해 5단계, 6단계 전기요금을 적용받게 되면서다. 7만 원 안팎을 내다가 10만 원, 20만 원대 전기요금 고지서가 날라 오니 문제가 된 것이다. 한계비용 280원을 지키는 소비를 하다가 냉방소비로 인해 417원, 709원의 비용을 내자니 너무 비싸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이 가구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냉난방 소비가 급증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 해법은 기존의 한계비용인 280원을 무너뜨릴 것이 아니라 냉난방 소비가 급증하는 한여름과 한겨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저소득층 가구와 바깥 활동이 부자유스러운 장애우들의 전기요금을 우선 지원하거나 한여름과 한겨울 한시적으로 5~6단계 전기요금을 완화하는 정책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냉난방 전기소비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을 피해갈 수 있는 단열주택 지원사업과 가구별 태양광발전기 확대보급을 위해 지원해야 한다.

지난 폭염에서 미니태양광발전기를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설치한 가구는 전기요금 폭탄을 피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니태양광 지원신청이 급증했다. 그런데 이제 전기요금 폭탄 걱정이 없어졌으니 미니태양광 지원을 요청할 가구들도 줄어들 것이다. 일자리도 만들고 에너지신산업도 성장시킬 일석이조의 기회를 전기요금 인하로 날려버린 것이다.

산업용 경부하 요금과 일반 전기요금 검토해야

어떤 방식으로든 기존 누진제 개편은 전기요금 인하를 통해 전기수요의 증가를 불러올 것이다. 경제규모 대비 1인당 전기소비량이 높아서 전반적으로 수요관리를 강화해야 할 상황에서 주택용 누진제 개편으로 오히려 전력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따라서 전체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전기 과소비가 일상화되어 있는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다.

산업용 전기요금 수용가의 92퍼센트가 산업용(을) 요금제를 선택하고 있다. 이 요금제의 경부하 요금은 1kWh당 57.6원에 불과하다. 한국전력이 발전회사로부터 구매하는 전력의 정산단가 중 가장 싼 것이 원전이다.

원전의 2015년 정산단가가 1kWh당 62.7원이다. 산업용 전기소비의 비중이 60퍼센트에 육박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원전 정산단가도 미치지 못하는 전기요금을 내면서 전기과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부하 요금을 폐지하든지 인상해야 한다.

또한, 상가에서 사용하는 일반용 전기요금제에 누진제 적용이 필요하다. 일반용 전기소비는 여름과 겨울에 급증하는데 냉난방 전기소비 때문이다. 일반용 전기요금제에 누진제가 없다보니 여름과 겨울철 냉난방 전기를 과소비하면서 문을 열어놓고 영업을 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산업용 전기요금 수용가 92%가 사용하는 '산업용 을 요금제'
 산업용 전기요금 수용가 92%가 사용하는 '산업용 을 요금제'
ⓒ 한국전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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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영업이익 10조 원은?

2015년 한국전력공사의 영업이익은 10조 원이었다. 하지만 2008~2012년까지 한전의 누적적자는 10조 원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원전 및 석탄발전 비중과 관계가 있다. 2015년 각 발전원별 정산단가를 비교해 보면 원전과 석탄발전은 62~68원이고 가스발전은 126원, 태양광, 풍력 발전은 보조금 포함해서 170원 정도다.

한국전력공사가 발전회사로부터 사오는 전력시장 거래가격은 70~80원 정도다. 원전과 석탄발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원전과 석탄화력 발전 비중이 높으면 한전은 발전회사들로부터 싼 값에 전기를 사올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발전설비가 전력수요에 비해 많아서 원전과 석탄발전으로 대부분의 전기수요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다. 2015년 한전은 싼 전기를 발전회사들로부터 사오고도 전기요금을 낮추지 않아 10조 원이라는 영업이익이 발생했다. 반면 2008~2012년은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 책정으로 적자가 발생한 것이다.

원전과 석탄비중을 줄이면 거래가격은 100원대 이상으로 오를 것이다. 주택용 전기요금으로는 201kWh 이상의 경우에는 아직 원가 반영이 가능하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는다면 한전은 또다시 대규모 적자에 시달릴 것이다.

주택용 전기요금으로는 신규 원전과 석탄발전 대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 일반용과 산업용 전기요금만 약간 올린다면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도 가능하다. 재생에너지 100퍼센트 사회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로 가스발전이 원전과 석탄발전을 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수도권에 가동하고 있지 않는 가스발전소도 상당수 있다. 이들을 가동한다면 수도권의 전력자립률은 117퍼센트에 달한다. 가동 중인 원전과 석탄발전을 대폭 줄일 수 있고 고압 송전탑으로 전기를 송전해오지 않아도 된다.

싼 전기요금이 에너지 전환 가로막아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 전에도 OECD 유럽 국가들보다는 싼 편이었다. 전기요금이 싼 이유는 원전과 석탄발전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핵폐기물 처분, 방사능 오염, 원전 사고, 미세먼지, 온실가스, 사회갈등, 불안 증대 등의 외부비용을 국민 세금과 미래세대에게 떠넘긴 결과다. 싼 발전단가가 사실은 싼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제대로 비용을 내면서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싼 전기요금으로 인해 3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산업의 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2016년 현재 재생에너지의 기술적인 잠재량이 원전 9000개와 맞먹을 정도인데 재생에너지 비중은 OECD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100퍼센트 사회로 가게 된다면 결국 우리는 한계비용 제로의 전기를 쓸 수 있겠지만 원전과 석탄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사회로 가기 위해 아직은 비용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지진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다. 환경연합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원전 대신 재생에너지 발전원이 중점 에너지원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74.8퍼센트다.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 재검토 및 백지화 의견이 80.7퍼센트이고 지진 대비 위해 동남부 일대의 원전 12기를 임시 중단하고 안전점검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79.8퍼센트다. 비용을 좀 더 내더라도 안전한 사회에 살고 싶다는 것이 국민들의 생각이다. 비용을 덜 내고 원전과 석탄발전을 계속 늘리는 게 좋을까, 비용을 조금이라도 더 내고 재생에너지 사회로 가는 게 좋을까.

여러분은 전기요금 할인받아 행복하신가요?

덧붙이는 글 | 함께사는길에 실었습니다.



태그:#주택용전기요금누진제, #누진제 개편안, #산업용전기요금, #일반용전기요금, #산업용 을요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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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처장, 전'핵없는사회를위한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월성원전1호기 스트레스 테스트 민간검증위원. 대한민국의 원전제로 석탄제로, 에너지전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기자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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