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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면 4년 중임제 개헌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대통령도 더 여론을 의식할 테고 착실히 국정 수행을 하면 4년 더 임기 연장이 가능하고
이 연재의 꼭지 '안반김'은 안철수, 반기문, 김종인이 왜 한국 정치사에서 반갑지 않은 정치인인지 논한다는 뜻이지만, 세상에는 반갑지 않아도 의미가 있는 독특한 정치인들도 있다. 필자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이런 경우로 본다. 왜냐하면 그의 정치 인생은 엘리트주의 정치의 장단점을 확연히 보여주는 전형이기 때문이다. - 글쓴이 말

내각제 개헌? 돌고 돌아 엘리트주의인가

김종인 전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경제민주화가 경제활성화다'라는 주제로 열린 특강을 하고 있다.
 김종인 전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경제민주화가 경제활성화다'라는 주제로 열린 특강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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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2016년은 한동안 잠잠했던 '김종인-문재인' 갈등의 재촉발과 개헌을 고리로 한 '반기문-김종인' 연대설이 도는 것으로 끝났다. 김종인은 지난해 12월 30일 SNS에 "노욕이다, 셀프 공천이다 온갖 수모 다 참아가며 원내 제1당을 이뤄냈다. 난파 직전 더민주 호의 선장을 맡아 수권 정당의 모습을 갖추고자 최선을 다했다"는 글을 올려 자신의 공을 주장했다. 이어서 새해에는 나라를 위해 자기 에너지를 다 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 발언은 문재인과의 갈등이 심해질 것을 전망케 하는데, 왜냐하면 요 며칠간 '개헌'을 두고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시작은 김종인 쪽이었다. 그는 지난 12월 27일 더민주 비문계, 국민의당 의원들이 참석한 토론회에서 작심한 듯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개헌을 하지 않고 대통령이 되면 개헌을 할 수 있다는 (문재인의) 말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개헌을 하면 대통령의 임기 단축은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종인이 포문을 열었을 때 필자는 '올 게 왔구나' 싶었다. 그는 이미 지난 8월 더민주 비대위 대표직을 사퇴하며 "경제민주화·책임정치·굳건한 안보가 차기 대선 승리의 관건이며 이 셋을 달성하기 위한 선결조건이 개헌이다. 더민주가 대선 전 개헌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대선주자들의 개헌 의지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참여 정부 때 충분한 개혁을 못 했다는 아쉬움이 있을 문재인의 생각은 조금(?) 달라 보인다.

그는 12월 29일 고 김근태 전 고문 5주기 추모식에서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적폐 청산을 하려면 다음 정부는 과도정부일 수 없다. 5년 임기도 짧다"고 했다. 31일 전북 지역 작가들과의 송년 시국 대화에서는 "중앙 권력구조를 개편해 새누리 정권을 연장하고 권력을 나눠 가지려는 정치인만의 개헌이 논의되고 있다. 개헌의 중요 과제는 국민 기본권 증대, 지방분권 강화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런 개헌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김종인은 어떤 개헌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내각제 개헌이다. 지금의 대통령제가 제왕적이기 때문에 협치를 할 수 있고, 국민의 지지가 국회 의석으로 정확히 반영되는 선거 제도를 도입하려면 내각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내각제 개헌이 엘리트주의 정치를 강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째서? 일단 시민이 국가수반을 직접 선거로 뽑을 수 없게 된다. 국회의원끼리 총리를 뽑고 내각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참정권 행사 범위가 '제도적으로' 좁아진다. 그럼 중앙의 권력 독점은 견제할 수 있을까. 명목상 가능하다지만 다수당 혹은 연립 내각을 구성하면 어느 정도 비껴간다. 반면에 의회 엘리트들의 이합집산과 정쟁은 심해지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도 의원들이 내각제를 유독 사랑하는 건 오래도록 호소해 온 정치적 피로감 때문이다. 대통령 눈치 덜 보며 자기들 소신대로 정치를 해보고 싶은 것이다. 결국 의원 내각제란 21세기형 호족 정치다.

그런데 잠깐.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면 4년 중임제 개헌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대통령도 더 여론을 의식할 테고 착실히 국정 수행을 하면 4년 더 임기 연장이 가능하고, 시민은 참정권이 늘어나니 좋지 않을까.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4년 중임제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선거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김종인이 4년 중임제는 대통령 임기 2년이 지나면 재선을 위해 다시 선거모드로 가야 한다며 반대하는 것을 보라.

하지만 이번 촛불 민심에서 필자가 절실하게 느낀 것은 정치인들의 기본적 속성이란 주권자가 늘 견제를 해야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광장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선거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도 다 견제다.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은 '대선이 가까워지는 시점의 시민들의 분노 표출'이라는 조합이 위기감에 휩싸인 정치인들을 움직인 성과였다. 4년 중임제는 선거 주기의 회전력을 높이고 의원 내각제는 줄인다. 그래서 필자는 주장한다.

이것은 개헌 대 호헌 싸움이라기보다는, 내각제 대 4년 중임제의 싸움이며, 보다 노골적으로는 '엘리트주의 대 대중주의'의 싸움이다.

김종인은 평범한 사람들도 '꿈'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까?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가 11월 12일 오후 청계천 무교동네거리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게이트 규탄 당원 결의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 김종인, 박근혜-최순실게이트 규탄 당원대회 참석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가 11월 12일 오후 청계천 무교동네거리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게이트 규탄 당원 결의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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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김종인이 '경제 민주화'라는 꿈을 관철하려고 일생을 바쳐 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그 꿈이 시민의 꿈과 100%의 싱크로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꼭 100%여야만 의결이 가능한 게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그는 설득의 과정을 지나치게 생략하려 든다. 시민의 참정권까지 희생시켜가며 수단 가리지 않고 정치인의 꿈을 관철하는 개헌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게 아닐까. 어쨌든 나라의 주인은 시민인데.

현재 많은 시민이 개헌 자체를 우선순위로 보고 있지 않다. 또한 개헌을 한다 해도 4년 중임제가 최선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30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발표한 12월 정기조사에 따르면,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개혁과 개헌 중 어느 과제에 집중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55.7%가 개혁, 32.3%가 개헌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문화일보>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선 후보들이 개헌 공약 후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의견 47.1%, '대선 전 개헌을 해 새 헌법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37.5%였다.

요컨대 개헌이 필요하긴 한데 무리해 대선 전에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까운 셈이다. 한편 개헌을 한다면 45.9%가 4년 중임 대통령제, 20.8%가 분권형 대통령제, 16.9%가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7.9%만이 의원 내각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김종인은 정작 내각제 개헌이 차기 대선 승리의 선결조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에게 이러한 앞뒤 안 맞는 주장은 내각제 개헌 안 받으면 문재인이 당선 못 되게 만들겠다는 공갈처럼 들린다. 실제로 18대 대선 당시 그와 함께한 새누리 사람들이 그를 "자리를 맡으면 전권을 요구해 기존 조직과 마찰을 자주 빚었다.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사퇴 카드 등을 던져 불협화음을 일으켰다"고 평가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번에는 시민의 참정권을 담보로 자기 꿈을 관철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인을 '반가운 정치인'으로 볼 수 있을까. 김종인은 가끔 자신을 불세출의 전략가로 착각하는 것 같다. 더민주를 원내 1당으로 만든 게 자기 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하고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이다. 물론 총선 국면에서 그가 내린 정무적 판단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그러나 전략도 받아줄 주권자가 없다면 쓸데없다. 결국 시민들이 자신들 나름의 꿈꾸는 세상이 있어서 더민주를 택한 것이다.

오히려 당시에 나온 자신에 대한 비판을 그는 "수모"라는 한 마디로 정리 처분하는 오판을 했다. 시민을 직접적 대화와 설득 상대로 대하기보다 같은 엘리트들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오로지 의원 내각제와 수권에 특화된 정치인. 얼마나 도도한가. 필자는 여기서 정치인 김종인의 뚜렷한 강점이자 약점을 봤다. 그는 엘리트주의적이다. 엘리트는 효과를 본 만큼 반드시 값을 요구한다. 문제는 그가 너무 값비싼 청구서를 발송한다는 것이다.

부디 그 강을 건너지 마시라

개헌 필요성과 ‘김종인-반기문 연대설’ 동시에 띄운 KBS(11/30)
 개헌 필요성과 ‘김종인-반기문 연대설’ 동시에 띄운 KBS(11/30)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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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김종인이 '노욕' 한 마디로 정리 처분할 수 있는 값싼 정치인은 아니다. 그는 첫째로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왔다는 점에서, 둘째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면 더러운 손 깨끗한 손 안 가리고 힘 있는 자들과 손잡았다는 점에서 일관성 있다. 그는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의 손자로 태어나 한국외대 졸업 후 조부의 비서로 일하며 일찍이 정치에 입문했다.

조부 별세 후에는 독일 뮌스터대로 유학을 가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아와 34세의 나이로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됐다.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새천년민주당, 박근혜, 지금의 문재인까지 진영을 넘나드는 행보에도 일관성 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는 그 행보의 이면에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는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87년 헌법 개정 당시 개헌 특위 소속으로 전경련의 반대를 전두환을 설득해 경제민주화 조항을 집어넣기도 했다.

재벌을 견제한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는 분명 지금도 유효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엘리트 정치가의 문제는 자기 능력과 꿈에 강한 확신을 하느라 '민주'를 말하면서도 정작 반민주적이 되는 이율배반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2월 29일 <TV조선> '박종진 라이브쇼'에 출연해 '반기문-김종인' 물밑 접촉설을 일축하면서도 "대화를 나눠봐야 성향이 같다 틀리다 할 수 있다. (반기문이) 만나자 하면 만날 의향은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이어서 문재인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표의 문제는 패권주의다. 남의 도움으로 당을 정상화 시켰는데, 하나의 당이란 조직도 제대로 포용 못하고 일방적인 세력만 갖고 운영한다. 그래갖고 어떻게 나라 전체를 끌고 갈 수 있겠나"라고 평가했다. 문재인이 정말 패권주의자인지는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기에 검증 불가능하지만, 최근 개헌에 대해 긍정적 의향을 비춘 반기문과 연대 가능성을 남겨둔 건 정치인 김종인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놀라우리만치 엘리트인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킹 메이커 중 한 사람이 되는 놀라우리만치 어이없는 오류를 범한 게 아닐까. 정치인 김종인은 정말 자기가 대화를 나눠봐야만 상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18대 대선에 김종인이 틀렸고,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은 시민들이 옳았던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때로는 엘리트들끼리의 밀담보다 집단지성이 옳은 순간이 있다.

필자는 단 한 번이라도 정치인 김종인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줬으면 좋겠다. 선출직인 지역구 의원이 아닌 비례대표로만 5선을 한 그이기에 더욱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충언드린다. 내각제 개헌? 부디 그 강 건너지 마시라. 급하더라도 돌아가시라. 그렇지 않다면 많은 사람과 함께하실 수 없다. 재벌을 견제하고자 힘을 합칠수록 좋지만, 시민의 꿈을 담보 삼아 자기 꿈을 관철하려는 사람까지 같은 배를 태우기엔 위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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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종인, #반기문, #개헌, #문재인, #엘리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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