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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冊(책)을 빌리러 오는 친구가 있다. 나는 뜨거운 질투를 느낀다. 흔히는 내가 첫 한두 페이지밖에는 읽지 못하고 둔 冊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에게 속삭여주려던 아름다운 긴 이야기를 다른 사나이에게 먼저 해버리려 나가기 때문이다." - 이태준, <冊과 책>

내 연인이 다른 이성과 함께 있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인은 무심하기만 하다. 흡사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질투 섞인 고백을 보는 것 같다. 소설가 이태준은 책을 연인 이상으로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책을 빌려간 친구에게 '뜨거운 질투'를 느낄 까닭이 있겠는가 말이다.

이것이 어찌 한 원로 소설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사실 책 좀 읽는다는 이들을 보면 단순한 독서광의 수준을 넘어 책 그 자체를 사랑하는 이들이 꽤 많은 편이다. 도서관, 책, 서점 등 책과 관련된 단어들만 보면 흥분한다던지, 서점 근처만 가면 들어가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던지, 심지어 책 향기가 좋아 책장 속에 코를 파묻고 킁킁 대는 경험을 해봤다면 스스로 '책 중독' 증세를 의심해봐야 한다.

 여의도의 한 대형서점 모습
 여의도의 한 대형서점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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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문학자의 책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

이렇듯 책이라면 이유 없이 좋기만 한 책벌레들에게 솔깃할 만한 책이 새로 출간됐다. 강명관의 <독서한담>(讀書閑談)이다. 제목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자면 '책 읽는 것에 관한 한가한 이야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저자 강명관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다. 한문학자가 쓴 책에 관한 이야기라니. 왠지 한 눈에 봐도 근엄해 보이는 노(老)교수가 회초리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책장을 펼치면 어려운 한자들이 마구 튀어나올 것만 같아 지레 겁부터 난다. 그러나 첫 페이지를 벗어나기도 전에 그런 편견들은 여지없이 깨져나간다. 저자 스스로도 강조하지만 이 책은 대단한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서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책들, 헌책방 구석에 꽂혀 새 주인을 기다리는 책들, 심지어 인기리에 연재 중인 웹툰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책들에 관한 소소한 얘기들이다. 그리고 이 땅 위에 먼저 살다간, 우리처럼 책을 좋아했던 이들에 대한 회고록이기도 하다.

 <독서한담> 책 표지
 <독서한담> 책 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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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도서관처럼 책을 많이 쌓아놓고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저자. 스스로 "서적광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고 겸손해하지만, 책에 대한 사랑고백은 이태준 못지않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무시로 드나들면서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책을 가슴에 품고 흐뭇해하고, 당장 읽을 생각이 없는 책이라도 저자와 출판사에 미안하다는 이유로 책을 구입한다. 읽지도 않으면서 방구석에 쌓여만 가는 책들과 그를 보며 잔소리하는 아내. 고개를 푹 숙인 채 "내가 안 사면 누가 사겠어."하고 우물쭈물 변명하는 저자의 모습이 절로 연상되어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대학에 자리를 잡고부터는 당장 연구에 필요하지 않은 책도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이름만 알고 있다가 막 번역이 되어 나와서, 내가 사지 않으면 저자와 번역자, 출판사에 미안할 것 같아서, 장정이 워낙 예쁘고 특이해서 사들이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 본질은 그냥 책 욕심일 뿐이다." – p.50

평생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아왔지만, 저자는 마음 편히 독서하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고 말한다. 업으로의 독서와 취미로의 독서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독서를 업으로 하게 되면 자신이 읽기 싫은 책도 억지로 읽어야 하고, 그에 따라 '글빚'도 쌓여만 간다. 정작 내가 읽고 싶은 책은 펼쳐볼 엄두도 나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팽개쳐두고 마음에도 없는 이성과 함께 할 때의 애달픔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저자는 집 앞에 새로 생긴 구립도서관을 보며 "하루 빨리 정년이 왔으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은퇴만 하면 집 앞 도서관에 틀어박혀 그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고 싶다는 것이다.

"부러워하기만 하고 읽지 못한 책들, 이름만 듣고 들추어보지 못한 책들, 술렁술렁 읽어 미안한 마음이 든 책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보리라. (…중략…) 다시 읽기도 하고, 새로 읽기도 하고, 천천히 읽기도 하고, 입으로 외며 읽기도 할 것이다. 읽다가 존다고 나무랄 사람도 없고, 당장 갚아야 할 글빚도 없으니, 시간은 온전히 나의 편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 그토록 앉아보고 싶었던 그 작은 도서관의 한구석에 앉아서 나는 비로소 연구를 위한, 원고를 쓰기 위한 독서가 아닌 '무책임한 독서의 자유'를 한없이 누려볼 것이다." - p.50~51

가장 영향력 있는 책 '교과서'

그렇다면 책 좀 읽었다는 저자에게 '가장 감명 깊은 책'은 무엇일까. 저자는 "아직까지 내 생에 큰 감명을 준 책은 없다."면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책은 있다."고 밝힌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과서다. 저자는 교과서만큼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책은 없다고 단언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강제로 주입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교과서에 대한 견해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냉정히 말해 교육은 개인의 대뇌를 열고 교과서를 쑤셔 박는 행위이고, 학교는 그 행위가 강제로 이루어지는 공간이다."라며 "교과서가 개인의 대뇌에 제대로 장착되어 있는가를 점검하는 것이 시험"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 배후엔 국가권력이 있다고 꼬집는다.

"요컨대 국가의 권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교육은 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개인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것의 목적은 국가에 충성하는 개체를 만드는 것이다. 또 교과서를 가장 충실히 대뇌에 복제한 사람, 이른바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우수한 인재들 중 일부는 그 교과서를 개량하여 보다 강력한 교과서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과서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책이다" - p.84~85

그래서 저자는 "교과서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배우는 교과서가 어떤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지, 동일한 주제라면 다른 나라, 사회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권력에 속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다시금 생각해보는 국정교과서 논란

교과서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오늘날 불거지고 있는 국정교과서 논란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들어 추진된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은 시작부터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었다. '기존 교과서는 좌파적 색채가 강해 대한민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고, 주적인 북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교과서 추진세력의 주장이었다. 새로 나올 국정교과서가 정부의 입맛에 맞게끔 서술될 것임이 이미 그때 예고된 셈이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 11월 28일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서술이 기존 검·인정교과서에 비해 대폭 늘어나고, 독재정권의 문제점보다는 경제성장의 성과에 초점이 맞춰진 채로 서술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교과서 집필의 배후에 국가권력이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그대로 증명된 셈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국정교과서 논란이 불거지자 온 국민의 관심이 국정교과서에 쏠렸다. 언론은 그 내용을 열심히 분석해 문제점을 보도했고, 보도된 내용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국민들은 직접 교육부 누리집에 들어가 국정교과서를 열람하고 분석했다. 최근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7만 7천여명의 누리꾼들이 15만회에 걸쳐 현장 검토본을 열람하고 의견을 제출했다고 한다. 교과서 하나에 온 국민이 이렇듯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이번 국정교과서 논란을 통해 국민들도 교과서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 셈이니 뒤늦게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까.

당파를 뛰어넘은 조선 선비들의 '책 대여'

평생 한문학을 공부한 학자답게 저자는 고문헌에서 드러나는 책과 관련된 선조들의 일화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유교국가였던 조선에서 독서는 그 자체로 심신수양의 수단이자 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생존수단이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일과를 보면 먹고 자고 산책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책 읽기로 시간을 보냈던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책에 관한 흥미진진한 일화들도 많다.

조선시대에는 후기에 이르기까지 서점이란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좋은 책이 있으면 사대부들끼리 서로 빌려보곤 했다. 책을 빌려주고 받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당파의 구분도 없었다. 남인이었던 다산 정약용은 노론의 홍석주로부터 책을 빌려본 뒤, 자신의 저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 평소 서로 오가는 관계도 아니었지만, 홍석주는 다산이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기꺼이 배려했다. 다산 역시 자신이 쓴 책 말미에서 그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나온 책이 <매씨서평>(梅氏書平)이라는 책이다. 당파를 뛰어넘어 서로에게 필요한 책을 빌려주는 것은 조선시대 선비의 도리였다.

조선 후기 선비였던 최석정 역시 남들에게 책 빌려주는 것에 꽤나 관대했던 모양이다. 최석정은 자신의 책에 장서인(藏書印: 책 등에 자신의 소유를 나타내기 위해 찍는 도장)을 찍지 않았다고 한다. 책은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남에게 책 빌려주기에 인색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책을 돌려주지 않아도 채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책을 빌려주고 유일하게 언짢아하는 경우가 있었다. 빌려간 이가 책을 읽은 흔적이 없을 때다.

"(책을 더럽히면) 뺨이라도 갈기고 싶어"

물론 최석정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다. 내가 빌려준 책이 망가진 채 돌아오면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 책을 빌려달라고 하면 혹여 내 책에 얼룩이나 져서 돌아오는 건 아닐까, 책장이 구겨진 채 오는 것은 아닐까 마음 졸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앞서 살아갔던 이들 역시 그런 마음은 매한가지였나보다.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 이희승은 "남에게 빌려주었다가 돌려올 적에 책에 낙서를 했거나 책장을 구겼을 때에는, 그처럼 불쾌하고 분한 일이 다시 없었다."며 "그 사람이 만일 옆에 있다면 뺨이라도 갈기지 않을 수 없는 충동을 느끼곤 했다."고 고백했다.

책을 빌려주고서도 못내 눈을 떼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국어학자 이숭녕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공감과 웃음을 선사한다.

"책을 보여달라는 사람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서가에서 책을 뽑아다주는데, 그 사람이 침을 바르고 책장을 넘기는 것까지는 그래도 용납할 수 있지만, 엄지와 검지로 책장을 집어 넘길 때면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운 초조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을 일주일만 빌려주셔야...' 하는 말을 이어 듣게 되면 '어디 먼 나라로 자식을 인질로 납치하는 심정'을 느끼며 '거절의 이유'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 p.61

인색한 책 인심이 가져온 참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책을 빌려주고 받는 것은 하나의 미풍양속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런 미풍양속은 점차 퇴색되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것에 대해 인색해진 것이다. 실제로 육당 최남선의 경우 어떻게 해서든지 거절의 명분을 마련해 책을 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꼭꼭 숨긴 책들이었지만 6·25 전쟁이 일어나자 결국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만약 육당이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책을 빌려주었더라면, 그래서 그 책의 내용이 구전 혹은 필사의 방식으로 전해졌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그 책의 내용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든다.

그는 인색한 책 인심으로 인해 연구에 지장을 받는 풍토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세상에 단 한 권밖에 없는 책들을 꽁꽁 숨겨놓고 공개하지 않다보니, 대중들은 그 책의 존재조차 알 수가 없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책이 있다면 당연히 연구해서 알리는 것이 학자의 의무다. 그러나 저자가 지켜본 책 인심은 냉랭하기만 했다. 수많은 학자들이 무릎 꿇고 사정사정해도 끝내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 못 이긴 척 공개한다 쳐도 대부분 완전한 형태가 아닌 반쪽짜리인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럴 경우 완전한 논문이 아닌, 반쪽짜리 논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개탄한다.

도서관이 '귀중본'을 선정하는 이유

개인에게 소유권이 있는 책이야 아쉽긴 해도 별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공공시설인 도서관은 어떨까. 저자는 "도서관이야말로 심각하다."고 꼬집는다. 도서관에서조차 소장자료를 꽁꽁 숨긴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료를 연구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야 하는 학자들에게조차 인색한 것이 현실이라고 비판한다.

대부분의 도서관은 소장자료 중 특별히 가치 있는 자료를 '귀중본'으로 선정한다. 그러나 저자는 귀중본을 선정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반문한다. 귀중본으로 선정한 책들은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여주기 싫어서 귀중본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다.

"20년도 전에 어느 대학 도서관에 귀중본이 있어 한 번 보자고 했더니 당연히 안 된단다. 나는 그 한 면짜리 문서가 왜 귀중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중략…) 어떻게 그것이 귀중본이 되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요컨대 도서관 사정이 이렇다. 도서 목록에 실린 책이나 문서 옆에 귀중본이란 명사가 붙어 있다면, 그건 대체로 학계의 연구자와 영원히 하직한다는 표시라고 이해하는 편이 심신 수양에 좋다" - p. 202~203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각 도서관의 귀중본을 모두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저자는 '한국 귀중본 디지털 도서관'을 만들면 어떨까 제안한다. 해당 문서들이 잦은 노출로 훼손될 것이 우려된다면 아예 디지털화하여 누구나 내 집 안방에서 수시로 볼 수 있게 하자는 것.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같은 사료들도 이제는 모두 디지털화되어 누구나 쉽게 원문을 열람할 수 있다. 덕분에 관련 연구자 뿐만 아니라 일반 누리꾼들도 쉽게 실록을 열람하며 역사에 대한 지식을 넓혀나갈 수 있게 됐다. 도서관의 존재 목적을 생각해보면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서비스를 캡쳐한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서비스를 캡쳐한 사진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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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위로가 되어줄 책 한 권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나만의 책방'을 차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커피 향이 물씬 풍기고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책방에 앉아 책 읽기에만 몰두하는 모습. 모든 책벌레들의 이상향과도 같은 풍경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만은 않다. 먹고 살기에도 바빠 읽고 싶은 책 한 권도 마음 편히 못 읽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어른들은 갈수록 떨어지는 젊은 세대의 독서율에 "요즘 애들 문제다"라고 혀를 차지만,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책 대신 수험서를 집어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은퇴 후 실컷 책만 읽고 싶다는 저자의 꿈은 곧 모든 책벌레들의 꿈이기도 하다.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저자는 "언젠가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응원한다. 언젠가 나만의 책방에서 실컷 책만 읽다가, 책 속에 파묻혀 죽기를 원하는 그대들이여, 부디 이 책이 그대들에게 한 줄기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 <독서한담>, 강명관 저, 휴머니스트, 2016.10.24, 13,000원.



독서한담 - 오래된 책과 헌책방 골목에서 찾은 심심하고 소소한 책 이야기

강명관 지음, 휴머니스트(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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