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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팥죽 한그릇의 의미를 새겨봅니다.
 동지 팥죽 한그릇의 의미를 새겨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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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12월 21일)는 동짓날이었습니다.
 
동짓날임을 일깨워주신 소엽 선생님과 함께 헤이리 밖 가장 가까운 절인 검단사를 방문했습니다. 액을 막고 잡귀를 몰아낸다는 벽사(辟邪)의 동지팥죽 한 그릇 욕심이 앞장선 발걸음이었습니다.
 
검단산과 검단사는 한강을 붉게 물들이며 김포를 넘어 서해로 떨어지는 석양이 일품인 곳이지요. 그 석양의 풍광에 이끌려 몇 번을 발걸음 했던 곳입니다.
 
공양간 밖에서 퍼주시는 팥죽을 받아 방으로 드니 이미 신도 분들은 대부분 다녀가신 때라 할머니 두 분만이 계셨습니다.
 
"얼굴이 곱네요. 젊었을 때 참 미인이셨겠어요."

소엽 선생님이 숟가락을 들면서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아이고. 1년 동안 병원에 있다가 그제 퇴원하고 오늘 처음 집을 나왔습니다. 차에 치여서 무릎 아래가 모두 부서졌어요."
 
맞은편 할머님이 말했습니다.
 
"몸에 칼을 대지 않고 죽는 것이 가장 큰 복인데..."
 
팥죽 공양을 마치고 마당으로 나가니 보명스님이 멀리 발치 아래의 한강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검단사의 한강하류로 넘어가는 낙조가 아름다운 곳입니다.
 검단사의 한강하류로 넘어가는 낙조가 아름다운 곳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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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 봉선사 말사인 이곳에 2008년에 주지로 부임하신 후, 전임의 환풍스님의 무량수전 건축에 이어서 명부전을 짓고 현재 종무소 건축을 짓는 불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300년 된 저 느티나무가 참 운치 있어요."

소엽 선생님의 말에 스님이 설명을 이었습니다.
 
"2011년에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수령 300년으로 추정해서 표기했지만 300년이 훨씬 넘을 겁니다."

노거수의 정확한 나이 측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느티나무의 300살 판정을 스님께서는 보수적인 판단으로 여기는 듯했습니다.
 
"나무를 잘라 밑동의 나이테를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을 텐데..."

저의 농담에 함께 웃었습니다.
 
수령 300년의 검단사 느티나무
 수령 300년의 검단사 느티나무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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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채 창문에 포스터 두 장이 붙어있습니다.
 
활짝 웃는 비구와 비구니의 사진에 '행복 출가, 자유를 향한 날개짓'이라는 제목과 대한불교조계종 명의의 출가당담전화가 표기되어있습니다.
 
'자유의 길, 평화의 길, 행복의 길'이라는 카피가 승복(僧服)위에 배치되어있습니다.
 
무아의 증득(證得)과 '자유. 평화. 행복'에 대한 화두가 포스터에 담겼습니다.
 
"살다 보면 절망의 벽에 부딪히거나 타락의 늪에 빠져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할 때가 있다. 내 속에 부처라는 성품을 가지고 있음을 알지 못한 우리들은 평상시에도 눈앞이 어두워 길을 못 보지만 어려움에 빠졌을 때는 더욱더 깜깜한 칠흑 속을 헤매며 타락하거나 절망할 따름이다.

이때 나타는 한줄기 구원의 빛은 바로 부처님과 보살님을 향하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감응으로 나타나는 교화의 빛이다. 그 교화의 빛은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과 불보살님을 부르는 말과 간절한 몸부림 즉 행동이 지극했을 때 나타나며 그것은 바로 나 자신 속에서 나오는 자성불(自性佛)이요 자성보살이다."
 
벽에 붙은 귀의, 찬탄, 참선, 참회, 간경, 염불의 방식으로 마음, 말, 몸이 하나 되어 기도하는 마음의 안내문을 찬찬히 읽었습니다.

몇 년 전 아내의 출가 의지를 상기해봅니다. 자성불이란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원래 내재한 부처의 속성이라고 하니 원만구족 지공무사(圓滿具足至公無私)한 견성으로 가유(假有)와 진유(眞有)벽을 깨고 무루(無漏)의 자유로 나아가는 길이 꼭 출가만은 아니리...
 
신축된 무량수전에는 삼존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삼존불을 모시는 뜻은 '석가모니 이전에도 부처님이 계셨고, 열반한 뒤에 여전히 존재하며 미래에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영원에의 갈망이 낳은 영속한 시간의 다른 이름이 석가모니 같다는 생각입니다.
 
#2
 
팥죽 공양을 통해 자비를 회향(回向)하는 뜻을 새기며 법화전에 들려 목조관음보살좌상 앞에 절을 올렸습니다.
 
검단사의 법화전
 검단사의 법화전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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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동지팥죽 나눔은 우리의 세시풍속을 불교에서 계승한 것입니다. 조상신께 팥죽을 올리던 풍습은 찾기 어렵지만 이렇듯 사찰에서라도 팥죽 한 그릇의 의미를 새길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동지(冬至)는 겨울의 끝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니 이는 곧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봄이 움터는 새로운 시작을 뜻합니다. 곧 새로운 희망의 설날인 셈입니다.
 
검단사를 내려가면서 새날을 위해 무슨 서원을 세워야 할까를 망설이다가 명나라 묘협스님이 지은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속 10가지 금언의 편집인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를 마음에 담았습니다.
 
검단사 전경
 검단사 전경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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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念身不求無病)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둘째,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處世不求無難)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셋째,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究心不求無障)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과정을 간과하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넷째, 수행하는데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立行不求無魔)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모든 마군으로서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다섯째,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謀事不求易成)
일이 쉽게 되면 뜻이 경솔해지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많은 세월을 두고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여섯째, 사람을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交情不求益吾)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하셨느니라.

일곱째,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於人不求順適)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진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무리를 이루라' 하셨느니라.

여덟째, 덕을 베풀 때에는 과보를 바라지 말라.(施德不求望報)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덕을 베푼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 하셨느니라.

아홉째,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見利不求沾分)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적은 이익으로서 부자가 되라' 하셨느니라.

열째, 억울함을 당할지라도 굳이 밝히려 하지말라.(被抑不求申明)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트이는 것이요, 트임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결과를 낳는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검단산, #검단사, #동지, #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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