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들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그다지 높은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산이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특별한 산이 있다. 남한의 끝자락에 있는 큰 산, 한라산.
한라산이 남한 국민들에게 특별하고 각별한 이유 중 두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남한에서는 가장 높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한의 여느 산들과는 달리 인간이 기억할 수 없는 아득한 어느 때, 활발한 화산 활동이 있었으며 그 흔적이 남아있는 산이기에 각별하다.
한라산은 높은 산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참 넓은 산이다.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제주에 발을 디딘 촌 아줌마인 내가 처음으로 한라산을 맞닥뜨렸을 때의 놀라움은 그 높이가 아니라 넓이였다. 어릴 적, 한라산은 남한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당연히 꽤나 우뚝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놀라움은 더 컸다.
저 우뚝하지 않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으면서 고고하게 높고, 높으면서도 더 없이 넓은, 제주 아무데서나 불현듯 나타나 가까이 닿을 듯 서 있는 산. 그래서 제주의 일상 어디에서든 늘 한라산이 있다.
한라산은 2만 원, 성산일출봉은 1만 원?
얼핏 보아서는 한라산의 높음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 땅의 상당수는 한라산의 완만한 경사의 일부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놀랍지 않은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 남한 전체 면적의 50분의 1도 안 되는 남쪽 끝자락 자그마한 섬에 있다는 것이.
신문과 텔레비전도 잘 보지 않고 인터넷도 잘 하지 않는 이상한 시민기자인 나에게 요긴한 '카더라 통신'인 남편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에서 요금을 올려 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다. 한라산은 2만 원, 성산일출봉은 1만 원이란다.
이 소식에 둘이서 잠깐 성토를 했다. 그렇다. 다들 알다시피 지금 제주의 문제점은 자연은 경이롭고 한결같은데 사람들이 달려들어 돈을 매긴다는 데 있다. 인건비에 비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제주의 미친 집값과 땅값을 보라.
아메리카 대륙에 백인들이 발을 딛었을 때, 인디언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백인들의 행동 가운데 하나가 바로 땅을, 산을, 강과 바다를 돈으로 가치를 매기는 것과 자연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었다고 한다. 인디언들에게 이 말은 곧 바람을 소유하고 비를 소유하고 태양과 달을 소유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인디언들에게 자연은 다같이 공유하고 나누고 즐기고 느끼는 것이었기에 이를 돈으로 보는 백인들의 방식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신성함을 잃어버렸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외려 지구에 존재해왔던 그 어떤 인간 종족들보다 자연과 융화되어 조화롭게 살았던 종족 가운데 하나였다. 심지어 집조차도 거의 멸종에 이르는 그날까지 자연에 거스르지 않도록 '티피'라는 단촐한 형태를 고수했고 한곳에 정착하면서 지속적으로 동식물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옮겨다니며 살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요 식량이었던 들소 또한 꼭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했다. 그러나 백인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사냥을 즐기기 위해 마구잡이로 들소사냥을 했고, 그래서 인디언의 멸종과 들소의 멸종은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입장료가 정해지고 그 가치가 정해졌다. 그만큼 관광객들이 '천연자원'을 더 소중하게 대하라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하더라도 입장료를 올린다고 더 나아질까?
어쨌든 확실한 것은 자연에 가치를 매기고 돈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심할수록 고작 자연의 일부일 뿐인 인간이 자연보다 더 위대하다는 오만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자연이라는 존재는 영원히 정복할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자신들 멋대로 돈으로 그 가치를 매긴 다음, 인간들의 허락을 얻어 '법적으로' 주인이 되었다 해도 이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인간들에게만 허락 받은 '잠깐 주인'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 땅의 영원한 주인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인간중심의 지나친 착각이거나 오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