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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기나긴 고통의 세월이었다. 역사가 과거 유신시절로 돌아간 듯한 어둠의 시대였다. 우리가 이미 획득했다고 믿었던 그 민주주의의 원칙과 틀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그러나 마침내 시민들은 이 어둠을 촛불로 몰아냈다. 독재자는 자기의 성에 유폐됐고, 우리는 광장에 섰다.

이제 우리의 임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광장을 불살랐던 촛불의 열기를, 그리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그 뜨거운 외침을 진정한 민주주의의 제도화로 승화시키는 것이라 믿는다. 광장의 열기가 그저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법률과 제도로써 정립되고 실행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오마이뉴스>에 연속 기고한다. - 기자 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이 시험 이외에 국가 공적기관에 공무원으로 임용될 가능성과 국가 운영에 대한 시민의 진입과 접근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한국의 관료조직이 유능하다는 주장도 한때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 땅의 관료시스템은 지난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드러났듯 이미 특권화, 비효율화, 노후화되었고 지나치게 비대화했다. 그리하여 그 자체로 이미 개혁 대상이다.

제왕적 대통령에 가장 잘 부응하는 현 공무원 선발제도

특히 5급 공채로 이름을 바꾼 고시제도는 즉시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고시제도는 항상 기수(期數)로 묶어지면서 관료집단의 자기 세력 확대재생산의 제도적 토대로서 효과적으로 기능해왔다.

이렇게 상위 공직자의 충원이 고시 출신자의 내부 승진만으로 독점됨에 따라 우리나라 고위 공직 사회는 폐쇄성이 강하게 나타나며, 이에 따라 복잡·다양하고 전문화된 행정수요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나무 품종으로 이뤄진 숲이 가장 번성한 숲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시험이라는 한 가지 단일한 형태로만 공무원을 선발하는 현재의 방식은 "우리가 남이가"의 가족주의와 온정주의를 낳고 이는 결국 부패와 무능을 심화시키게 된다.

그것은 오직 특권과 독점의 상징으로 되었고, 상명하복으로 권력에 무조건 아부하고 줄서기와 승진에만 몰두해 있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관료 문화에서 정약용과 이순신은 결코 나올 수 없다. 

사실 오늘날 고시제도와 공무원 시험제도는 과거제도를 계승한 것이다. 흔히 과거제가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공평성이 평가되지만, 중국 역사상 과거제도는 본래 치국의 인재를 배양하고 선발할 수 없고 도리어 황제 전제정치의 필요에 충실하게 부응한 제도이기도 하였다.
 사실 오늘날 고시제도와 공무원 시험제도는 과거제도를 계승한 것이다. 흔히 과거제가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공평성이 평가되지만, 중국 역사상 과거제도는 본래 치국의 인재를 배양하고 선발할 수 없고 도리어 황제 전제정치의 필요에 충실하게 부응한 제도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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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날 고시제도와 공무원 시험제도는 과거제도를 계승한 것이다. 흔히 과거제가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공평성이 평가되지만, 중국 역사상 과거제도는 본래 치국의 인재를 배양하고 선발할 수 없고 도리어 황제 전제정치의 필요에 충실하게 부응한 제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시험으로만 선발되는 현재 우리나라 공무원 선발제도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가장 충직하게 부응하는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명나라 말기의 학자 고염무는 팔고문(八股文: 과거 시험이 엄격하게 요구했던 여덟 가지 형식)의 폐해가 진시황의 분서(焚書)와 같으며 인재에 대한 파괴는 오히려 진시황의 갱유(坑儒)보다 더 심하다고 갈파하였다. 그리고 결국 중국은 크게 낙후되었다.

시험으로만 선발되는 현 제도는 전문성과 창의성 그리고 역동성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의 수요에 부합되지 못한다.

일본.미국.프랑스.영국의 경우

우리나라가 대부분의 제도를 모방하고 있는 일본도 정작 특별채용 비율이 전체 채용비율의 54%를 차지한다. 하지만 일본의 시스템을 한사코 모방해온 우리나라의 특채 비율은 고작 5%에 지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10년까지 민간인 출신의 전문가 채용을 공무원 총수의 40%까지 끌어 올리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미국은 '대통령 공공관리 인턴(PMI: Presidential Management Intern)' 프로그램이라는 고급공무원 임명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공공정책 분야에 우수한 석․박사 인력을 충원하기 위하여 1977년 카터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의하여 도입된 제도이다.

매년 공공정책 프로그램의 분석 또는 관리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약 200명 이상의 젊은 인재들이 미국 국민에게 연방정부 공무원이 되는 지름길로 인식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2년 동안 연방정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게 된다. 이들은 '순환 인턴십 기회'를 통하여 거의 모든 정부 부처에서 근무하게 되며, 이 프로그램에 의하여 우수한 석·박사 인력들이 연방정부에 채용되고 있다. 

프랑스는 유명한 국립행정학교, 즉 에나(ENA)를 통하여 고위공무원을 채용한다. 국립행정학교의 입학시험은 28세 이하의 대학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 1시험(2002년 남 60명, 여 20명 선발), 4년 이상의 공무원 경력을 가진 30세 이하의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2시험(2002년 남 27명, 여 16명), 40세 미만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8년 이상 사적 영역에서 직업 활동을 한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3시험(2002년 남 7명, 여 6명 선발)이 있다.

이러한 ENA 외에 외부시험을 통해 고위공무원을 선발하는데, ENA 선발 비율은 전체의 1/3~1/2을 점하고 있다. 또 법관 임용도 국립사법관학교 졸업생만이 아니라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을 선발하고 사법관학교 입학도 다양한 형태로 학생을 선발한다.

프랑스는 이렇게 하여 고급 공무원의 사회적 배경의 균형을 추구하고 전문가의 공직 진출 가능성을 제고시키기 노력하는 한편, 그밖에도 계급제의 단점인 충원 형태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하여 공개채용시험 외에 다양한 충원 형태를 운영하고 있다. 특별채용과 전체 공무원의 20%에 이르는 계약직 공무원 제도의 활성화로써 계급제 하에서 인력운영의 탄력성을 높이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영국의 경우에는 속진(速進) 임용제를 적용하여 공무원 중 고위직 공무원 직위에 도달할 수 있을 우수 인재를 선발하여 별도의 훈련 및 능력개발기회와 조기승진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 고위공무원단의 1/3에 가까운 인원이 속진 임용제를 통하여 선발된다.

대중에게 이익 보장할 때 개혁 성공할 수 있어

오랜 중국의 역사에서 개혁이 성공을 거둔 사례는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의 상앙변법(變法)과 현대중국에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두 번 뿐이었다.

상앙이 추진한 '20급작(級爵)제도'는 군공(軍功)과 농업 수확물에 의하여 작위를 주는 군작제도 개혁으로서 이전의 귀족제도 하에서 전혀 신분 상승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일반 평민들에게 군사적 공헌과 농업 및 잠업 그리고 방직업의 수확물에 의한 신분 상승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라 생산력 증가와 아울러 백성들의 에너지를 총 집결시킬 수 있었다.

현대 중국에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역시 절체절명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 어떻게든 돈을 벌고 부자가 되려는 인민들의 역동성과 창의성이라는 에너지를 집결시키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중국 역사상 성공한 두 개혁 사례인 상앙 변법과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부터 개혁 성패의 관건은 대중들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와 실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개혁 과정에 대중들의 참여를 극대화시켜낼 수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단순히 공감과 심정적 지지만으로는 개혁의 성공을 보증할 수 없다. 대중들에게 이익이 보장될 때 비로소 개혁도 성공한다는 의미다.  

국민에게 '공무직(公務織)'를 개방하라

무엇보다도 일반 국민들의 공무원으로의 진입이 개방되어야 한다. 현재 국민주권주의의 법률 규정은 선거권(헌법 제24조)과 공무담임권(헌법 제25조) 그리고 국민투표권(헌법 제72조)인데, 그중 공무담임권은 개념상 내용상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다.

이는 비단 국가시스템 운용의 합리성 제고라는 측면만이 아니라 국민주권 강화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모든 시민에게 실질적이고 보편적인 공무담임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말단 직급에서 차관이나 장관까지 올라가는 '입지전적 인물'이 칭송되기도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 공직 사회의 후진성의 반영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채 비리 등으로 인하여 공무원의 외부 개방 선발에 대하여 부정적 이미지가 적지 않다. 그러나 공무원 조직이 우리 국가 조직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근간 조직이라는 점에서 국민에 대한 높은 봉사 의식과 함께 뛰어난 능력을 지닌 우수한 인력을 선발해야 한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프랑스 공무원의 경우 각 계급별 승진에서 모두 외부에 개방된다.

우리나라 공무원 제도도 그 폐쇄적이며 경직된 구조를 극복하여 지속적인 외부 개방 시스템의 도입이 절실하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현재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이 강한 공직사회에도 새로운 신진대사가 실현되어 조직의 활력과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제고될 것이다.
 우리나라 공무원 제도도 그 폐쇄적이며 경직된 구조를 극복하여 지속적인 외부 개방 시스템의 도입이 절실하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현재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이 강한 공직사회에도 새로운 신진대사가 실현되어 조직의 활력과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제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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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공무원 제도도 그 폐쇄적이며 경직된 구조를 극복하여 지속적인 외부 개방 시스템의 도입이 절실하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현재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경향이 강한 공직사회에도 새로운 신진대사가 실현되어 조직의 활력과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제고될 것이다.

아울러 이는 격변하는 현대의 지식 정보 사회에서 각 분야에 있는 우수 인력에게 국가 관리의 기회를 제공하며, 특히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 사회와 국가에 봉사할 기회가 '박탈'된 많은 우수 인력들에게 일종의 '패자 부활전'의 장(場)을 열어 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동시에 공무담임권 그리고 국민주권주의의 실현 방안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소준섭 박사는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받았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직접민주주의를 허하라>, <대한민국민주주의처방론>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유신반대 운동으로 수배, 구속된 바 있고, 서울의 봄 때 다시 수배되어 광주항쟁 전 과정을 <광주백서>로 기록하고 지하에서 출판 배포하기도 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태그:#소준섭, #공직사회 개방, #공무원선발제도, #고시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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