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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달에 한 번은 밤 아홉시까지 일했다고 하니, 4대보험을 공제한다고 하더라도 승호와 재식이가 받은 11월 임금 115만원은 최저임금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교육과 현장훈련이라는 애초의 목적과 달리 현장실습의 민낯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에 현장실습생으로 일하고 있는 우리지역의 특성화고 3학년 학생들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현장실습제도의 명암을 알고, 이를 통해 현장실습문제에 대한 공론화의 장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지역의 한 특성화고교 자동차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유승호(가명) 학생과 김재식(가명) 학생. 이들은 지난 8월부터 A공업사에서 석 달 째 현장실습을 하고 있다. 이 글은 두 학생과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이다. - 기자말

"현장실습표준협약서요? 학교장 서명 들어간 거 본 건 같은데요."
"근로계약서요? 안 썼어요. 그런 거 저한테는 없어요."
"최저임금은 준다고 했어요."

특성화고 자동차학과에 다니는 승호와 재식. 전공과 관련 있는 지역 A공업사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특성화고 자동차학과에 다니는 승호와 재식. 전공과 관련 있는 지역 A공업사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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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호와 재식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 위치한 특성화고 자동차학과 같은 반으로, 매일 한 시간 정도 버스로 등하교를 했다. 여름방학 이후 담임의 추천으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A공업사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있다.

A공업사는 그 지역에서 이름만 말하면 알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꽤 큰 사업장이다. 보통 특성화고 현장실습이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전공과는 무관한 사업장으로 나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전공과 연계된 현장으로 실습을 나간 승호와 재식의 상황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대부분 현장실습을 나가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관심사는 임금이다. 조금이라도 임금을 많이 주는 사업장으로 가고 싶어한다. 승호와 재식이는 어떠했을까?

"집에서 버스 타고 출퇴근 할 수 있으니까 별 생각 않고 갔어요. 담임 샘이 최저임금 이상은 줄 거라고 해서 이것 저것 물어보거나 하지 않았어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막상 회사 가서 그거 작성 안하냐고 말하면 찍힐 거 같아서요."

전남지역의 모든 특성화고 3학년들은 현장실습 나가기 전에 두 시간의 노동인권교육을 받는다. '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확인하고, 일 하다가 다칠 경우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는다' 등의 내용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아직도 '하늘에 별 따기'인가 보다.

"두 번째 월급을 받아보고 나서 어이가 없고 허탈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토요일도 오후 1시까지 일을 했다. 월급날은 매월 11일이다. 8월 말에 첫 출근을 하고 첫 월급은 10월 11일에 받았다. 한 달 하고도 며칠 더 일한 임금은 공제액을 제외하고 130여만 원이었다.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은 승호는 이야기한다.

"처음으로 세 자리수 임금을 받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115만 원이 찍힌 11월 급여명세서를 받아 보고 나서 '하루종일 힘들게 일했는데 겨우 이거라니' 하는 생각에 어이가 없고 허탈했다. 얼마 전 공장장은 "일은 할 만 하냐? 최저임금은 받지?" 라고 물었다.

"'최저임금도 안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 없었어요. 괜히 말했다가 찍히고 짤릴 것 같아서요."
"더 주면 저희야 좋지만, 학생이니깐 최저임금 정도 받고 일해야지요."

우리나라 법정노동시간은 주 40시간, 월 209시간으로 올해 최저임금 시급 6030원으로 계산하면 월 126만270원이다.

승호와 재식이는 토요일도 오후 1시까지 일을 했다. 주 44시간, 월 226시간으로 최저임금로 따져도 월 136만2780원이다. 한 달에 한 번은 밤 아홉시까지 일했다고 하니, 4대보험을 공제한다고 하더라도 승호와 재식이가 받은 11월 임금 115만원은 최저임금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더욱 문제는 올해 2월 개정된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제9조 ②항에 의하면 '재학 중인 직업교육훈련생의 현장실습 시간은 1일 7시간, 1주일 35시간을 초과하지 못한다. 다만,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1일 1시간, 1주일에 5시간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하루 8시간, 주 40시간 현장실습을 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법은 조문일 따름이다.

"졸업하고 나서 다닐 생각은 없어요"

아르바이트나 다름 없는 현장 실습. 혹시 현장실습은 학생들이 졸업하기 전까지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하도록 공식적으로 허용한 것은 아닐까.
 아르바이트나 다름 없는 현장 실습. 혹시 현장실습은 학생들이 졸업하기 전까지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하도록 공식적으로 허용한 것은 아닐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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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 나간 첫 날, 아침 조회 때 20여 명이 넘는 현장 노동자들 앞에서 인사를 하고 나서,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승호와 재식이가 주로 한 일은 엔진오일 교체하는 것이었다. 차종이 다양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엔진오일 교체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지금은 단순 반복노동을 하고 있다. 틈틈이 어렵지 않은 정비일을 배우고 형들이 시키는 이것 저것 잡일을 한다. 서투르게 일을 할 때마다 욕을 많이 듣는다.

"욕은 먹기 싫지만, 쇠를 다루는 일이라 실수하면 안되니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현장실습생한테는 좀 더 심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재식이와 승호는 졸업하고 나서 A공업사에 다닐 생각이 없다. 현장실습생 생활을 마치고 실제 취업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저랑 안 맞는거 같기도 하고, 좀 더 생각해서 제 적성에 맞는 좋은 취업 자리 알아보고 싶어요."

대부분 특성화고는 현장실습 나간 것을 취업률로 통계낸다. 하지만 졸업 후 현장실습 나간 사업체로 실제 취업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도 취업률로 간주해요. 선생님들도 자기 실적 올라가니깐 일단 현장실습을 보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열아홉에 실습 나가 욕을 얻어 듣고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르바이트나 다를 바 없는 현장실습?"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제7조에는 "'현장실습'이란 직업교육훈련생이 향후 진로와 관련하여 취업 및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기술 및 태도를 습득할 수 있도록 직업현장에서 실시하는 교육훈련과정을 말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대다수 특성화고 3학년 현장실습이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장실습생.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야 할 시간에 졸업하기 전까지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하도로 공식적으로 허용한 것은 아닐까?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의해 시행되는 현장실습. 과연 현재 현장실습은 올바른 직업교육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걸까?

☞이전 기사①: "현장 실습? 차라리 피자가게 알바가 나아요"
☞이전 기사②: "휴일 끝나고 왔더니, 이제 나오지 말래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순천언론협동조합이 만든 [순천광장신문]에 중복게재 되었습니다.



태그:#현장실습, #현장실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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