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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 박근혜 퇴진하라!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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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은 정말 환상적이면서 감동적인 날이었다. 끝없이 몰려와서 자리를 채우고 촛불을 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날이 결국 오는구나' 싶어서 왠지 계속 눈시울이 뜨거워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4년간 고통받고 죽어간 수많은 분들을 떠올리게 하는 밤이었다. 100만 명 중 어딘가에 세월호 희생자들이, 백남기 어르신이, 삼성 직업병 희생자들이 우리와 함께 행진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한 집회가 아니라 모든 '억눌리던 사람들의 축제'였고 광화문대로는 해방구였다. 거기서 한 무리의 예술가들은 존 레논의 이매진을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 주변 사람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수백 명이 다같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춤추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한 무리의 청년들은 세종문화회관 한켠에서 인디밴드의 록음악에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또 무리의 청년들은 열광적으로 온몸을 흔들며 소리를 지르고 북을 치면서 행진하고 있었다. 어떤 젊은 분들은 계속 쓰레기와 버려진 유인물들을 줍고 정리하고 있었다.

경복궁역 로타리에서는 밤늦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청와대로 행진하려고 하고 있었고, 그 선두 방송차 지붕에는 세월호 가족들이 열화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속에 '경찰은 길을 비켜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집회에 참여하신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겠습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따라서 '100만이 모였지만 바뀐 건 별로 없다', '100만 촛불 콘서트에 불과했다', '조선일보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서 움직였을 뿐이다'며 이날의 의의를 깎아내려선 안 된다.

그런 분들에게 이 아래로부터 투쟁이 이미 무엇을 바꾸어 놓았는지 보자고 말하고 싶다. 일단 이 투쟁은 단 몇 주 만에 100만 명이라는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 이것은 87년 6월 항쟁을 능가하는 기록이다. 나아가 이 투쟁은 경찰이 아주 오랫동안 결코 물러서지 않던 마지노선을 무너뜨렸다. 우리는 세종대왕상을 훌쩍 넘어서 경복궁역까지 진출했다. 청와대 그토록 가까운 곳까지 시위대가 진출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날 '평화시위'가 이뤄진 것은 이처럼 경찰이 대폭 물러섰기 때문이지 시위참가자들이 '조선일보 프레임에 갇혔기' 때문이 아니다. 만약 지난해 민중총궐기 때처럼 또 광화문부터 차벽을 세우고 물대포를 쐈다면 사람들은 결코 참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대폭 후퇴하고도 경찰은 위협은커녕 다음 날 납작 엎드리며 시위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법원은 갑자기 '집회 자유의 수호자'로 돌변했고, 시위를 매도하기 바쁘던 조중동과 보수 종편은 아부와 찬양을 늘어놓았다. 새누리당은 공중분해되기 시작했고, 박근혜 앞에서 굽신거리기 바쁘던 검찰은 박근혜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다. 겁많고 우유부단하던 야당들은 '민주투사'가 돼서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다.

무엇보다 이 투쟁은 지금 수백만 명의 생각을 바꾸고 '우리가 세상과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이것이 이 투쟁의 가장 중대한 의의다. 이는 세월호 7시간 문제도 박근혜 퇴진의 '뇌관'으로 만들고 있다. 바로 한 달 전에 세월호 특조위가 강제 해체되면서 좌절감에 빠졌었던 사람들은 이제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벅차 오고 있다.

물론 박근혜는 100만의 함성을 못 들은 척하고 있다. 사실 박근혜와 부역자들에게는 퇴로가 없다. 천 길 벼랑 끝 위에서 물러서면 구속·처벌은 물론 재기불능의 위기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는 반격을 시작했다. 검찰 수사를 거부하고 사드 배치, 한일군사협정, 국정교과서 발행 등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 '엘시티 비리' 철저 수사를 지시하며 비박계와 야당도 압박하고 있다.

헬조선을 위한 '국정'의 중단없는 추진이 재벌과 보수언론, 우파 지지자들을 다시 결집시킬 것이고, 이렇게 시간을 끌고 버티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이런 시도는 '이러다가 기득권 체제가 흔들리면 어쩌나'고 걱정하던 비박 우파들이 다시 박근혜와 타협하도록 추동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극우 트럼프의 당선이 박근혜에게 희망을 품게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최근 민주당의 자충수와 잘못된 타협이 박근혜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했다.

민주당 대표 추미애는 갑자기 박근혜와 양자회담을 합의했다가, '박근혜의 구원투수가 되려는 거냐'는 강력한 비판에 직면해 그것을 철회했다. 또 민주당, 국민의당은 내용과 기간 등에 너무 허점이 많고 무엇보다 박근혜가 통제할 수 있는 누더기 특검법을 새누리당과 타협해 버렸다. 새누리가 절반을 차지하고 위원장까지 맡은 국정조사위원회를 합의한 것도 매우 유감스럽다.

'2선 후퇴'를 말하며 김을 빼오다가 뒤늦게 '퇴진'을 당론으로 정했지만, 민주당의 이런 자충수는 앞으로도 반복되면서 박근혜에게 반격의 틈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민주당 일부에서는 책임총리를 다시 받자는 말이 나오고 있고, 나아가 '시위가 과격해지면, 그걸 빌미로 박근혜가 계엄을 발동하거나 판을 뒤엎을 수 있다'며 투쟁을 제한하려 들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의 반격에도 우리의 대응에 변화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저들의 사기를 높이며 더 강경한 반격을 부를 것이다. 100만의 목소리도 들은 척을 안 한다면 더 강력한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평화시위라서 이렇게 무시한다면 더 강경한 행동이 필요한 것 아닌가'하는 고민을 할 것이다. <조선일보>도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2선 후퇴조차 거부하고 야권과 시민단체들이 하야를 요구하면서 충돌하면 앞으로도 평화 집회가 이어질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150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결합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힘을 모으며 이런 과정을 도와야 한다. 저들이 그어놓은 선에 갇히지 말아야 하고, 노동자 파업을 고무할 필요도 있다. 사실 많은 손실과 탄압을 각오한 '정치파업'은 아무 때나 쉽게 꺼낼 수 있는 게 아니니, 노동자들이 자신감과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를 보내 줄 필요가 있다.

물도 100도가 되면 끓어오르듯, 이제 이 투쟁의 질적 도약을 위한 백가쟁명의 토론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로를 '애국가나 부르는 한심한 사람들', '충돌을 유도하는 프락치'라는 식으로 모욕하기보다 이견을 존중하는 생산적 토론을 해야 한다. 우리는 결국 답을 찾을 것이고 찾아야 한다.



태그:#박근혜 , #새누리 ,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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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보다 사람이 목적이 되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함께 배우고 토론하고 행동하길 원하며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실행위원입니다. 더 많은 글들은 여기서 봐 주세요. http://anotherworld.kr/ 페이스북 계정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74673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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