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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 개헌을 하고 유신을 선포하던 시기, 서해 건너편 중국 땅에서도 야만의 바람이 불었다. 한반도에서 반공을 기치로 빨갱이를 잡던 시기, 대륙에선 혁명을 기치로 우파 분자를 잡아댔다.

고작 중학생밖에 되지 않았던 홍위병이 남의 집 대문을 부수고 집안 물건을 내동댕이쳤다. 문화대혁명(1966~76, 공식 명칭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아래 '문혁')이란 바람이 10년간 중국 땅을 휩쓸던 때였다.

"그때 홍위병은 아주 어린 아이들이었어요. 그 애들이 하는 말에 왜 그렇게 겁을 먹고 놀랐는지 모르겠어요."

일가족 모두가 중학생들에게 무릎을 꿇고 재판을 받아야 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집에 남은 방 하나를 세줬다는 것. 그렇게 번 돈을 비난하며 홍위병은 이들을 자본가로 몰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홍위병에게 찍힌 사람은 갖은 고문을 받았다.

방법은 다양했다. 안약병에 찬물을 채우고 귓구멍이 가득 찰 때까지 부었다. 얼굴에 염산을 뿌려 실명하게 했다. 밧줄로 성기를 묶은 다음 고환이 부풀 때까지 물을 마시게 했다. 광기의 시기였다.

자기 편을 짓밟는 혁명,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책의 저자 펑지차이는 1986년 말부터 문혁 피해자 1백 명의 이야기를 여러 잡지에 연재했다. 여기서 29편을 묶어 1996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한국판은 그 중 17편을 엮었다.
 이 책의 저자 펑지차이는 1986년 말부터 문혁 피해자 1백 명의 이야기를 여러 잡지에 연재했다. 여기서 29편을 묶어 1996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한국판은 그 중 17편을 엮었다.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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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사람의 십 년>은 그 시기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유명한 사람, 권력자의 이야기는 없다. 철저히 서민의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큰 인물이 아무리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 해도 일반 사람이 겪는 비극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엔 억울한 사람이 많다.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반동사상을 철저히 비판해야 한다는 말로 문혁을 시작했지만, 피해자 다수는 자본주의를 추구하긴커녕 국가를 따르고 당에 충성하던 사람이었다.

문혁을 일으킨 마오쩌둥을 존경한 사람도 있었다. 마오쩌둥의 딸 리민과 동기였던 한 피해자는 '리민과 함께 마오 주석에게 보낼 선물과 편지를 정성스레 준비하던' 사람이었다. 숭배자를 짓밟는 혁명이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문혁 시기, 반혁명 분자와 우파 분자는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이유는 다양했다. 마음에 안 들던 사람을 매장하기 위해서, 권력 다툼에서 이기기 위해서.

피해자는 문혁이 끝난 후에야 자신이 왜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희생양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선천적으로 웃을 수 없는 사람이 반혁명 분자라 몰린 이야기가 그 예다.

책에 따르면, 당국은 그의 예전 우경 발언을 근거로, 그가 웃지 못하는 이유가 새로운 중국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조사반은 물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마오 주석 초상화를 보고 웃으라 했고, 웃지 못한 그는 반혁명 현행범으로 몰렸다.

그렇게 반혁명 분자로 몰리면 사회적으로 매장 당했다. 산간벽촌에선 비판투쟁대회를 열 때 수십 킬로그램의 똥통을 피해자 목에 걸게 했다. 사람들은 차례로 똥을 집어 던지며 피해자를 손가락질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수모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기도 했다고 저자는 기록했다.

"우리가 겪었던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저자가 문혁 피해자 경험담을 모을 때 한이 맺혀 그를 찾아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한 50대 여성은 인터뷰 뒤 혈압이 높아져 한 달을 누워 지내야 했다고. '사건을 다시 떠올리는 자체가 허물을 벗겨내듯 고통스러운' 일인 피해자를 인터뷰할 때마다 저자는 매번 이렇게 말했단다.

"이 책은 나를 위한 것도 아니고 피해자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후대에 알려야 한다.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다음 세대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전히 중국 정부는 자신의 죄를 덮으려 한다. 문혁을 쉬쉬 한다. 민주화 시위를 탱크로 무력 진압했던 천안문 사건(1989)은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서는 여전히 검색 금지어다. 천안문 사건 당시, 무력진압을 승인한 덩샤오핑은 문혁 시기 박해받았던 유력 정치인이었다. 문혁 당시 그의 장남은 홍위병을 피하다 하반신 불구가 됐다. 그런 그가 문혁 13년 뒤 국가폭력을 승인한 건 아이러니다.

한번 반혁명 분자로 찍히면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당안에 기록돼 누명을 벗을 때까지 따라다녔다. (당안: 가정성분, 출신계급, 학교성적, 공산당 경력, 직장경력, 결혼, 언동, 범죄경력 등 개인정보를 담는 기록물)
 한번 반혁명 분자로 찍히면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당안에 기록돼 누명을 벗을 때까지 따라다녔다. (당안: 가정성분, 출신계급, 학교성적, 공산당 경력, 직장경력, 결혼, 언동, 범죄경력 등 개인정보를 담는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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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금세 잊는다. 자신이 했던 잘못을 잊고 어느새 반복한다. 기억하고 있더라도 죽음과 함께 기억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역사를 기록하고 가르치는 이유다. 4.19 혁명, 6월 항쟁 같은 역사적 사건을 매해 기념하는 이유다.

문제는 조국이 가해자였던 역사를 쓸 때다. 역사를 기록할 때 국가는 자신의 잘못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을까. 조국의 잘못을 부각하는 건 자학사관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과연 학생들에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줄 것인가.

교육부는 이번 달 28일 국정교과서를 공개할 방침이다. 16일 국정교과서 추진을 재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교육부는 곧바로 "철회, 보류 등 다른 방안에 대해 전혀 검토한 바 없다"며 "국정 역사교과서를 예정된 일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설령 국정교과서를 중단하더라도 이유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때문이어선 안 된다. 지지율을 잃었기 때문에 잠시 중단하는 거라면 국정교과서는 언제든 재추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제 한국에 예전 같은 국가폭력은 없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봐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예전 같은 폭력은 반복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국가폭력은 언제든 다양하게 변주돼 가해질 수 있다. 국가에겐 그저 더 적은 폭력일지라도 개인에겐 그게 모든 것이다. 잊지 말자. 추념일을 지정하고, 역사책을 쓰고, 역사를 가르치는 이유를.

"역사는 모든 걸 기억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이 잊지 않는 것이다."


백 사람의 십 년

펑지차이 지음, 박현숙 옮김, 후마니타스(2016)


태그:#역사, #중국, #문화대혁명, #백 사람의 십년, #국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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