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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된사람들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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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좀처럼 답을 찾기 어려운 이 질문에 인생 전부를 바친 사람이 있다. <괴물이 된 사람들- 아홉명의 아동 성 범죄자를 만나다>의 저자 패멀라 D. 슐츠다.

그는 열살도 되기 전 이웃에게 성 학대 피해를 입었다. 패멀라는 이십대 후반까지 혼란스러웠다. 이웃 아저씨가 어떻게 했는지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패멀라는 수치스러웠다. 자신이 그 일에 책임이 있지 않나 생각하면서 깊은 죄책감에 빠졌다. 성폭력 연구에 매달렸던 이유도 자신을 성추행한 남자를 이해하면 상처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서 였다고.

'성 학대 생존자가 감옥에 수감된 가해자들을 인터뷰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설정의 이 책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피해자가 어떻게 가해자를 옹호할 수 있냐고 비난과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이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아동 성범죄자를 '괴물'로 치부하고 격리하는 행위로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범죄가 어떻게 일어나게 됐는지 가해자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아동 성 학대 가해자들이 성 학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경로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하였다.

이들이 저지른 성 학대는 단순히 우연히 생긴 사건이 아니었다. 아이들 주변을 배회하진 않았지만 치밀하게 계획하여 아이들과 단 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폭력을 쓰진 않았지만 아이들을 유혹하고 덫을 놓는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은 아동 성범죄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괴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유아 성도착증을 갖고 있던 환자도, 사람을 잔인하게 대하는 폭력형 인간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아동에게 성추행을 했는가? 책을 읽는 내내 궁금증이 더해 갔다.

패멀라는 어린 시절 겪었던 신체 학대와 성 학대 경험을 이들(가해자들)이 아동 성 학대자가 된 원인으로 꼽는다. 학대 경험이 자아 가치관을 훼손했고, 자신감을 떨어뜨렸고 성도덕에 대해 경계를 잃게 했다고 보았다. 아이들을 성추행하려는 충동이 인정받지 못한 남성성에 대해 보상받으려는 욕구로 생겨났다.

이 책의 주인공 중 하나인 레드와 빌리가 그렇다. 그들은 끔찍한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를 막아주지 않은 어머니를 기억해냈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한 피해자여서 아무런 힘이 없었다. 레드와 빌리는 분노를 키워갈 수밖에 없었다. 레드가 독선과 자기혐오 이면에 분노를 숨기고 있었다면 빌리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짐승'처럼 변해 갔다.  

벤은 직접적인 신체 학대는 없었지만 집과 보호시설을 오가며 살았다. 더구나 아동기 대부분을 자신을 성 추행한 삼촌과 함께 보내야 했다. 벤 역시 상당한 분노를 품은 사람으로 성장했다. 누구라도 그리 되기 쉬웠으리라. 벤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삼촌 행동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형성된 분노가 점차 우울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삶 전체를 어둡게 뒤덮어 버렸다.

에이브는 어렸을 때 언어폭력 뿐 아니라 신체학대와 정서학대를 당했다. 그는 과연 자기 인생에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에이브가 학교에 들어간 후 학대 후유증으로 정신장애 징후가 발견됐지만 아버지는 가족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기 두려워 그 사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에이브가 전문가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막기까지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이렇게까지 학대할 수 있을까 경악했다. 이런 환경이라면 누구라도 삐뚤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학대당한 아이들이 모두 어른이 됐을 때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 한다.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지탱해주는 믿음이랄까. '자라면서 크고 작은 상처 하나 없이 자란 사람은 없다',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기저귀를 차고서부터 학대를 받은 사람에게 이 말이 통용될 수 있을까. 더구나 가해자 중 몇몇은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자신에 대해 상담을 요청했는데도 교회, 상담기관 어디에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아동 성 범죄자라고 낙인찍기만 하고 제대로 도움을 주지 않는 사회.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 몫이다.

'아동 성 학대 피해자이자 아이를 가진 엄마가 어떻게'라는 비난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책 집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패멀라가 엮어낸 이 책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성 학대의 생존자로서 그 공포에 아주 친숙하지만, 그러나 유죄를 받은 아동 성추행범들이 갱생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동 성추행범은 교정될 수 없다는 사회의 태도는 성추행의 충동은 결코 조절할 수 없다는 성추행범의 신념을 오히려 강화시킬 뿐이다. 사회가 성추행범이 갱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지 않는다면 그 범죄자는 어떻게 스스로를 믿겠는가?(P.15)"

패멀라는 말한다.

"그들이 한 짓은 경멸하라. 어두운 충동에 내맡긴 그들의 의지를 경멸하라. 약하고, 폭력적이고 충동적이고, 잔인했던 것을 비난하라. 그러나 그들도 한때는 아이였다는 것과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면서 체득했을 교훈들을 기억하라. 그들같이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도록 노력하자.(P.18)"

패멀라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자신을 성 학대한 가해자를 용서했다. 성 범죄에 맞서고자 한다면 성과 권력이 사회에서 어떻게 구성되는지 인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성 학대 피해자 이야기만 들어서는 문제의 절반만 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확신한다. 가해자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는 일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괴물이 된 사람들 - 아홉 명의 아동 성범죄자를 만나다

패멀라 D. 슐츠 지음,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옮김, 이후(2014)


태그:#아동성학대, #아동성폭력가해자, #아동성폭력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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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밥 대표이자 구술생애사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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