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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도 단감나무가 있지만 선물 받은 단감은 더 맛나다
▲ 단감 우리 집에도 단감나무가 있지만 선물 받은 단감은 더 맛나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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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익을 대로 무르익어 경치 좋은 산사나 유원지, 하다못해 앞산 뒷산 할 것 없이 사람이 넘쳐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백양사나 내장산을 지척에 두고도 한 번도 때맞추어 단풍구경을 간 적이 없다. 단풍 축제 때는, 길에는 차가 붐비고 경치가 좋은 곳에는 사람이 넘칠 것 같은 지레짐작으로 인해 엄두조차 내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내가 단풍구경을 원 없이 하며 사는 줄 안다. 문자나 전화로 연락해서, '좋은 데 살아서 좋겠다'라고 말하니 말이다.

이번 가을에는 마음먹고 11월 4일 금요일 다 저녁때 남편과 함께 백양사로 향했다. 단풍철이 지나긴 했지만 주말이니까 혹시나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딴에는 얕은수를 쓴 것이다.

살림살이가 넉넉해서일까, 아니면 타는 속을 불타는 단풍이라도 보면서 불살라버리고 차라리 빈 가슴에 새로움을 채우고 싶어서일까! 차라는 차는 다 백양사로 몰린 것 같았다. 1번 국도에서 백양사로 들어가는 삼거리에서부터 차가 밀렸다. 신호등 때문이 아닐까 하고 혹시나 하는 미련한 생각으로 부득부득 진입을 시도했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차를 돌렸다. 우리처럼 중도에 차를 돌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웃에게 거짓말을 한 이유

집에 돌아오니 대문간에 까만 비닐봉지가 하나 걸려 있었다. 누군가가 또 무엇을 갖다 놓았나보다. 역시나 봉지 속에는 곱게 다진 고추와 기피 낸 들깨가루가 들어 있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갖다 놓은 사람의 전화나 문자를 기다리는 데 전화가 걸려 왔다. 낮 동안 마지막 가을걷이를 하던 옆집 아줌마다.

"여보세요? 집에 들어가셨어요? 어디 단풍구경 갔다 오셨어요?"
"아, 아니에요. 단풍은 무슨. 약속이 있어서 밖에 좀 나갔다 왔어요."

나도 몰래 거짓말이 툭 튀어나왔다. 의도치 않은 나의 거짓말에 남편이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눈으로 묻는다. 나는 얼른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역시 눈빛으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제가 대문에 뭣 좀 두고 왔는데 보셨어요?"
"아 예, 애써 농사지은 것을 그냥 주시면 어떻게 해요, 제가 돈 드릴게요."
"별말씀을 다 하세요, 그래서 조금 드렸잖아요. 맛있게 드시면 돼요."

전화를 끊자 남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다.

"당신 왜 거짓말을 해요?"
"그러게요. 단풍구경 갔다 왔느냐는 말을 듣는데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줌마가 오늘 밭에서 일하는 걸 봐서 그랬나 봐요. 아줌마뿐만 아니라 온 동네가 마지막 가을걷이하느라고 바쁜데...!"

냉동실과 냉장실, 토방을 살펴보니 올해도 이집 저집에서 가져온 먹을거리들이 제법 많았다. 쑥떡을 비롯해 단감, 고춧가루, 들깨, 갖가지 절임 나물들, 팥, 다진 청양고추까지! 감탄을 하며 혼잣말을 하는데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선물로 받은 잘게 썬 청양고추와 팥
▲ 인심 선물로 받은 잘게 썬 청양고추와 팥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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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서 1되에 1만원하는 들깨를 8천원에 샀다. 그것도 유기농 들깨를!
▲ 들깨 시중에서 1되에 1만원하는 들깨를 8천원에 샀다. 그것도 유기농 들깨를!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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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기도 하다. 나는 이 사람들한테 뭘 줬지? 주기나 한 건지 모르겠네."
"당신이 받기만 하는데 이것들이 당신한테 왔겠어요? 당신도 많이 나누었어요. 그렇게 싫어하는 소개도 했잖아요."

듣고 보니 그렇긴 했다. 도시에 사는 지인들이 농산물이 필요하다면 망설임 없이 추천하고 물건에 대해 장담하며 소개를 해 줬다. 우리도 사먹기는 하지만 그 양은 미미하다.

작년에는 김장을 안 했더니 무려 여섯 집에서 준 김장김치가 열두 포기나 됐었다. 올해도 김장은 안 할 것이다. 하지만 이웃 몰래 사다 먹으며 김장을 했다고 '뻥'을 칠 것이다. 장성으로 귀촌한 것이 내게는 행운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픈 몸으로 내려와서 건강도 좋아졌다. 무엇 하나라도 돈이나 노동을 지불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삭막한 도시 생활을 하다가, 조건 없이 나누어 주는 이웃과 함께 산다는 것은 나를 웃게 하고, 내 삶을 기름지게 해 준다.

나도 이제 '소속'이 생겼다

토요일 오전에 들기름을 짜러 갔다. 기름집 아주머니가 처음 본다며 말을 시켰다. 귀촌했다는 말에 내가 숙맥처럼 보이는지 기름 짜는 값을 스스로 에누리해 주며 조심스럽게 당부했다.

"들기름은 오래 두고 먹으믄 산패하기 쉬웅게, 챔기름을 쪼끔 섞어서 보관하믄 오래 강게요. 그리해 보시오 잉."

그 말이 어찌 그리 다정스럽게 들리던지! 알았노라고 대답을 하고 기름병을 들고 나오는데 이웃에 사는 아는 아주머니도 기름을 짜러 왔다.

"서울댁, 오늘 저녁에 모임 있는 거 알지요? 부부 모임잉게 신랑이랑 같이 오시오 잉."

아, 맞다. 오늘 동네 계모임이 있는 날이다. 나도 드디어 장성 사람이 됐다. 평소에는 만나도 눈인사만 하는 아주머니가 같은 계원이 됐다고 미리 말을 걸어 준다. 괜히 가슴이 뭉클하니 콧잔등이 찡하다.

얼마 전에 장성의 트렌드마크인 노란 꽃 축제가 있었다. 황룡강 둔치에 가을을 알리는 노란색 꽃이란 꽃은 다 모아 놓았다. 그 꽃들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 눈 인사 정도 하는 사람은 몇 명 있었지만 반갑게 손 맞잡고 차 한 잔 마실 사람은 서너 사람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가 소속된 곳이 없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도 모임이 생긴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싱글벙글하며 남편에게 기름집에서 아주머니가 먼저 아는 체하더라는 말을 하는데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보, 나 오늘 술 한잔 할까? 아줌마들하고 같이 한잔 하고 싶은데."
"그 마음은 알겠는데 참아요. 당신 아직 술 마시면 안 돼요."

그렇게 설레는 가슴으로 일찌감치 모임 장소에 갔다. 제일 먼저 도착했다. 곧이어 계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남자들끼리 여자들끼리 자리를 잡았다. 모두들 잘 왔다며 반겨 주었다. 동네에서 만나도 인사 정도만 나누다가 같이 음식을 먹는 자리를 갖자 너나 할 것 없이 급속도로 마음을 열었다.

작은 것으로라도 이들을 즐겁게 해 주고 싶었다. 마침 사이다를 마셔야 되는데 병따개가 없었다. 나는 주저 없이 숟가락을 잡았다. 남편에게 배운 실력으로, 숟가락으로 병뚜껑을 땄다. '뻥'하고 경쾌한 소리가 나야 되는 데 그만 피식하고 김새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사람들은 대단하다며 손뼉을 치며 웃어 주었다.

나도 이제 마을의 당당한 일원이 된 것 같다
▲ 모임 나도 이제 마을의 당당한 일원이 된 것 같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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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잖아 김장철이다. 비록 김치를 살망정, 김치를 사는 날 이들을 불러서 돼지고기라도 삶아야겠다. 나도 이제 어엿한 소속이 생긴 기념으로!

* 이번 회로 [천방지축 귀촌일기]연재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김경내의 [천방지축 귀촌일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태그:#가을, #단풍, #거짓말, #이웃,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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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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