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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앞유리창 너머로 바다 위에 뜬 인공섬 간사이 국제공항이 보인다.
 버스 앞유리창 너머로 바다 위에 뜬 인공섬 간사이 국제공항이 보인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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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화요일.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걸어서 5분 거리인 공항버스 터미널 OCAT으로 나갔다. 짐은 작은 기내용 캐리어와 배낭 두 개가 전부라서 단출했다. 우리가 산 제주항공 특가 티켓은 화물을 따로 부치는 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별도의 수화물 없이 모두 들고 타는 짐으로 꾸렸던 것이다.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30분마다 한 대씩 있다. 아침 8시 40분 버스를 탔는데 교통체증 없이 한 시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막상 떠나려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날씨가 좋은지.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바다 한가운데로 멀리 네모 반듯한 인공섬인 간사이 공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탑승수속을 하러 줄을 섰다. 티켓 창구에 붙은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을 위탁수화물로 부치는 것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한참 웃었다. 수화물로 부치지 말라는 것은 폭발물로 취급한다는 거다. 전 세계인이 이용하는 국제공항에서 그걸 보고 있자니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들었다.

11시 50분 비행기니까 아직 시간이 넉넉하다. 할 일은 면세점 구경 뿐. 어느 공항이나 다 있는 똑같은 화장품, 향수, 가방 따위보다 일본 과자며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 구경이 훨씬 재미있다. 일본인들이 스위츠(sweets)라고 부르는 달콤한 간식거리들은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과자, 초콜릿, 케이크……. 온갖 종류의 스위츠를 구경하느라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수제 초콜릿 위에 다양한 사쿠라 문양을 정교하게 그려넣은 솜씨에 눈길이 간다.
 과자, 초콜릿, 케이크……. 온갖 종류의 스위츠를 구경하느라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수제 초콜릿 위에 다양한 사쿠라 문양을 정교하게 그려넣은 솜씨에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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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찌, 카스텔라, 쿠키, 초콜릿 등 온갖 종류의 과자가 다양했는데, 역시 말차로 만든 상품이 많았다. 구경을 하던 끝에 탑승구 앞 작은 가게에서 로이스 말차 초콜릿을 샀다. 갖고 있던 잔돈을 모두 털고, 백엔 남짓한 차액은 신용카드로 해결했다.

일주일간 가방 속에서 짤랑거리던 일본 동전들 모두 안녕. 화이트 초콜릿만 썼는지 말차의 초록빛이 선명한 로이스 초콜릿은 카카오의 품질이 훌륭한 제품이었다. 물론 값도 만만치 않게 비쌌지만.

전날 밤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상반신이 앞으로 고꾸라진 자세로 한 시간 사십분을 날아 금세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전날 다이코노유에서 몸무게를 재본 충격이 가시지 않아 무엇을 먹을 마음은 나지 않았다.

첫 번째 온천욕을 했던 나니와노유와 며칠 뒤 다이코노유에서의 몸무게가 1.3kg이나 차이가 났던 것이다. 교토를 다녀온 날 미나미카타 역에서 밤늦게 먹은 오코노미야끼, 그 다음날 밤에 먹은 피자, 그 다음날 밤에 또 먹은 피자 두 판과 전채요리 등이 만들어준 살이겠지.

공항전철에 이어 지하철 4호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니 4시가 다 되었다. 그제야 냉장고에 있던 된장국을 데워 간단히 식사를 했다. 엄청나게 많이 걷고 엄청나게 피곤했던, 그리고 많은 기억을 남긴 일본 여행이 이렇게 끝났다.

일본은 사실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나라는 아니었다. 거리 모습이나 사람들의 생김새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해외가 아니라 국내의 어느 지역을 여행하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일주일을 보내면서 느낀 점들이 있어 적어본다.

오사카에 대한 감상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오사카성과 천수각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오사카성과 천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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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일으킨 나쁜 놈'으로만 알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도시 오사카. 지금과 같은 대도시 오사카는 16세기 후반 도요토미가 오사카성을 지으며 시작되었다. 오사카 사람들은 도요토미를 존경하고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관서 지방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인 데다, 그로 인해 관서 지방이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갔던 일본 3대 온천이라는 아리마 온센도 도요토미가 자주 와서 유명해진 것이란다.

아리마 마을에 있던 도요토미와 정실부인 네네의 상, 네네가 도요토미의 명복을 빌며 세웠다는 교토의 절 고대사.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자취는 관서 지방 전체에 생생히 남아 있다. 이번 일본 여행은 나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인물을 재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도쿄에는 마을이 880개, 오사카에는 다리가 880개, 교토에는 절이 880개'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과연 오사카에는 정말로 다리가 많았다. 바다에 면한 항구도시로서, 크고 작은 강이 워낙 많다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오사카는 오랜 세월 물자가 모이고 상업이 번성한 항구도시다. 어느 나라든 지역마다 독특한 특색이 있지만, 일본의 기타 지역과는 특히 다른 활기가 넘치는 도시. 오사카에 갔다가 도쿄를 가면 사람들의 태도에서 큰 차이를 느낀다고 한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했다. 젊은이들은 영어를 좀 했지만 중년 이상의 나이든 사람들은 대체로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길을 물을 때는 목적지의 일본어 이름과 '스미마셍', '아리가또'만 알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도쿄가 서울이라면 오사카는 부산이다. 부산 사람들이 서울과는 다른 자신들의 프라이드를 내세우듯이, 오사카 사람들도 자기 지역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향토의식을 갖고 있는 듯했다. 오사카의 방언과 문화를 보전하려는 노력이 엿보인 주택박물관 관람에서 이것을 많이 느꼈다.

호방한 항구도시 오사카. 일본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의외로 화끈한 오사카 사람들의 성격은 한국인과 비슷했다. 미나미카타의 주점에서 본 해산물 경매 장면, 거나하게 취해 낯선 사람과 어깨동무하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종혁씨의 친구 문철씨는 오사카가 일본에서 가장 한국과 비슷한 곳이라서 살기 편하다고 했다. 물론 이곳 역시 일본식 집단주의와 이지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철씨는 아파트의 공동 자전거 보관소에서 가끔 자기 자전거만 훼손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단다.

자전거에 각자 주인의 이름을 쓰기 때문이다. 김(金)이라는 한국 이름이 누군가를 자극한 것일까. 우리가 일본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터진 '시장스시' 사건도 이를 방증한다. '혐한 논란'으로 TV뉴스에 등장할 만큼 이슈가 된 사건이었다.

해외여행을 통해 깨달은 내 안의 욕심

강과 다리가 많은 오사카
 강과 다리가 많은 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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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과 중국, 올해는 일본. 남편과 두 번의 해외여행을 하면서 분명히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내가 과정보다 목적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것. 어디에 있든 그냥 그 순간을 즐기는 그와 반대로, '목적지'가 정해지면 반드시 가서 봐야 하는 사람이 나였다.

그 차이 때문에 우리는 이번 여행 중 두 번이나 다툼을 했다. 여행의 피곤함 탓에 예민해진 신경이 도화선이 되었다. 덕분에 해외여행의 달콤한 추억 못지않게 씁쓸한 기억도 함께 남고 말았다.

물질에 별 욕심이 없는 대신, 다른 것에는 정말 큰 욕심을 가진 사람이 나인지도 모른다. 목적을 달성하고 무언가 성취해야 한다는 집착으로 가득찬 나. 내 안의 그 집착을 외국 여행을 하면서 비로소 보게 되었다. 그전에는 잘 몰랐다.

음식과 '맛집'에 대해 느낀 점

일본은 '맛집'이 따로 없었다. 어느 집을 들어가든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정성껏 조리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길을 가다 아무 집이나 들어가면 십중팔구 냉동실에서 오랫동안 마른 재료에 설탕과 조미료를 듬뿍 친 음식이기 일쑤인 한국과는 완전히 달랐다.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내가 먹은 것은 내 몸의 피와 살, 곧 나 자신이 된다. 적어도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내 입에 기꺼이 넣고 싶은 것을 손님에게 팔아야 한다.

정말 맛있는 피자가 단돈 500엔이었던 'CONA 피자', 고베의 전철역 카페에서 먹은 아침식사, 난바의 숙소 근처 밥집에서 먹은 600엔짜리 정식과 카레라이스. 모두가 믿고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우리도 물론 맛집을 찾아 줄을 선 적이 있었다. 기왕이면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다르지 않으니까. 나중에 또 같은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는 것이 여행,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도톤보리의 CONA 피자에서 와인과 함께 먹은 전채요리. 베이컨으로 감싼 매쉬드 포테이토와 연어샐러드, 쇠고기, 해산물 오일 샐러드. 네 가지가 각각 완전히 다른 요리였고, 모두 주인의 취향과 성의가 느껴지는 음식이었다.
 도톤보리의 CONA 피자에서 와인과 함께 먹은 전채요리. 베이컨으로 감싼 매쉬드 포테이토와 연어샐러드, 쇠고기, 해산물 오일 샐러드. 네 가지가 각각 완전히 다른 요리였고, 모두 주인의 취향과 성의가 느껴지는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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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둘째 날 점심, 텐진바시스지의 유명 맛집인 하루꼬마 스시에서 한 시간을 넘게 줄을 섰다. 음식은 물론 명성대로 맛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잖아도 피곤한 여행 중에 한 시간을 꼬박 서 있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듯 감각이 없어졌다.

드디어 무너지듯 식당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음식이 제대로 씹혀서 위로 들어가는지, 소화는 잘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시장통처럼 북적이는 좁디 좁은 실내. 유리문 밖으로는 여전히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우리가 한시바삐 식사를 마치고 나가주기를 바라는 시선.

하루꼬마 스시의 사이드 메뉴 조개 된장국(500엔). 운좋게 옆 손님이 먹는 것을 보고 시켰는데, 국물 맛이며 스시와의 궁합이 최고였다. 하루꼬마 스시에서 식사를 한다면 꼭 먹어볼 만하다.
 하루꼬마 스시의 사이드 메뉴 조개 된장국(500엔). 운좋게 옆 손님이 먹는 것을 보고 시켰는데, 국물 맛이며 스시와의 궁합이 최고였다. 하루꼬마 스시에서 식사를 한다면 꼭 먹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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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분위기에서 즐겁게 밥을 먹는 것도 식사의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일본에서는 결코 인터넷이나 블로그에 나오는 유명 맛집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아무 집이나 들어가면 된다.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집이라면 어디든 맛집이니까. 

맛집으로 이름난 집이 물론 맛이야 있겠지만, 그 음식에 손님에 대한 마음과 정성이 담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끔찍하게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일일이 정성을 다하겠는가. 그저 일을 처리하는 것 이상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것처럼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어내고, 그날의 일거리(사람)들이 얼른 치고 빠져주기만을 바라게 되지 않을까. 결국 도톤보리에서는 유명 맛집인 이치란 라멘을 그냥 지나쳤다. 그 앞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대기표를 들고, 목이 빠져라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atree12fly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일본여행, #오사카여행, #요지야카페, #간사이공항, #오사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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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산업화된 시스템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꿈꿉니다. 민중의소리, 월간 말 기자, 농정신문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한국위원회 국제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계간지 선구자(김상진기념사업회 발행) 편집장, 식량닷컴 객원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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