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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동네에 자주 드나드는 단골책방 없냐"고 물었더니 "누가 요즘 책방에 가느냐"고 면박을 줍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책방은 계속 생겨나니까요. 심지어 심야책방, 책맥(책+맥주), 낭송회 등등의 문화도 선도해 만들어갑니다. 여러분의 취향저격 책방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10월 30일,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잠깐 불광문고에 들렀다. 내게 가장 특별한 서점이다. 불광문고와 함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우종영)와 <야생초 편지>(황대권), 그리고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최순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한다.

1990년대 말부터 몇 년 동안 사흘이 멀다 하고 가던 곳이다. 즐겨 찾는 코너에 어떤 책이 새로 꽂혔는가 쉽게 알 정도로 드나들곤 했다. 많은 책을 샀음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 책들이 대표 책인양 불광문고와 함께 생각나곤 하는 것은 소설이나 수필과 같은 문학작품을 주로 읽던 내게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즐거움에 빠지게 한 책들이기 때문이다.

이중 두 권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한 '느낌표'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그 프로그램이 나오기 전에 이미 특별한 즐거움을 맛 본 책이었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와 <야생초 편지>는 서점에 도착한 채로 묶여 있는 상태에서 구매, 하루 종일 장사하고도 피곤한 줄 모르고 쪽잠을 자며 읽은 추억이 있는 책이기도 하다.

불광문고는 1996년에 문을 열었다. 그동안 자주 이용해왔던 동네책방이 문을 닫아버려 허탈하던 때 열었기 때문에 내게 더욱 절실한 곳, 특별한 나의 책방이 되었다.

불광문고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어린이책이란다.
 불광문고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어린이책이란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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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주택이 많은 불광문고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골고루 많이 찾는다고.
 주변에 주택이 많은 불광문고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골고루 많이 찾는다고.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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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문고를 만나기 전에 드나들던 동네책방은 '삼송서점'이었다. 1990년대 중반 무렵까지 우리나라 곳곳에 흔했던 문방구 한쪽에 참고서나 문제지, <샘터>와 같은 잡지나 여성지, 단행본 약간을 진열해놓고 파는 그런 문방구 겸 서점이었다.

그런 서점에는 대개 책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과 달리 '삼송서점'에는 책이 문구보다 더 많았다(그때 책과는 상관없이 '서점' 또는 '서림'이란 이름을 단 문구점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추억 속의 '삼송서점'과의 만남을 떠올린다. 하루하루가 힘든 때였다. 화재로 신혼 살림이 모두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고, 교통사고의 악몽과 몸의 고통도 다 털어내지 못한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시부모와 함께 살자고 이사 들어간 그 며칠 후라 집도 마음 편하지 못할 때였다. 그 무렵 찬거리를 사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삼송서점'이었다.

백일이 갓 지난 첫째를 업고 허구한 날 드나들었다. 책방에 드나든 지 일년 쯤 지나 읽은 책들을 세어보니 152권. 동학혁명 100주년 무렵이었다. 당시 동학혁명과 전봉준을 재조명하는 시각의 책들이 많이 나왔다. <전봉준과 갑오농민전쟁>(우윤)은 매우 인상 깊게 읽은 책이다. <양식과 오만>(신봉승)도 당시 인상 깊게 읽은 책 중 하나다.

책방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남편과 아이가 잠든 깊은 밤 책 읽는 시간들이 늘었는데, 그러면서 결혼과 동시에 힘든 일이 한꺼번에 밀려와 혼란스럽고 고통스럽던 내 삶은 안정을 얻기 시작했다.

그처럼 힘들었던 때 만났으니 내게 무척 소중한 공간이었음은 당연하다. 그런 공간이, 몇 년 동안 오로지 드나들던 책방이 사라져버렸을 때는 상실감이 너무 컸다. 하필 둘째를 낳고 몸조리하며 한동안 가지 못 했을 때 문을 닫아버리고 주인까지 바뀌고 말아 더욱 허탈했다. 다음에 사야지 해놓고 미처 사지 못한 책들을 통째로 뺏긴 것 같아 더 속상한 나날이었다. 그 무렵 문을 연 것이 불광문고. 처음 가던 날 너무나 설렜고, 원하지 않게 이별한 사람을 만난듯 반가웠다.

불광문고의 '작은출판사, 색깔있는 책' 코너,반가웠다.
 불광문고의 '작은출판사, 색깔있는 책' 코너,반가웠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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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별로, 그리고 매달 테마를 정해 진열하고 있습니다. 가을 특집으로 '느낌표 선정도서'와 '시집'을 진열해봤어요. (어떤 기준으로 시집을 선정했는가? 물었더니) 가을하면 낙엽과 함께 연상되는 것은 '바람'이잖아요. 여기에 진열된 모든 시집에 바람에 관한 시가 모두 들어있어요. 이전에는 일본 문제가 주제였습니다. 이처럼 아래 꽂아둠으로써 이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시집 코너를 없애는 서점들이 많았어요. 우리는 계속 있었지만요. 시집을 특별히 아껴서가 아니라... 책이 워낙 팔리지 않으니 한편으론 이해되기도 하나 객관성을 잃는 것 같아 아쉽더군요. 다행히 요즘 시집을 다시 진열하는 서점들이 늘고 있습니다."(불광문고 관계자)

불광문고에서는 우직하고 묵묵하게 자기 일을 올곧게 해내는 소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곤 한다. 불광문고가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불광문고 주변 지역은 문화 환경이 열악했다. 이런 지역민들을 위해 서점 측은 지난날 나름의 여러 행사들을 진행하곤 했다.

지금은 매달 둘째, 넷째 주에 초등학생 대상 동화책 읽기 행사만 진행하고 있다 하길래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동안 주변에 책읽기 관련 문화 시설이나 단체가 많이 늘어서"라며 웃는다. 미리 신청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행사다(서점 게시판 참고). 덧붙이면 불광문고는 초기부터 2016년 현재까지 구매금액의 10% 쿠폰을 발행, 고객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아, 이참에 불광문고와 함께 10여 년 전부터 자주 이용해 온 연신내문고도 소개해야겠다.

아침이면 출근하기 바쁘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할 일 많아 늦은 밤 내려앉는 눈꺼풀을 추켜올리며 책을 읽으며 하루하루를 빠듯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바쁠 때일수록 일부러 서점에는 자주 가려고 한다. 진열된 책을 훑는 것만으로도 '어떤 책들이 출판되는가'부터 나아가 세상의 흐름과 변화 등을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연신내문고는 2000년 10월 불광문고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문을 열었다. 불광문고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문을 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5년 정도가 지날 때까지 이용하지 않았다. 뭣보다 낯선 진열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같은 책을 팔 것인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불광문고보다 가까운데도 지나치곤 했다.

이처럼 외면했던 연신내문고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연신내문고 인근의 로데오거리 음식점에서 가족과 저녁을 먹는 일이 늘어나면서 부터다. 두 아이의 엄마로 가게 일까지 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아이들과 한 시간 정도 먼저 나가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며 아빠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미 불광문고에서 책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연신내문고에서도 필요한 책들을 스스로 찾아내 읽거나 사 달라고 했다. 아이들과 가는 날이 많아지면서 나 혼자 가는 날도 많아졌다. 건너편에 있는 시장에 장보러 나가서 잠깐 들르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러 갔다 오는 길에도 잠깐 들러 책을 만나는 등 걸핏하면 드나들곤 했다.

연신내문고 베스트셀러 할인코너.
 연신내문고 베스트셀러 할인코너.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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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내문고 주변에 학교가 많은 때문에 교과서와 참고서가 가장 많이 팔리고 그 다음에는 문학분야의 책이 가장 많이 팔린단다.
 연신내문고 주변에 학교가 많은 때문에 교과서와 참고서가 가장 많이 팔리고 그 다음에는 문학분야의 책이 가장 많이 팔린단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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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내문고는 불광문고처럼 특별한 사연이 없다. 그럼에도 자주 가는 이유는 불광문고에 없는 책이나, 미처 만나지 못한 책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열에 따라 눈에 띄는 책, 만나는 책이 달라지니 말이다. 불광문고보다 집과 가까운지라 들락날락하는 길에 들르기 쉽고, 급하게 찾아볼 책이 있을 때 편해 고마움을 느끼며 찾는 곳이기도 하다.

2016년 가을 연신내문고에서는 베스트셀러 할인전을 진행하고 있다. 소설, 수필, 경제, 인문 4개 분야 10위까지의 책들이 대상. 매달 대상도서를 바꿀 계획이며 당분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덧붙이면 연신내문고에서 책을 구매하면 10%를 적립해준다. 

살면서 항상 감사하는 것 중 하나는 책을 가까이 하며 살아갈 수 있음이다. 내게 주어진 이 삶의 특혜를 생각하노라면 안타까움과 함께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1년에 책 한 권 읽지 못하고 산다는 주변 사람들이다. 지난날 나 못지않게 책을 많이 읽었으나 결혼이나 출산과 함께 책을 놓았고 지금까지 책을 잡지 못하고 사는 형제들이나 친구들은 특히 더 안타깝다.

도서관도 많지 않고, 인터넷도 없어 책 정보도, 책도 귀했던 1990년대 중반, 종로서적이나 교보문고 등이 있었으나 백일이 갓 지난 아기를 업고 가기에는 너무나 멀고 복잡해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그때, 그 책방들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나도 어쩌면 내가 안타까워하는 그들처럼 차츰차츰 책을 놓다가 영영 놓았을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악재가 연달아 일어나 견디기도, 먹고 살기에도 너무 팍팍했던 지난날을 견디게 해준 것은 책이었다. 그토록 힘들었던 지난날, 그리고 지금 그 책들을 필요한 만큼 만나게 해준(해주는) 불광문고와 연신내문고도 내게는 잊어서는 안 되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오랫동안 없어지지 말기를 바라는 그런 나의 책방들이다.


태그:#동네책방, #책읽기, #불광문고, #연신내문고, #독서의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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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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