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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학년도 학생수련회를 앞두고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다름 아닌, "선생님, 극기훈련 받습니까?"라는 질문이었다. 나누어준 안내서에 2박 3일간의 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데, 어디를 보아도 군대식 훈련을 연상할 만한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수련회=극기 훈련'이라는 등식이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내가 학창시절 때 다녀왔던 수련회를 생각한다면 그러한 등식이 성립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학생들의 인격에 대해 관심이 기울여지고, 복종이나 순종의 미덕을 가르치기보다는 적응력과 사고력을 길러주기 위해 고민하는 시대가 도래 하면서 수련회의 풍경 또한 조금씩 달라져왔던 것 같다.

수련활동 중 점심을 먹기 위해 아이들이 삼삼오오 식생활관으로 가고있다.
▲ 전북학생해양수련원과 아이들 수련활동 중 점심을 먹기 위해 아이들이 삼삼오오 식생활관으로 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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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학생해양수련원'의 프로그램은 흔히 우리가 알던 극기 훈련 식의 프로그램과는 거리가 멀다. 수상 안전교육, 바다에서 생존하는 방법, 그 외의 다양한 대체 프로그램으로 장구, 컵쌓기 등 학생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실제 체험을 통해 함께 배우게 된다. 그리고 교사들 또한 모든 과정에서 학생들과 함께 배우고 익히며 못 잊을 추억거리를 쌓아간다.

해양 관련 학교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세월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명백히 아직 진행 중인 사건이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한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할 사건이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어른들의 모습도, 제대로 된 사후조치 따위는 발견할 수 없었던 정부의 행태도 두고두고 씻을 수 없는 역사적, 세계적 치욕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에 더하여 교사인 나로서는 그 뒤에 보여주었던 한국 교육에 대한 자성 및 비판의 목소리 또한 정말 어이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교육이 자라라는 아이들을 순종적으로 만들었고 그것이 이 참사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뜻 들으면 솔깃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떠한 재난 상황이든, 콘트롤 타워가 시키는 대로 할 때 안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바다 래프팅을 위해 준비운동 및 안전교육을 받고있다.
▲ 래프팅 준비중 바다 래프팅을 위해 준비운동 및 안전교육을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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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습하고 있다.
▲ 심폐소생술 아이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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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습하고 있다.
▲ 심폐소생술 아이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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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가 있었던 해 수많은 학교의 수학여행이 취소되었다. 1박 2일의 짧은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오더라도 교사의 사전답사를 통해 안전점검 및 기타 점검을 반드시 하도록 지침이 바뀌었으며 물과 관련된 체험활동이나 수련활동은 특히 그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하지만 이곳 해양수련원이 계속적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수련회 장소로 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해양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 및 생존법을 가르치며 그 과정에서 안전을 소홀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장 및 교관들과 협동하여 교사들 또한 학생들의 활동 장소 및 숙소에서 항상 긴장을 놓지 않고 몇박 몇일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다소 활발한 학생들이 많은 학교의 경우에는 선생님들이 밤잠을 설치며 로비를 지키는 경우도 있다.

수련활동 하루 전 많은 비가 내려서 폭포가 만들어졌다.
▲ 수련원과 폭포 수련활동 하루 전 많은 비가 내려서 폭포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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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편한 시간은 아니다. 상당한 체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온 지금 그 시간이 그리운 이유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호연지기를 기르고 교우들과 소소한 말들을 나누는 가운데, 그들의 선생님이자 인생을 함께 살아나가는 한 인간으로서 그들과 함께 훈훈하고 보람찬 시간을 보냈다는 뿌듯함 때문일 것이다.

2박 3일의 시간 동안 우리 반 아이들은 단연코 빛이 났다. 다소 엉뚱하긴 하지만 그 비결은 바로 신발이었다. 수련회를 가기 전 수련원을 통해 바다래프팅을 배우기 위해 값싸고 편리한 고무 만능화를 준비해오라는 사전 안내를 받았다. 만능화를 이미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니 생각보다 손을 많이 들지 않았다. 그 순간, 아이들에게 반짝이는 제안을 했다.

"얘들아. 얘들아!! 우리 색깔 맞출까?"

가뜩이나 집을 떠나 외박을 할 생각에 들떠있던 아이들의 눈이 더 동그래졌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네!"를 외쳤고 나는 그 즉시 교탁의 컴퓨터를 켜서 만능화를 검색했다.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사이트로 들어갔고 세 가지의 색상 선택지를 놓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자. 평범한 하얀색이 있는데 너무 평범하구요. 파란색과 핑크색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단체로 맞추는 것이니 파란색이 낫겠지요?"

당연히 파란색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정말 뜻밖이었다.

"핑크요!"
"남자는 핑크죠. 쌤!"

나를 포함하여 반의 모든 구성원들의 마음은 분홍빛 기대감으로 물들었고, 선택받지 못한 파란색은 천진난만하면서도 왁자지껄한 우리의 푸른빛 웃음으로 대신 승화되었다.

수련활동 내내 우리 반은 핑크색 만능화를 자랑스럽게 신고 수련원을 누볐다. 작은 소품이었지만 핑크색 만능화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가졌다는 작은 구슬 같은 자부심과 더불어 급우들끼리의 동질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러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우리 반은 3일 내내 가장 빨리 집결하는 반이 되었고 그것은 또한 아이들에게 작은 성취감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반 아이들의 신발들. 핑크색 사이의 파란색은 사이즈가 커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 우리반 신발들 우리반 아이들의 신발들. 핑크색 사이의 파란색은 사이즈가 커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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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의 일정 동안 굵직한 프로그램은 바다래프팅, 생존수영법, 레크리에이션 이렇게 세 개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열두 개 학급을 둘로 나누어 바다래프팅과 생존수영을 번갈아가면서 진행했고 레크리에이션은 두 번째 날 밤 진행되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학급 학생들과 함께했는데 특히 나는 아이들과 동성이었기 때문에 수영장과 바다에서도 아이들과 온전히 같이 있을 수 있었다.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 미리 배에 오르내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 바다래프팅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 미리 배에 오르내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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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파서 바다 래프팅을 못하게 된 학생이 그늘에서 학우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다.
▲ 관람객 몸이 아파서 바다 래프팅을 못하게 된 학생이 그늘에서 학우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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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수영장에서의 생존수영은 정말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단 두 시간 만에 아이들은 최소한의 요령으로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배웠다. 운동신경이 부족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거의 모두가 동작을 소화할 만큼 어렵지 않은 방법이었다.

우리는 바다에서 배가 침몰할 때, 비행기가 바다 위로 불시착 했을 때 등등 우리가 살면서 어쩌면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배웠다. 아이들이 곧잘 따라했기 때문에 꿀 같은 자유시간도 잠시 주어졌는데, 어릴 때부터 수영을 배웠던 터라 혈기 넘치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안전하게 장난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는 동안 금새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다.
▲ 아이들과 노을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는 동안 금새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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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모를 머리에 쓰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채 열심히 랩을 하고 있다.
▲ 장기자랑 중 수영모를 머리에 쓰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채 열심히 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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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공연장에 모여앉아 사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 레크리에이션 야외 공연장에 모여앉아 사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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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의 꽃은 단연 레크리에이션이 아닐까 싶다. 이틀 동안 작은 사고 하나 없이 성실하게 모든 과정을 이수한 아이들은 몇 주 전부터 준비한 노래와 춤 등을 뽐내었고 사회자의 진행 하에 사제 간의 역할극 등 선생님과의 특별한 추억을 쌓기도 했다.

평소에는 참 얌전하고 선비 같던 아이들도 이 날 만큼은 몸 속 어딘가에 꼭꼭 숨겨두었던 힘과 끼를 놀라우리만큼 힘차게 발산했다. 그러한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자니 가을 저녁의 쌀쌀함은 어느덧 사라지고 아이들의 훈훈한 열기가 들숨처럼 내 안으로 들어오는 듯 했고, 무리 속으로 뛰어가 우리 반 녀석들과 마지막 발광어린 시간을 함께했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반별로 작은 원들을 만들어서 끼를 발산할 준비를 하고 있다.
▲ 캠프파이어 모닥불을 중심으로 반별로 작은 원들을 만들어서 끼를 발산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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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째 아침이 밝았고 퇴소식을 순조롭게 마친 후 우리는 모두 추모탑 앞에 함께 섰다. 물에 빠진 아이를 건져내고 자신은 미처 구해내지 못한 의로운 고등학생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탑이다.

오래 지난 일이지만 그 사건과 추모탑의 의의가 우리의 피부에 와 닿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우리 아이들의 직속 선배인 전주고 재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밤 밤하늘을 찢어놓을 듯이 야외 공연장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던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엄숙한 모습으로 묵념을 했다.

추모탑 앞에서 전교 회장과 부회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 헌화 추모탑 앞에서 전교 회장과 부회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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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 숭고한 넋을 엄숙한 자세로 기리고 있다.
▲ 추모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 숭고한 넋을 엄숙한 자세로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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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원을 나서기 직전 나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곳에서, 이런 아이들과 함께라면 나 혼자서 400명을 인솔해서 한 달을 지내다 오라고 해도 참 즐겁겠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입시의 벽과 학교의 울타리에 가려진 아이들의 천진한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 2박3일의 짧은 시간이지만 앞날의 막막함을 내려놓고 현재에 집중하여 그 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는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아이들의 인생 또한 이래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용도는 미래를 위한 준비일 수 있지만 현재의 본질은 지금 이 순간을 값지게 보내는 것일 테니 말이다.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은 사진. 전북학생해양수련원 앞에 위치한 바다이다. 가운데의 작은 섬은 '솔섬'으로 불리운다.
▲ 솔섬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은 사진. 전북학생해양수련원 앞에 위치한 바다이다. 가운데의 작은 섬은 '솔섬'으로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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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드 필름. 솔섬 뒤로 막 해가 넘어갔다. 밋밋할 수 있었던 맑은 하늘에 구름이 수를 놓았다.
▲ 솔섬의 노을 슬라이드 필름. 솔섬 뒤로 막 해가 넘어갔다. 밋밋할 수 있었던 맑은 하늘에 구름이 수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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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부안해양수련원, #학생수련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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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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