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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8일 만난 지허스님이 차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스님은 '자생차 지킴이'로 통한다.
 지난 10월 28일 만난 지허스님이 차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스님은 '자생차 지킴이'로 통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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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쁠수록 돌아가라고. 생각하는 여유를 갖자는 의미죠. 정(靜)이 있어야 동(動)이 있는 거고요. 부지런히 활동하려면 여유를 가져야죠. 차(茶)가 그런 겁니다. 여유지요. 집에서도 가족끼리 함께 차 마시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차를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는 아주 건전하고 미래 지향적이겠죠. 차가 일상화되면 지역과 나라의 격도 달라질 겁니다."

지난 10월 28일 만난 지허스님의 차 예찬이다.

지허스님은 금둔사에 살고 있다. 금둔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금전산(668m)이 품고 있는 절집이다. 백제 때 처음 지어졌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사라진 것을 지허스님이 복원했다. 1980년대 초였다. 해마다 섣달에 꽃을 피우는 매화, 납월매가 있는 절집이다.

스님은 이 절집에서 반농반선하고 있다. 차나무를 재배하며, 자생차를 만들고 있다. 우리 자생차의 명맥을 이으며 '자생차 지킴이'로 살고 있다. 그럼에도 차를 대하는 스님의 분위기가 비교적 자유스럽다. 격식도 까다롭지 않다. 차를 마시는 예절, 다도(茶道)의 부담에서 벗어난다. 차 맛이 더 좋다.

지허스님이 사는 금둔사 일주문 전경.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사라진 것을 지허스님이 복원한 절집이다.
 지허스님이 사는 금둔사 일주문 전경.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사라진 것을 지허스님이 복원한 절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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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스님이 차밭에서 차나무의 가지를 내려주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금전산 자락 차밭에서다.
 지허스님이 차밭에서 차나무의 가지를 내려주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금전산 자락 차밭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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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라는 게 일본식이에요. 형식에 많이 치우치죠. 우리의 다도는 형식을 따지지 않았어요. 눈으로는 색을 보고, 코로는 향을 맡고, 입으로 음미를 했죠. 차를 마시는데 무슨, 도가 필요해요? 부담 없이 쉽게, 편하게 마시면 되는 것을…. 누워서만 안 마시면 되지요."

차를 대하는 지허스님의 예의다. 스님은 '차를 정성껏 만들고, 보관 잘 하고, 잘 마시면 된다'는 초의선사의 얘기도 들려준다.

금둔사 삼층석탑과 석불비상. 지허스님의 피와 땀이 밴 유물이다. 보물로 지정돼 있다.
 금둔사 삼층석탑과 석불비상. 지허스님의 피와 땀이 밴 유물이다. 보물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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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스님이 가꾸고 있는 자생 차밭. 스님은 차밭에서 일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지허스님이 가꾸고 있는 자생 차밭. 스님은 차밭에서 일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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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스님이 사는 금둔사는 자생차로 이름난 절집이다. 절집 주변에 자생 차밭 6600㎡가 있다. 차나무가 자란 지 700년도 넘었다. 절집에서 조금 떨어진 산자락에도 차밭 3만3000㎡가 있다. 20년 전부터 스님이 가꿔온 차밭이다. 모두 자생 차나무다.

"우리 재래종이에요. 우리나라 차나무의 85%가 일본 야부기다종이고, 10%는 비료 등에 의해 개량된 자생 차나무죠. 순수하게 자생 차나무는 5% 남짓 돼요. 금둔사, 선암사 같은 절집을 중심으로 분포돼 있죠."

야생은 한 마디로 방치해 놓은 차밭이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다. 반면 자생은 차나무가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수확량을 높이기 위한 손길이 아니다. 차나무가 잘 자라도록 거들어준다. 금둔사의 차밭은 자생에 속한다는 게 지허스님의 얘기다.

지허스님이 가꿔놓은 자생 차밭. 금둔사에서 가까운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반농반선하는 스님의 일터이기도 하다.
 지허스님이 가꿔놓은 자생 차밭. 금둔사에서 가까운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반농반선하는 스님의 일터이기도 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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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스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금둔사 주변의 차나무. 700년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허스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금둔사 주변의 차나무. 700년 역사를 지니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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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보다 음지가 더 많아야 해요. 그늘 7에 햇볕 3, 음칠양삼의 환경에서 차나무가 잘 자라요. 우리 차밭에 은행나무, 밤나무,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가 많은데. 차밭에는 활엽수가 좋아요. 햇볕이 강할 땐 넓은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고, 바람이 불면 햇볕을 통과시켜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거든요."

스님이 말하는 좋은 차밭의 조건이다.

차밭의 풀도 중요하다. 차나무 아래에 풀이 있어야 벌레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벌레들이 찻잎 대신 부드러운 풀을 먹는다. 그렇다고 잡초 무성하면 벌레들이 몰려든다. 차나무와 풀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

활짝 핀 차나무 꽃. 이 꽃이 진 자리에 내년 이맘때 열매가 달린다. 차나무는 꽃과 열매가 같은 시기에 달린다.
 활짝 핀 차나무 꽃. 이 꽃이 진 자리에 내년 이맘때 열매가 달린다. 차나무는 꽃과 열매가 같은 시기에 달린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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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에서 일하던 지허스님이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쉬며 차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차밭에서 일하던 지허스님이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쉬며 차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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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스님이 자생차를 다루기 시작한 건 1955년, 선암사에서 행자 생활을 하면서 밥을 짓던 시절이다. 힘에 부쳐하는 모습을 본 주지스님이 선방에서 차 내는 일을 시켰다. 그때 자생차를 배웠다. 지금도 날마다 차밭 고랑을 정리하고, 가지를 내려주는 일을 행복으로 여기고 있다. 차밭에서 일하다보면 끼니를 잊고 사는 게 다반사라고.

자생차는 찻잎을 일일이 손으로 비비고 덖어서 만든다. 데쳐서 말리는 일본차와 다르다. 차를 덖는 일은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펴 무쇠솥을 달구는 것으로 시작된다. 장작불이 좋은 차의 첫걸음인 셈이다. 달궈진 솥에 찻잎을 넣고 고루 뒤집어 가며 덖는다. 찻잎이 어느 정도 익으면 멍석에 펼쳐놓고 비비다가 다시 솥에 넣는다. 이 과정을 아홉 번에서 열두 번까지 되풀이한다. 옛 방식 그대로다.

이렇게 덖은 찻잎을 항아리에 넣고 한 달 동안 숙성시켰다가 다시 가마솥에 넣고 볶는다. 떫은맛을 없애고 구수한 맛을 살리는 과정이다. 그래야 달고 쓰고 떫고 시고 짠맛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다른 차와 비교할 수 없는 맛을 지닌다. 여러 번 우려내도 맛이 한결같은 이유다.

지허스님이 절집을 찾은 여행객과 차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저녁이다.
 지허스님이 절집을 찾은 여행객과 차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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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허스님이 만든 자생차. 스님은 절집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이 차 한 잔을 건넨다.
 지허스님이 만든 자생차. 스님은 절집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이 차 한 잔을 건넨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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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만나면 차를 마셨어요. 편하게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죠. 차가 융화와 소통의 매개체였어요. 불교에서는 차가 생활입니다. 수행이기도 하고요. 차를 마시며 사는 생활이 정말 행복해요. 찾아오는 분들에게, 이렇게 차 한 잔 내어주며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도 베풂 아니겠어요?"

지허스님이 차를 따라주며 한 말이다. 오고가는 대화도 자생차의 구수한 맛만큼이나 부드럽다. 정겹다. 차 한 잔으로 대화의 격도 달라진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족이나 동료들끼리 차를 함께 마시는 게 일상이 되면 좋겠다는 스님의 말에 다시 한 번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허스님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앉아 쉬면서 차밭을 바라보고 있다. 이 차밭은 스님이 20여 년째 가꾸고 있다.
 지허스님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앉아 쉬면서 차밭을 바라보고 있다. 이 차밭은 스님이 20여 년째 가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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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지허스님, #금둔사, #자생차, #차밭, #차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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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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