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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때 해야 하는 일

최근 마우스 작업을 많이 했더니 손목이 시큰하다. 잔병치레 전문가로서 경험상 근육이나 힘줄에 생긴 통증에 의사들이 추천하는 가장 좋은 치료법은 휴식이다. 별다른 치료행위를 하지 않아도 자가 치유능력 덕에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 통증과 치유 사이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의무가 주어진다.

만약 그 의무가 불만이라면 다른 통증을 유발하는 방법도 있다. 삐거나 쑤시는 부위에 파스를 붙이면 뜨거워지거나 혹은 시원해지는데 이 틈에 통증을 느끼는 뇌의 주의가 분산된다. 따뜻해지거나 시원해지니 낫는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통증만 덜 느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의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개헌이라는 '정치적 파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나와라_최순실'과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백남기 농민 사건 사죄를 촉구하는 손피켓을 든 김종훈 무소속 의원 앞을 지나고 있다.
▲ '#나와라_최순실' 피켓앞 지나는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나와라_최순실'과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백남기 농민 사건 사죄를 촉구하는 손피켓을 든 김종훈 무소속 의원 앞을 지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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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국회에서 대통령의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이 있었다. 단연 핵심은 '개헌'이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 하필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개헌 논의를 들고 나오셨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향후 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시기적으로도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하게 됐다는 설명에서 이내 수긍했다.

남은 1년 4개월의 임기 동안 국민들이 받는 지금의 통증은 느껴지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남다른 배려가 물씬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파스'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헌법을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권력구조,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지금 우리가 시급히 손질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국민이 참여하는 기본권 분야다. 헌법 제32조 1항의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라는 구절을 보자. 아무리 잘 봐줘도 헌법에 명시된 고용증진과 적정임금 보장에 대한 국가의 의무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여전히 햄버거 세트하나 사먹기 고민되는 최저임금은 어떤가. 뒤이은 4항의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구절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나.

그뿐만 아니다. 어느새 후퇴해버린 민주주의의 복원이나 인권 보장을 위한 노력, 극심한 양극화와 사회적 차별의 해소, 신체의 자유 보장, 집회 및 결사의 자유 강화, 개인정보보호 강화, 공정한 기회의 보장 등 이 모든 '기본권'의 제대로 된 수정이 필요하다.

인정하기 싫지만 현실이다. 이런 문제의식들이 개헌 논의의 제일 첫 머리에 나와야 정상이지만 오늘 대통령의 연설은 철저히 권력구조 개편이 모든 문제의 중심이었다. 그래서는 곤란하지만 어지러운 현재의 상황을 덮고 내년 대선정국까지 철저히 계산한 답변으로 보면 이해는 간다.

예상되는 반대 자극과 진통효과는 충실하다. 당장 내일부터 권력구조 개편에 관심 있는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기본권 향상에 목마른 국민은 국민대로 치열하게 겪어야 하는 새로운 통증이 생겼다.

새로운 통증의 결과는 내년 대선국면에서 다양하면서 적극적인 모양새로 표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07년, 2012년과 달리 딱히 대세론이 보이지 않는 대선의 판세를 더욱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인다. 후보들에겐 헌법에 담아야 할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꿰뚫어보고 어떻게 유권자들에게 어필해야 할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과제가 늘었다.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한 반대 자극제, 개헌은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순실 모녀는 그렇게 사라지면 그만이다.

지켜져야 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의무

근육과 힘줄 통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의무가 주어지는 데는 그 인과관계에 있다. 무리한 사용이 원인인 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의무가 통증의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는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권력형 비리에 심각한 염증을 느끼고 있는 국민들에게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여기에도 원인 제거가 필요하다.

물론 대통령이 언급했던 통치구조에 대한 개헌이 아예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의무가 먼저다. 지난 30년간 사회 변화의 폭만큼 국민의 교육수준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역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국민들의 모호한 직관만큼 선거에서 강력한 힘은 없는 법이다.

덧붙이는 글 | 상수동 전략그룹 홈페이지에 중복 게제될 예정입니다.



태그:#개헌, #기본권, #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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