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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로 가는 교외선 전철역. 나무로 만든 오래된 역사가 정겹다.
 교토로 가는 교외선 전철역. 나무로 만든 오래된 역사가 정겹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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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금요일. 오늘 하루는 교토 여행. 어제까지는 오사카 주유패스로 돌아다니고, 오늘은 교토를 왕복할 수 있는 한큐패스를 이용했다. 일본은 대중교통이 민영화되어 있어서 전철도 사기업이 운영한다. 한큐패스로는 한큐 전철만 탈 수 있고, 한신패스로는 한신 전철만 탈 수 있다.

한큐와 한신은 각각 철도회사 이름이다. 철도뿐 아니라 전기, 백화점, 호텔 체인 등을 소유한 오사카 지방의 대기업인데 최근 한큐에서 한신을 합병했다고 한다.

전철을 타고 교외로 나가니 기차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오사카에서 교토는 특급열차를 타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릴 정도로 가깝다. 특급열차를 타고 정거장을 몇 개씩 쉭쉭 지나치면서 금세 교토에 도착했다. 우리는 교토 교외에 있는 아라시야마 대나무숲을 먼저 보기로 했으므로 도심지의 가와라마치 역에서 아라시야마 행 전철로 갈아탔다.

▲ 일본 전철은 맨 앞 칸 유리창을 통해 운전석과 밖이 훤히 내다보인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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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로 나갈수록 그야말로 시골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베란다에 빨래가 걸린 나지막한 2층짜리 목조 가옥들. 하지만 하나같이 집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발이 쳐져 있다. 교외선은 전차도 훨씬 오래된 것이다. 꼬불꼬불한 선이 달린 전화기가 설치된 운전석. 그 앞에는 핸들을 잡아당기면 전철의 속도가 올라가는 오래된 계기판이 보였다.

일본 전철의 맨 앞 칸과 뒤 칸에서는 유리창을 통해 운전석과 그 너머 차창 밖 풍경을 내다볼 수 있다. 우리는 교토와 고베 등 교외로 나갈 때는 꼭 맨 앞자리에 앉아 차창 밖으로 전차가 달리는 광경을 신나게 즐겼다. 아라시야마가 가까워질수록 전철역도 시골 기차역다운 분위기를 풍겼다. 수십 년 된 듯한 등이 매달린 삭아가는 나무 지붕 아래, 역시 나무로 만들어진 간이 역사. 그 아래 나무 벤치에 앉아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자그마한 마을들을 여러 개 지나 마침내 한큐 아라시야마 역에 도착했다. 역사는 마찬가지로 오래되었지만 바깥의 널찍한 광장은 깔끔하게 단장된 모습이다. 광장에 나오자마자 운좋게도 기모노에 진짜 나무 게다를 신고 옛날 대나무 우산을 든 승려들을 만났다. 근처 절에서 나오셨는지 줄지어 바삐 걸어간다.

길이 151미터의 나무다리 도게츠교(渡月橋)는 유서 깊은 다리이자 이 일대의 관광포인트다.
 길이 151미터의 나무다리 도게츠교(渡月橋)는 유서 깊은 다리이자 이 일대의 관광포인트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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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50미터가 넘는다는 유명한 나무 다리 도게츠교로 가는 길이 다 공원이다.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뜻의 도월교(渡月橋)라는 이름이 참 운치가 있다. 이 지역은 경관이 아름다워서 옛날 교토 상류층의 유원지였다고 한다.

넓은 강 가츠라가와가 흐르는 탁 트인 전망이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밤새 많은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 날이 개어 하늘이 파랗다. 대신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좁은 개울은 누런 물이 무서운 기세로 흐른다. 공원 벤치에 앉아 전날 밤 숙소 근처 크로바 마트에서 산 바나나와 회초밥 도시락으로 아침 요기를 했다.

▲ 밤새 내린 폭우로 엄청나게 물이 불었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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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관광지답게 대나무숲으로 가는 길가엔 온통 상점이다. 교토는 오늘 하루뿐이라 빡빡한 일정을 짜 두었는데, 신기한 물건이며 먹을 것을 구경하느라 빨리 갈 수가 없었다. 교토 특산품이라는 갖가지 쯔게모노(단무지 같은 채소 절임)와 절인 벚나무 잎으로 떡을 감싼 사쿠라 모찌(벚나무 잎의 묘한 향기가 매력적이었다), 센베이, 밥에 뿌려먹는 후리가케 등을 맛보았다. 하나같이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든 것들이었다.

결국 채소와 대나무잎이 들어갔다는 고로케 하나와 두부 도넛, 손가락 길이의 센베이를 사먹었다. 카페도 많았는데 대부분 말차를 주력 상품으로 팔고 있었다. 말차 가루를 넣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도 아주 많았다.

신기해서 눈여겨보았던 오이 쯔게모노는 결국 나중에 은각사 앞 가게에서 사먹고야 말았다. 통째로 소금물에 절인 오이에 나무젓가락을 꼽아서 핫바처럼 들고 먹는 것이었는데 교토 특산품이란다. 짜지 않고 상큼한 맛이 났다.

이곳에도 사람 사는 집이 있고 마을이 있었다. 집앞을 어찌나 정성껏 꾸며놓았는지 나도 모르게 찰칵.
 이곳에도 사람 사는 집이 있고 마을이 있었다. 집앞을 어찌나 정성껏 꾸며놓았는지 나도 모르게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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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끝에 닿을 듯 빽빽이 늘어선 푸른 대나무숲.
 하늘 끝에 닿을 듯 빽빽이 늘어선 푸른 대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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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북새통 관광지에도 사람 사는 집이 있었다. 대부분 전통 가옥인데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겉모습이 예뻐서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찬 초록의 대나무숲도 참 아름다웠다. 사람이 끄는 2인승 인력거를 타고 구경을 하는 관광객도 꽤 있었다. 하지만 가격을 물어보니 일대를 한 바퀴 도는데 둘이서 20만원에 가까운 금액이라 일찌감치 포기했다.

나도 발이 아팠지만 종혁씨도 많이 걸으니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싫든 좋든 온종일 걸어 다녀야하는 오늘 하루, 쉬엄쉬엄 가면서 힘을 낼 수밖에.

대나무숲속에서 전통 예복을 입고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도 만나고,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작은 신사에서 사람들이 불전함에 돈을 넣고 복을 비는 장면도 구경했다. 기찻길을 가로지를 때 땡땡땡 종소리와 함께 셔터가 내려와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경험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장면.

▲ 땡땡땡~ 열차가 지나가고 셔터가 올라가자 사람들이 일제히 선로 위를 건넌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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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이라는 텐류지(천룡사)는 입장료를 안 내는 바깥만 보고 나왔다. 나중에 귀국 후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고 약간 후회하기는 했지만, 오후에 은각사, 철학의길, 청수사 등을 돌아야했으므로 갈 길이 바빴다.

그래도 교토부 지정문화재라는 절의 정문이며 주변의 작은 절들, 심지어 전통 가옥과 정원을 개조한 음식점들을 보는 것으로도 눈호강을 실컷 했다. 돌멩이 하나 그냥 놓이지 않은, 꼼꼼하게 사람의 손길이 닿은 일본식 정원의 정교한 아름다움.

대나무에 끈을 묶어 세운 담장 위에 덮은 나무 기와에 푸른 이끼가 자라는 모습이 예뻐서 어느 식당집 담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필시 오랜 시간 엄청난 정성을 들여 키운 것이리라. 이렇게 정원을 잘 가꾼 식당들에선 값비싼 고급 일본 정식을 팔고 있었다. 점심 한 끼에 오천 엔 정도.

천룡사 입구 부근
 천룡사 입구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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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담장과 그 위의 나무 기와에서 자라는 이끼. 시간을 들여 정성껏 보살핀 흔적이 느껴진다.
 대나무 담장과 그 위의 나무 기와에서 자라는 이끼. 시간을 들여 정성껏 보살핀 흔적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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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라시야마역에서 전철을 타고 가와라마치로 돌아왔다. 교토 중심가에 위치한 가와라마치역 주변은 명품 거리를 연상케 하는 쇼핑가다. 지하철역 안에 종합관광안내소가 있어서 영어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교토 시내 주요 관광지를 순회하는 버스 노선도가 상세히 그려진 지도도 구했다. 아싸, 이것만 있으면 이제 어디든 문제없다.

버스 1회 요금이 230엔이므로 아예 500엔짜리 원데이 패스 두 장을 샀다. 대중교통비가 비싼 일본에서 마음껏 관광을 다니려면 하루 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원데이 패스가 무조건 유리하다. 일본의 시내버스는 뒷문으로 타고 앞문으로 내리는데, 내릴 때 돈을 낸다. 내리는 정류장에 도착하면 운전기사 옆으로 가서 패스나 현금으로 결제하고 하차하면 된다. 203번 버스를 타고 은각사로 출발!

일본 관광지에서는 가는 곳마다 한국인과 마주쳤다. 한국인 관광객끼리 서로 길을 묻는 풍경도 흔하다. 우리가 탄 버스에도 한국인 가족이 동승했다. 아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온 효도관광(?)인 것 같았는데, 우리가 민박으로 사흘에 10만 원짜리 방을 구했다고 하자 눈이 휘둥그레진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소리 할 눈치다. 그 아들도 부모님 모시고 여행 일정 짜느라 고생했을 텐데, 괜한 참견을 했나.

평일 낮인데도 타는 버스마다 만원이다. 교토 관광은 거의가 버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용객 대다수가 관광객이라고 보면 된다. 비수기라는 말이 무색할 따름. 관광도시 교토는 일 년 열두 달이 성수기인 듯하다. 벚꽃이 만개한 봄이 교토 관광의 최적기라는데 그때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붐빌지. 게다가 비행기 표며 숙소며 모든 것이 제일 비쌀 시기다. 벚꽃 구경도 좋지만 나는 사양.

다행히 우리는 맨 마지막 청수사 앞에서 탄 버스 말고는 대부분 자리를 잡아 앉았다. 차창 밖으로 거리 풍경을 내다보는 것도 즐거운 관광이었다. 고층 빌딩이 거의 없고 오래된 2층짜리 목조 가옥이 많은 교토 시내. 아름답고 신기했다. 길가에 면한 건물 아래층은 가게로 개조하고 위층은 예의 그 발을 내려친 거주 공간인 경우가 많았다. 색으로 치자면 어두운 잿빛 일색. 그러나 사람 사는 온기가 배어 따스한 잿빛이다.

천룡사 부근의 작은 절. 꼭 천룡사가 아니라도 이 정도는 아라시야마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천룡사 부근의 작은 절. 꼭 천룡사가 아니라도 이 정도는 아라시야마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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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정성을 다해 정원을 꾸며놓았는데 알고 보니 일본 정식을 파는 식당이었다.
 갖은 정성을 다해 정원을 꾸며놓았는데 알고 보니 일본 정식을 파는 식당이었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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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atree12fly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일본여행, #교토여행, #아라시야마, #천룡사, #일본대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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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산업화된 시스템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꿈꿉니다. 민중의소리, 월간 말 기자, 농정신문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한국위원회 국제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계간지 선구자(김상진기념사업회 발행) 편집장, 식량닷컴 객원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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