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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최근 <오마이뉴스> 편집기자인 김준수 기자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그가 특정후보 지지선언이라도 한 걸까. 검찰의 기소에 납득이 안 가는 이유 공개질문으로 접근해 본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13일 오전 서초동 청사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국감 출석한 김수남 검찰총장 김수남 검찰총장이 13일 오전 서초동 청사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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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검찰의 칼은 불의를 겨누고 있는가.

이 물음에 '예'라고 대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최근 검찰의 태도는, 쏟아지는 권력형 비리에 애써 눈을 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그뿐 아니다. 수사권이라는 칼을 쥔 검사들 중 일부는 스스로가 비리 의혹을 받고 있지만, 그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검찰이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건 바로 기소권 때문이다. 검찰은 특정인을 형사재판에 넘길 수 있는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해보자. 죄가 있어도 검찰이 기소를 안하면 처벌할 수 없고, 죄가 없더라도 기소하면 법정에 서야 한다. 유력한 정치권 인사들도 검찰 앞에선 '을'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4.13 총선 선거사범 기소 현황을 보라. 검찰이 재판에 넘긴 현역 의원을 보니 여당보다 야당이 2배 가량 많다. 그중엔 제1야당의 대표인 추미애 의원도 포함돼 있다. 진실은 재판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벌써부터 검찰의 기소가 형평성을 잃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검찰의 적절한 기소권을 의심케하는 사건이 또 있다. 최근 <오마이뉴스> 편집기자인 김준수 기자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것이다. 그가 특정 후보 지지선언이라도 한 걸까. 아니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검찰의 기소에 납득이 안 가는 이유, 공개질문으로 접근해 본다.  

[공개질문1] 기사 내용이 과연 특정후보 반대했나

김 기자는 4.13 총선 당일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투표하러 가십시오'라는 선거독려 기사를 편집하여 배치한 게 전부다. 그런데 검찰은 그를 법정에 세웠다. 해당 기사가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에게 적용된 공직선거법 조항은 이름도 생소한 '투표참여 권유활동규정 위반죄'다. 쉽게 얘기하면 선거법상 투표참여 권유는 할 수 있으나, 특정 후보(또는 정당)를 지지,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면 처벌하겠다는 취지다. 이 조항은 투표 권유를 빙자한 선거운동이 잦다는 지적에 따라 2014년 5월 14일 신설됐다.

하지만 기사를 여러 번 읽어봐도 과연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반대하는 목적으로 쓰여졌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이 죄는 "행위주체가 투표참여 권유행위라는 인식과 그 행위가 위반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김 기자가 과연 그런 인식을 하고 있었을까. 최근 이 죄로 처벌받은 대표적인 사례를 이 사건과 비교해보면 더 명확해진다.

[사례 1] A씨는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선거 당일 2만여 명에게 "기호 ○번 □□□를 꼭 찍어 주십시오"라는 내용을 포함하여 투표참여를 권유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사례 2] B씨는 사전투표소 바로 앞에서 행인들에게 "오늘이 사전투표 마지막 날입니다. 투표하세요. 나는 △△색을 좋아합니다. △△색을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며 투표참여를 권유하였다. 

과연 A씨나 B씨의 투표참여와 해당 기사의 내용이 같은 수위인가. 똑같이 처벌대상이 되어야 할까.  

[공개질문2] 왜 책임자가 아닌 편집기자를 기소했나

설사 백번 양보해서 해당기사가 현행법을 어겼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왜 하필 편집기자인가. 검찰은 편집기자가 기사 작성자, 최종책임자와 공모하여 새누리당 반대 기사를 게시하였다고 했는데 이 정도론 설득력이 약하다.

언론사의 보도에 잘못이 있다면 언론사 대표 혹은 편집국장 등 책임자를 정식으로 기소하는 게 정석이다. 그 정도 사안이 아니라면 무혐의 혹은 불기소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게 수순이다.

물론 수많은 기사들을 편집하고 걸러내고 제목을 달아 적절하게 배치하는 편집기자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나 시민기자제를 채택하고 있는 <오마이뉴스>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기사를 보완하고, 취사선택하고 적절한 제목을 붙여 보도하는 일의 최종 결정은 편집기자가 하지 않는다. 시민기자의 원고는 1차적으로 편집기자가 검토하지만 기사의 채택, 배치 등의 최종 결정은 편집부 데스크와 편집국장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편집기자는 실무자일 뿐이다.

언론사의 보도가 문제가 될 경우 책임소재를 따지는 일은 필수적이다. 2008년 대법원 판결을 보자.

"언론사는 그 조직이 방대하고 복잡하여 하나의 보도를 위해서도 기획에서 최종보도단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게 되는데, 그 보도에 관여한 자의 책임 유무는 각각의 구체적인 경우에 있어서 보도의 제작과 보도 과정 등에 실제로 관여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최근 판결을 보더라도 언론보도와 관련, 민형사 책임을 지는 이들은 언론사 대표, 편집국장, 담당기자(작성자)가 절대 다수였다. 그런데도 검찰은 난데없이 편집기자를 기소했다. 새로운 판례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을까.

검찰이 자신의 날 선 칼날을 말단 편집기자에게 겨눈 상황은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이해가 안 간다. 어쩌면 검찰의 칼은 편집기자 개인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기자들, 더 나아가 시민기자 제도를 겨냥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공개질문3] 선거 때 언론사는 입을 다물어야 하나?   

우리나라는 미국 등과 달리 언론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언론사의 속성상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기란 불가능하고 또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선거 기간 후보자 검증과 활발한 토론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언론의 역할은 정당이나 후보자를 검증·감시하고, 제대로 된 인물이 당선되도록 보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방침대로라면 선거철 언론사의 보도는 후보자의 동향이나 좇아야 하고, 기사가 현행법 위반이 되지는 않았는지 검토하는 수동적인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이번 기소로 편집기자는 글을 읽는 독자가 아니라 검찰을 먼저 떠올려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마치 감옥 담장 위를 걷는 기분으로 선거법만을 염두에 두고 기사를 편집해야 한다. 1인 언론인 정치·시사블로거들도 마찬가지다. 극심한 자기검열에 시달려야 한다.

그렇잖아도 정부·여당을 비판하면 법정에 설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설상가상 선거법 기소까지 걱정해야 하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고 했다. 이번 기소는 시민 참여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시민기자 제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공개질문4] "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는 왜 문제 안삼았나

과연 해당 기사는 특정후보 낙선을 목적으로 한 기사였을까. 그리고 그 책임을 김준수 기자가 져야 할까. 법률적인 답변을 내리는 일은 사법부의 몫이다.

하지만 그 전에 소개하고 싶은 기사가 있다. <오마이뉴스>의 기사보다 더 노골적인 선거운동을 했던 기사다. 2002년 12월 19일 16대 대통령선거 당일 조선일보에 실린 그 유명한 사설 '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이다. 이 사설은 단일화가 파기되었으니 노무현 후보를 염두에 두었던 유권자들에게 "판단 기준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뒤집는" 선택을 하라고 재촉한다. 한 대목을 보자.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를 함께 다니면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상황이다. 이제 최종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마당이지만 검찰에 묻고 싶다. 그때 검찰은 무엇을 하였는가.

검사의 기소권 행사와 관련, 유명한 판례가 있다. 대법원은 "검사가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하여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줌으로써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하였다고 보이는 경우에 이를 공소권의 남용으로 보아 공소제기의 효력을 부인할 수 있는 것" (대법원 1999. 12. 10. 선고 99도577 판결 등)이라고 판시했다. 이 사건을 기소한 검찰이 새겨들었으면 한다.  

시민기자제도가 법정에 섰다

어쨌거나 공은 법원으로 넘어왔다. 김 기자는 이번 달부터 법정에 서게 된다. 하지만 법정에는 그 혼자가 아니다. 수많은 시민기자들과 시민참여 저널리즘이 함께 '피고인'으로 서있다. 그래서다. 이 재판은 기소된 김 기자 개인의 재판이 아니다.

맞은 편에는 검찰이 있다. 기소한 건 검찰이지만, 검찰의 기소권도 함께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 결과로 시민참여 저널리즘이 위축되지 않기를, 검찰의 기소권 행사가 남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태그:#기소, #편집기자, #시민기자, #검찰, #선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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