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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1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법원 여직원이 국회의원들이 탈 엘리베이터 운행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지난 11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법원 여직원이 국회의원들이 탈 엘리베이터 운행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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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게 유니폼을 맞춰 입은 젊은 여성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늘어서 상냥하게 인사합니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뒷짐만 지고 있으면 됩니다. 말만 하면 가고 싶은 층을 눌러 안내하니까요. 어느 특급호텔의 이야기냐고요? 아닙니다. 여기는 국회 국정감사장입니다.

요즘은 어지간한 특급호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엘리베이터걸'을 일부 국정감사장에서는 여전히 만날 수 있죠. 11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부산·대구고법 및 관할 법원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감이 그랬습니다. 

부산고법의 중앙에는 총 6기의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이날 법원은 이 중 3기를 '의원님 전용' 엘리베이터로 운영했습니다. 젊은 여직원들은 의원님들이 자칫 직접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망극한 일이 벌어질세라 3시간가량의 국감 내내 앉지도 못한 채 서 있어야 했습니다.

이 여직원들도 힘들었겠지만 이날 법원을 찾았던 민원인과 법원 직원들도 불편함을 겪기는 마찬가지였죠. 중앙 엘리베이터 절반을 의원용으로 잡아두고 있다 보니 나머지 3기만 이용해야 했거든요. 

제 발로 걷고, 제 손으로 밥 가져오고... 그렇게 힘든 일인가요?

지난 11일 부산고등검찰청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린 검찰청사 내 주차장에 의원들을 위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검찰청은 민원인을 위해 운영하는 주차장에 있는 차들을 이동 주차해 의원 차량을 주차했다.
 지난 11일 부산고등검찰청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린 검찰청사 내 주차장에 의원들을 위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검찰청은 민원인을 위해 운영하는 주차장에 있는 차들을 이동 주차해 의원 차량을 주차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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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죠. 국감 기간 철저히 '을'이 되는 경험을 하는 피감기관들이 '갑'인 국회의원을 위해 과잉의전을 해 문제가 된 일 말입니다. 이날 국감에서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엘리베이터걸 문제를 이야기하며 과잉의전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비단 엘리베이터걸에서만 끝난 일이 아닙니다. 법원에서 국감이 열리고 있는 동안 바로 다음 국감이 예정되어있는 부산고등검찰청 직원들은 분주히 주차장을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전화기를 들고 차량의 이동 주차를 부탁하고 있었죠.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의원님들 타실 차량을 주차해야 했거든요. 딱 20m만 옮겨주면 안되냐는 부탁을 듣고 있자니 이분들도 딱했지만, 조금이라도 걸으면 큰일 날 것으로 비치는 의원님들의 체력도 큰일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법원에 엘리베이터걸이 있었다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부산항만공사 등에 대한 국감장에서는 '웨이터'가 있었죠. 김영란법의 시작으로 각자 내기 문화가 생기고, 국감에서도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문화가 정착되어가는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날 왁자지껄한 구내식당 한쪽에는 의원님 전용 식사구역이 마련됐습니다.

다들 식판을 들고 밥을 받아먹는 구내식당이었지만 의원님의 식사는 비표를 단 젊은 직원들이 날라주었죠. 참고로 올해 부산항만공사의 신입사원 경쟁률이 200대 1이었다죠. 그 바늘구멍 뚫고 들어와 의원님 식사 서빙을 했던 직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엘리베이터걸 운영 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지난 11일 부산고등검찰청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린 검찰청사 내 주차장에 의원들을 위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검찰청은 민원인을 위해 운영하는 주차장에 있는 차들을 이동 주차해 의원 차량을 주차했다. 검찰청 직원이 차량 이동 주차를 위해 차주에게 전화하고 있다.
 지난 11일 부산고등검찰청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린 검찰청사 내 주차장에 의원들을 위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검찰청은 민원인을 위해 운영하는 주차장에 있는 차들을 이동 주차해 의원 차량을 주차했다. 검찰청 직원이 차량 이동 주차를 위해 차주에게 전화하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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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걸 피감기관들의 소위 '오버'라고만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상당수 의원은 이런 의전을 당연시하니까요. 국감을 지켜보고 있으면 정작 많은 의원들이 본연의 목적인 감사에는 소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10분 남짓의 자기 질문이 끝나면 자리를 뜨는 의원이 상당수이고, 자리에 앉아있다고 해도 딴짓을 하기 일쑤죠.

국감은 헌법 등 관련 법률이 정한 입법부의 당연한 '권리'인 동시에 '의무'입니다. 국감을 시작하기 전 상임위원장들은 꼭 "헌법 제61조, 국회법 127조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피감기관에 국정감사를 실시할 것을 선언한다"고 밝히죠. 더불어 기관 증인들에게 "증언을 함에 있어 국회의 권위를 훼손한 때에는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형사 고발될 수 있음"도 알립니다.

하지만 그 어느 법에도 과잉의전을 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습니다. 국민들이 바라는 국감은 송곳 같은 질의로 국민을 대변해 문제점을 파고들고, 이를 개선하는 걸 겁니다. 의원들이 강조하는 '국회의 권위'가 빛나는 순간도 바로 그때겠지요. 피감기관 역시 성실한 자료 제출과 답변이 국회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란 것을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필요 이상으로 들어간 어깨의 힘을 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영란법'이 대표적이지요. 하지만 법만으로 사회가 바뀐다면 그것만큼 쉬운 일이 있을까요. 결국 세상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걸 겁니다. 우리 사회에 굳이 '엘리베이터걸 운영 금지법'까지 만들어야 할까요?


태그:#국감, #국회, #엘레베이터, #의원님_전용, #과잉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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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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