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서 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 옛날, 옛날에 동양 여성들은 이렇게 살았다네, 표지
 <어서 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 옛날, 옛날에 동양 여성들은 이렇게 살았다네, 표지
ⓒ 책읽는귀족

관련사진보기

<어서 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는 E.B.폴라드(Pollard, Edward Bagby, 1864~1927)가 1908년에 펴낸 'Woman: In All ages In All Countries(여성: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시리즈의 제4권으로, 원제는 'Oriental Women(동양 여인들)'이다. 침례교 목사이며, 콜롬비아 대학과 조지타운 대학에서 성서문학을 가르쳤던 저자는 서양인의 시선으로 고대 근동에서부터 19세기 말 동북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각국 여성들의 삶을 살피고 있다.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책은 동양 여성들에 관한 전설, 풍습, 문학과 정치사에 끼친 다양한 영향에 대해 살피고 있다. 정치·문학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친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풍습과 관례라는 굴레 속에서 혹독한 삶을 살아야 했던 보통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극에서 익히 봤던 조선 여인들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다. 문제는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여성들이 등장했으나, 사회질서가 공고해짐에 따라 그런 여성들의 등장조차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게 지금 동양의 현실이다.

이 책은 서구인이 객관적인 제 삼자의 시선으로 동양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상대성을 무시한 서구중심주의 시선을 곳곳에 드러내며 저자 역시 '시대의 아들'일 수밖에 없음 또한 보게 한다.

저술 시기가 서양이 동양을 지배대상으로 삼던 제국주의 시대였다는 걸 감안하면 미개한 동양을 개량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서양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다. 인간은 누구나 '시대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시대의 선각자라 해도 시대의 사상과 윤리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말이다.

깊이보다는 정보 제공에 방점을 둔 책이라, 상당한 분량에도 막히지 않고 술술 읽히기는 하지만 자문화중심주의 즉, 서구인의 우월감 가득한 시선은 불편하다. 실질적으로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편견과 잘못된 내용으로 독자의 심기를 상당히 불편하게 하는 부분이 나오기도 한다. 그 시선이 조선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조선의 통치자는 본국 내에서는 절대군주이긴 하였지만, 여러 세기 동안 중국에겐 신하나 다름없었다. 조선의 지식층은 책을 쓰고 서신을 교환할 때 한자를 사용한다. 조선이 청의 종주권을 부인하였던 1984년에 청일전쟁이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조선은 주로 일본의 영향권 하에 놓여 있는 상태다. ...그러나 조선의 여성에게 이름이 없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주 어린 여자아이에게는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부를 수 있도록 임시로 성만 붙여 부른다. 사춘기가 되면 친구들은 더 이상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조선이 중국과 조공외교를 하긴 했으나, '신하나 다름 없었다'는 표현은 거슬린다. 편집과정에서 실수한 것일 테지만, 1894년에 있던 청일전쟁을 1984년이라고 하는 부분에선 짜증이 나고, 조선 여성에게 이름이 없다고 한 부분에선 헛웃음이 나온다.

우리 조상들은 귀한 자식일수록 천한 이름을 불러야 병치레를 면한다는 속설이 있었을 정도로 노비부터 양가집 규수와 왕족에게까지 이름 없는 사람이 없었다. 개똥이, 쇠똥이, 말똥이 같은 이름이 무슨 이름이냐고 따진다면, 오늘날에도 종종 들을 수 있는 말년이, 끝순이는 이름이 아니던가? 춘향이는 이름이 아니며, 향단이는 또 무엇인가?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던 장녹수와 숙종에게 사약을 받은 장옥정(장희빈). 이들은 노비였지만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던가.

하물며 호와 자까지 갖고 있던 양반집, 왕가에서야 두 말하면 잔소리다. 사임당 신씨는 '인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고, 홍길동을 쓴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은 '초희'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다만 출가 이후 이름 대신 별칭으로 불리다 보니 이름이 없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100년 전과 비교해 여성 지위가 달라진 게 무엇인지, 역사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지를 묻게 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금수저 물고 태어난 여인들, 아프면 커튼 구멍으로 의사에게 손 내밀어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역사는 감정을 옆에 제쳐두고 사실에만 관심을 두기 마련이다. 역사 속에 감정을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알렉시예비치는인간에게 경이로움을 느끼며 역사학자가 아닌 인문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고, 사회주의적 인간, 즉,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를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E.B.폴라드는 인문학자로서 역사 속에 감정을 집어넣고 살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확인할 수 있다.

E.B.폴라드는 "어느 나라에서나 여성의 상대적 지위는 나라의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이다"라고 하면서 '이러한 잣대를 동양에 적용해 보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이야기한다. 공정한 평가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는 '동양에서의 여성이 진정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을까'라고 질문하며 독일인 이집트어 학자 에르만의 말을 인용한다.

"서양에서는 여성이 남자의 동반자로 인식되는 반면, 동양에서는 여성을 남자의 노예이자 노리개로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여성에 대한 존경이 숭배 수준까지 높아진 적도 있는 반면에, 동양에서는 여성이 진정 인간이었던 적이 있는지에 관한 곧잘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서양이 숭배 수준까지 여성 상위 시대를 경험한 적이 있었는가와 차별적인 사회 구조가 없었는지는 묻고 싶은 부분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양 여성들이 고대에 그들이 누렸던 지위마저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주요 원인은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힌두나 이슬람교의 영향이라고 지적한다.

"동양의 모든 여성은 이런 열등한 대접을, 하늘이 그들을 남자가 아닌 여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일종의 형벌이라 여기며 참으로 잘 견뎌온 듯하다."


가령,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것을 지배하며, 여성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계급의 경계선은 깊고도 가혹하다. 사회적 간극은 메울 길이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카스트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모든 사람이 추앙하는 소가 있을 뿐이다.

인도에서 아내에게 기대하는 것은 힌두법전인 마누법전에 기록된 것처럼 "항상 쾌활하고 영리하게 가정을 돌보고, 가구를 꼼꼼히 닦고, 돈은 아껴 써야 한다"는 것 외에도 사원 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외설스러움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에게, 젊어서는 남편에게,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에게 예속된다. 힌두문헌인 베다는 힌두 여인들을 남자, 자식에게 종속된 인간으로 규정한다. 그리하여 문학 속에서만 사랑 받는 존재로 둘 뿐, 결코 독립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조선시대 여성의 예속적인 지위와 구실을 표시한 규범인 삼종지도를 떠올리게 하는 인도문헌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사내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머니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금방 파악하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관여하는 일은 드물다.

소가 숭배되고 여성이 폄하되는 나라에서는 여성에게 거는 기대란 거의 없다. 어느 저명한 인도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모두, 소는 신성하고 여성은 방탕하다고 믿는다." 환영 받지 못한 출생과 죽을 때까지 괴롭힘을 당하고 종속된 생활을 하는 이들이 바로 힌두 여성이다.

고대 근동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여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상당 부분 이들이 속한 사회계층에 따라 결정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금수저 여인들은 노예를 부러워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상류층 여인은 엄격하게 고립된 생활을 해야 했던 반면, 하류 계층의 여성들은 유난히 독립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하류계층 여인들의 자유는 전혀 제한되지 않았다. 머리와 얼굴을 가리지 않은 모습으로 거리를 돌아다닐 수도 있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기도 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하기도 하고, 아무 제약 없이 친구 집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반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여인들은 하렘에 갇혀 지내거나 그들의 단조롭고 고립된 생활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만한 작업으로 남편의 도움을 받아 정원을 만들곤 했다.

터키 가정에서 고립된 구역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이 한국 드라마 <허준>이나 <대장금>을 봤다면 쉽게 공감할 장면이 있다. 남녀가 유별하여 어의가 왕비나 후궁이 아플 때 실로 묶어 진맥하는 장면이다. 터키 역시 여성들만 거처하는 하렘릭에서 여자가 아플 경우, 남성 의사는 환자의 손과 혀만 진찰할 수 있다. 의사가 방문하면, 검은 커튼을 내려 여자 환자와 남자 의사를 분리한다. 환관은 환자의 병을 진찰할 수 있도록 병든 여자가 커튼 구멍을 통하여 손을 내미는 곳으로 의사를 안내한다.

이런 사회에서 결혼은 당연히 남자와 한 여자가 아닌, 두 명 이상의 남자 사이에서 이루어진 계약에 따라 성사되었다. E.B.폴라드는 이처럼 열악한 여성의 지위 향상 과정은 반드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대한 개혁은 쿠테타가 아닌, 계몽과 교육에 따른 개선 효과를 통해서만 달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야만 노예와 다름없는 현재의 처지에서 해방되는 동양 여성의 염원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1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세상은 급진적으로 변했다. 그런데 기술과 문화 수준의 발전만큼, 여성의 지위도 그런 발전을 이뤘을까? 역자가 후기에서 밝히는 것처럼 "아직도 수많은 여성이 수천 년 동안 받아 마땅한 지위를 누리지 못하며,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여성 지위는 점진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저자의 시선은 오늘날에도 유효한지 의문스럽다. 역자는 그 의문을 이렇게 표현했다.

"앞으로는 아니 지금 당장 이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접받는 일이 인권 운동으로 쟁취해야 하는 사명이 아니길 바란다. 이 세상 어느 나라건, 민족에서건 '여성의 지위'나 '여성의 권리'라는 말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 되기를 바란다."


E.B.폴라드는 '시대의 아들'로서 서구중심주의 시선을 온전히 벗지는 않았지만, 동양 여성들의 현실을 살필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했다. 그 여성들이 서 있던 삶의 토대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발판이 되기를 바라며 썼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이 책이 갖는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서 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 - 옛날, 옛날에 동양 여성들은 이렇게 살았다네

E. B. 폴라드 지음, 이미경 옮김, 책읽는귀족(2016)


태그:#서평, #어서 와,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지, #여성 지위, #동양 여성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