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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우연히 접한 보도 기사에서 나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 4월에 이어 삼성전자 휴대폰 생산 공장에서 메탄올 중독으로 또 다시 파견 노동자 2명이 실명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가 메탄올취급업체를 일체 점검했고 추가 환자는 없다고 발표했는데, 그 발표가 무색하게도 불과 6개월이 지나지 않아 치명적인 사고가 또 발생한 셈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그런 내용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열악한 작업환경과 그로 인한 피해사실보다 삼성의 갤럭시 노트에 더 관심을 보인다. 이쯤 되면 노동자들에게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파리 목숨에 불과할 것이다. 내가 일하는 콘티넨탈지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역 주민도 대피하는데, 회사는 묵묵부답

2016년 7월 26일 아침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일하는 작업현장에서 갑자기 이상한 악취가 났다. 처음에는 으레 공장 설비에서 나는 그런 매캐한 냄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인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다급했다. 사업장 바로 앞에서 유해가스가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나와 동료들의 안부를 묻고는 주민들과 인근 사업장 노동자들이 대피를 하고 있으니 빨리 대처하라는 것이다.

작업장 안전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119에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알아봤다. 수화기 너머로 "인체에 유해한 가스가 누출되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전해졌다. 바로 장갑을 벗고 회사 관리자를 찾아갔다. 그런데 회사 관리자는 퉁명스럽게 앉아서 "별일 아니니 기다려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다시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노출된 유해가스 물질이 무엇인지 물었다. '티오비스(Thiobis)'라는 화학물질이 유출되었다고 한다. 살펴보니 티오비스는 연소시 독성 물질인 이산화황을 발생시키는 위험한 물질이었다. 노동부에 전화를 걸어 빨리 예방조치를 위한 현장지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다시 회사 관리자를 찾아갔다. 안전관리 담당 관리자는 여전히 태평했다. 위험물질이 지역 전역에 유출돼 인근 주민들은 모두 대피하는 마당에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담당한 자의 태평한 태도를 보니 너무 화가 났다.

이번에는 좀 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빨리 예방조치를 취해주십시오. 작업자들이 위험물질 유출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알려주시고, 피해사실도 빨리 확인해주세요."

돌아오는 대답은 가관이었다.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쓰러진 것도 아닌데 왜 호들갑이냐"라며 되레 면박을 주는 것이다. 깊은 한숨이 나왔다.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쓰러진 것도 아닌데 왜 호들갑이냐"

오전 10시경 현장에 파견된 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이 직접 사업장을 방문해서 회사 관리자들과 면담이 이루어졌다. 회사 관리자들은 노동부 감독관의 의견을 청취하겠노라 했다.

감독관은 "이미 주변 사업장에서도 대피명령이 이루어졌으며 선제적 예방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회사 관리자들이 발끈했다. "그럼 우리보고 지금 공장을 멈추라는 말이냐", "지금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공장을 멈추나"라며 버럭 화를 냈다. 기가 막힌 감독관은 한동안 말을 잃고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내가 공장을 멈춰라, 말아라 할 수는 없지만 모름지기 예방조치란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회사와 노동부는 말다툼으로 면담을 끝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얘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우리 조합원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조합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을 보고도 노조대표자인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머릿속에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회사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노동부가 예방조치를 얘기하면서도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면,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노조라도 예방조치를 해야 한다."

회사 대신 노동자 대피시켰더니 징계 공문이 날라오다


노동조합은 7월 화학물질 노출 사고 당시 회사와 노동부의 부실 대응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노동조합은 7월 화학물질 노출 사고 당시 회사와 노동부의 부실 대응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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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회사는 작업을 중지하지도 작업자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리지도 심지어 피해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가치가 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쩔 수 없이 소속 조합원들에게 피해사실을 알리고 임의로 대피명령을 내렸다.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치료가 필요하다면 치료하라고 했다. 오전 11시경 소속 조합원들은 모두 대피했다. 대피가 모두 끝나고 오전 12시 20분경 회사는 부랴부랴 사내방송을 통해서 유해물질이 노출되었다는 피해사실을 근무 중인 노동자들에게 처음 알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황은 여기서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다.

대신 7월 29일 회사는 대표이사 명의로 노동조합이 회사의 정당한 업무 지시를 무단으로 지키지 않아 생산손실을 유발하고, 회사의 직제를 문란하게 하여,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두 달이 훨씬 지난 10월 7일, 작업자들을 대피시켰다며 위협적이게도 손해배상과 해고 사유라는 것을 큼직하게 쓴 징계위원회 통지서가 도착했다. 본보기로 확실하게 손을 볼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1차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정말 고민스러웠다. 사실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런 상식적인 상황에 대해서 저들에게 소명해야하는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이유를 찾기 어려워서다.

다시 2차 징계위원회 참석 통지서가 도착했다. 10월 18일 다시 징계위원회를 열겠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당일 대피한 작업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다시 재연 되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같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냐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에 이르렀다.

만일 회사의 의도대로 징계가 관철된다면 앞으로 우리 사업장에서는 그 어떤 위협이 존재해도 우리는 스스로 대피할 수 없다. 회사의 지침이 나올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를 해야 한다. 해고와 징계의 협박 앞에서 자신의 밥줄을 걸지 않고는 스스로 위험을 인지해서도 안 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주장해서도 안 된다.

노조가 지켜야 할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우리 사회가 달려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혹시라도 노출된 유해가스가 자칫 큰 인명사고로 이어졌다면 우리는 평생 씻지 못할 악몽에 시달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잊을 만하면 매년 반복되는 유해가스 누출사고로 이름 없는 작업자들이 죽고 다치고 병들면서 자신이 일했던 작업현장에서 쓰러져갔다.

누구의 아빠, 누구의 남편으로 불리는 소중한 사람들이 단지 더 많은 돈을 긁어모으겠다는 자본의 천박한 이윤놀음 아래 죽어갔다. 지하철 구의역 비정규 노동자들이 그랬고, 삼성 에어컨 설치 노동자들이 그랬고, 당진에서 유해가스에 중독된 하청 노동자들이 또 그랬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고 또한 이 사회가 마땅히 보장해야 할 보편적인 권리다. 많은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이 절실하고 상식적인 권리를 찾기 위해서 해고를 각오하고 손배가압류를 각오해야 한다면 분명 그것은 비정상적인 사회일 것이다. 그러니 노출된 유해가스보다 노출된 회사의 안전불감증이 더욱 메스껍고 노동자들의 시린 현실이 더욱 가슴 아프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조남덕 님은 금속노조 콘티넨탈지회 지회장이다. 콘티넨탈 지회는 쟁의권이 있는 노동조합이다.



태그:#콘티넨탈지회, #티오비스, #화학물질 누출, #작업중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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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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