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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언론에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수출 감소로 증명되는 제조업의 장래가 암담하고, 말만 번지르르한 창조경제는 이제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미국은 무역 보호주의로 회귀하고 있고, 중국은 사드 문제로 인해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1997년 말 찾아온 IMF 관리체제나 2008년 금융위기를 이야기한다. 그때는 중국을 지렛대 삼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세계 경제의 거목이 되어버린 중국은 지렛대가 아니라 더 큰 장벽처럼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 노마드가 지금 중국에 도전하라는 지침서를 내놓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는 무모한 충고처럼 읽혀지는 이 책은 그런데도 아주 적확하고, 유효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건 역사가 말한다. 신라 왕자라는 위치를 버리고 당나라로 건너가 살아있는 전설이 된 김교각이 그렇고, 이 땅이 일본의 압제에 들어가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의 피카소'가 된 한락연이나 '중국의 드뷔시'가 된 정율성, '중국 유일의 영화황제'가 된 김염 등 수많은 선조들이 그것을 말한다.

'14억 소비시장 중국에서 창업하라' 표지
 '14억 소비시장 중국에서 창업하라' 표지
ⓒ 황금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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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지피지기'가 필수

2002년 공무원 생활을 접고 중국으로 건너가 비즈니스 전문가가 된 안종경씨의 저서 '14억 소비시장, 중국에서 창업하라'(황금시간 간)는 그 스스로가 중국을 토대로 살아가면서 만든 소중한 기록이자 뒤를 따르는 이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필자는 중국 진출을 위한 가장 선제 조건으로 중국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필자는 이런 지침에 충실했다. 그 스스로 "중국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10년은 걸린다는 생각으로, 3년은 눈을 감고 3년은 귀를 닫고 3년은 붙박이처럼 살면서" 중국을 이해했다. 그렇게 현지 기업에서 일을 했고, 지금은 사업과 더불어 창업 컨설팅을 하고 있다. 

이번 책은 그가 중국을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만난 것들을 편안하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고맙고 반가운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이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다. 1992년 수교 이후 중국에서 만났던 수많은 상흔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아무 준비없이 중국에 도전했다가 차례대로 쓰러져간 수많은 패배들 말이다.

중국에 대한 준비가 없던 중소상인은 물론이고, 나름대로 준비를 했던 대기업들도 최근 중국에서 하나하나 물러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는 개미들이 나서야 할 때다'라고 말하는 필자의 말에 100%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에 이런 상황은 돌이켜보면 지금이야말로 중국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시작해야 하는 시기라는 말이 되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런 모순들을 넘어가는 묘한 지침서다. 지금 우리가 무엇도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좌초한 세월호를 보는 것처럼 무기력한 것이다. 결국 나라만 믿고 있다가는 단 한 명의 생명을 구할 수도 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지침서다. 앞 부분에서는 중국을 이해하는 법에 관한 것이다. 꽌시 같은 개념도 있지만 투어관, 취엔즈 등 중국에서 꼭 알아야 할 것이 많다고 말한다. 투어관(托管)은 "어떤 시장에 진입할 때 심한 텃세에 부딪힐 경우 그 시장을 잘 아는 현지인에게 보수나 커미션을 주고 시장을 개척하는 행위"(27page)를 말하고, 취엔즈(圈子)는 인적 네트워크인 꽌시가 확대되어 맺어진 비즈니스 울타리로 정치에서 사용되는 공청단(젊은 공산당 엘리트 출신이 만들어낸 파벌)이나 요즘 많이 들리는 차오산상방(潮汕商幇)등의 범주다.

중국 푸젠성 동남부에 위치한 차오저우나 산토우 출신을 가리키는 차오산상방은 홍콩 거부 리자청부터 탄센트의 마화텅, 궈메이의 황광위 등의 거대한 상단으로 자기들만의 독특한 상업 문화를 갖고 있다. 한정된 지면이기 때문에 내용이 많을 수는 없지만 필자가 제시하는 중국 상업문화의 내용들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 많아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국 진출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문화 차이다. 거기에 선입견과 편견으로 중국을 잘못 파악하고, 독단으로 일을 진행하다가 다양한 문화의 벽에 부딪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지피지기는 필수라는 점을 이 책은 다시 한번 강조한다.

중국 초창기 진출의 교두보였던 왕징은 이제 한국사람들이 떠나는 시간이 됐다. 하지만 여전한 왕징 4구 코리아타운 모습
▲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왕징 중국 초창기 진출의 교두보였던 왕징은 이제 한국사람들이 떠나는 시간이 됐다. 하지만 여전한 왕징 4구 코리아타운 모습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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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진출, 이 도시들을 노려라

이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지역들을 추천한다. 베이징, 시안, 우한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데, 기존의 도시가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소비권역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난 십수년간 우리의 중국 진출은 베이징 왕징이나 상하이 홍치아오 지역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이 이곳은 위치적으로 주요 상권으로 급성장해서 한국인들이 밀려나고 있다. 왕징의 경우 한때 1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살았지만 지금은 3만명 전후로 보는 게 일반적인 추산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이좡, 통저우, 옌자오 등 베이징의 새로운 비즈니스 공간을 이야기한다. 국내 대기업의 진출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은 시안이나 지리적으로 중국의 중심에 해당하는 우한 등지를 새로운 진출 영역으로 소개한다.

3장은 '창업 절차와 유망 업종' 등을 소개한다. 비자문제부터 부동산 문제까지를 꼼꼼히 소개한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중국에서 창업할 수 있는 업종이다. 필자는 전통적인 업종인 한식당에서 태권도장, 화장품 소매, 스크린 골프장 등 실질적인 사업들을 제시한다.

중국에 가는 이들에게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이 아마도 어디에서 무슨 업종에서 창업할 것인가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국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서 비슷한 업종으로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 왕징의 한식당이나 안경점 등이 그랬다.

그런데 최근 방문한 베이징의 왕징이나 홍치아오 지역은 이제 내외부적인 이유로 대부분 정돈되어 가는 느낌이다. 또 개인이 이곳에 신규로 진출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가 된 상황이다. 반면에 충칭이나 난창 등은 1선도시면서 한국인이 많지 않아, 비즈니스의 기회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책의 마지막은 한국적 사고로 중국을 재단하지 말 것과 세계의 시장으로 바뀐 중국의 위세를 소개했다. 이 내용은 앞부분으로 가도 될 내용인데, 중국을 보는 데 중요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나라가 당면한 미래 먹거리가 무엇일지는 국가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가장 큰 관심사다. 구한말 대기근과 일제 강점으로 수많은 이들이 만주로 건너갔다. 개혁개방 이전 수많은 중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눈에 보이는 기회의 땅 홍콩으로 건너갔다. 현지에 대한 이해도 없이 사탕수수 농장의 일꾼으로 건너간 이들이나 징용으로 끌려간 재일교포들도 그들의 역사를 만들었다.

물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고향이 가장 편한 생활의 터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역사상 가장 밀접하고, 가까운 경제권으로 들어왔다. 큰 나라가 옆에 있는 것은 위협이 될 수 있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북유럽 강소국가들이 세계적인 부국이 된 것도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강대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있다는 것은 위협보다는 기회다. 올해는 1000만명의 중국인 여행자가 한국을 찾을 것이고, 역시 비슷한 숫자의 한국 사람이 중국을 찾는다.

'헬조선'의 탈피는 내부에서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결국 국민 하나하나가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4억 소비시장, 중국에서 창업하라'는 나이에 상관없이 중국을 알아가는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늦은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14억 소비시장, 중국에서 창업하라 - 중국 진출 창업 백과

안종경 지음, 황금시간(2016)


태그:#중국, #창업, #안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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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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