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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치매환자를 인간성이 파괴된 부정적 존재로 본다. 이런 시각 탓에 치매에 대한 이야기는 돌봄 노동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족과 종사자들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정작 치매에 걸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다. 인지능력이 파괴돼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들의 생각을 정책에 반영하겠냐는 입장이다.

물론 치매에 걸리면 의사표현이 예전처럼 원활하진 않다. 시 공간 개념이 없고, 단기 기억력도 짧아진다. 혼자 옷을 입거나 본인 신발을 찾아 신지 못 한다. 익숙한 거리도 혼자 다니기 어렵다. 아침에 인사를 했던 사람인데 점심에 만나면 처음 만나는 사람인 양 또 다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조금 전에 만났던 사람도 전혀 기억을 못 한다. 혼자 힘으로 일상생활을 꾸려 가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돌봄을 받게 된다.

그러나 경증 치매환자들은 치매에 걸렸다고 아무 생각이 없진 않다. 10월2일 노인의 날을 맞아 경증 치매환자로 살아가는 여성노인들의 이야기를 취재해 편지글로 재구성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하지 않는 치매노인의 특성을 고려해 이들과 오랜 세월 함께 지내며 마음과 생각을 자주 들었던 주간보호센터 관계자들과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다. 치매노인에 대한 논문도 참고했다.

과거로 여행을 떠난 할머니
 과거로 여행을 떠난 할머니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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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치매 걸린 할머니야. 치매 등급 5단계, 경증 치매 환자라고 볼 수 있지. 그런데도 세상은 내 목소리를 뺏더라. 노망들은 노인네가 무슨 생각이 있겠냐면서 말이야. 억울한 심정 헤아릴 길 없어 마음먹었어. 내 피 토하는 심정을 글로 남기겠다고.

그분(치매)은 갑자기 불청객처럼 찾아왔어. 어느 날 물건이 어디다 뒀나 생각이 안 나더라구. 이상했지. '피곤해서 그러나?' '이러다 말겠지' 생각했어. 그런데 계속 그러는 거야. '큰 병 아닐까' 불안하기도 하고, 그러다 혹시 치매 아냐 싶어 불안했어. 자식들 생각이 제일 먼저 나더라구. 내가 누워 있으면 우리 애기들이 얼마나 고생할까 싶어 잠도 안 왔어.

기분이 안 좋았어. 뭘 자꾸 잊어버리면 어디다 뒀나 생각을 자꾸 해봤어. 손녀가 "왜 그러냐"고 물으면 "아니야 그냥 앉아 있는 거야"라며 마음을 숨겼지. 그러면서 계속 어디다 뒀나 기억해 내려고 했어. 그런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더라구. 있는 노력을 다하여 기억해내려 애써도 기억이 날 것도 같고 나지 않을 것도 같은 거야.

창피했어.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에게도 말을 못했어. 가족에게도. 그런데 자꾸 겁나고 불안해 하니까 가족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더라구.

내가 자꾸 정신없게 구니까 우리 딸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어. 그런데 치매라는 거야. 청천벽력이었지.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더라구. 나는 당뇨랑 혈압약을 먹거든. 고질병이 두 개나 있었는데 하나 더 추가 된 거지.

어느 날 우리 딸이랑 아들이 어딜 데려가더라구. 할머니들이 많은 곳이야. 비슷한 할머니들이 많아서 재미는 있는데 얄미운 사람이 있어. 보기 싫어서 가기 싫을 때가 있는데 딸이 가야 한다고 하니 마지 못해 가긴 하지. 이런 때는 꼭 짐짝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내가 오락가락 하긴 해도 생각은 할 줄 알거든.

자주 서러운 마음이 들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나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해. 가족들과 소통이 안 될 때 주로 그래. 내가 한 말을 또 물어봐도 '치매 환자의 특성이지' 라며 수용해주고 따뜻한 눈길을 주면 나도 부드럽게 대할 텐데. 고맙다고 표현도 하구. 그런데 기억한 사실이 틀렸다고 자꾸 지적하면 나도 기분이 상해.

한 말 자꾸 또 한다고 아예 상대를 안 해주는 태도도 속상해. 대놓고 화를 못 낼 뿐이야. 이런 때면 나에게 따뜻한 정 한 번 주지 않았던 남편이 생각나 미워. 평생 그렇게 나를 외롭게 놔두더니 먼저 떠나기까지 했잖아. 너무 외롭고 쓸쓸하게 방치돼서 이런 병이 왔구나 싶은 게 원망하는 마음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다 컨디션이 좋아지고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삶에 대한 의욕이 다시 생긴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다 컨디션이 좋아지고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삶에 대한 의욕이 다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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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치매 가족들은 의사소통을 정보 공유로 생각하는데 '함께 즐기고', '마음을 공유하는' 것으로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봐. 아무래도 치매 환자는 정보 공유는 잘 안 되지. 인지기능이 떨어지니까. 그러나 감정을 공유하는 기능으로 의사소통을 이해하면, 같은 마음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소통을 할 수 있게 돼. 이렇게 소통이 되면 우리한테 정말 도움이 돼. 정부에서 무료로 가족들에게 이런 교육을 해줬음 좋겠어. 지금은 그런 교육이 전혀 없거든.

그래도 딸 하고 살아서 좋아. 전에는 아들이랑 살았는데 며느리가 너무 깔끔한 성격이라 힘들었어. 치매 걸린 정신으로도 '화장지는 휴지통에 버려야 하는데' 생각했다니까. 딸네 집으로 옮기고 나서 우리 딸이 토스트를 해줘서 침대에서 앉아서 먹는데 살 것 같더라고. 처음에는 순간순간 여기가 어디지? 싶어 무서워서 자꾸 딸에게 물어봤는데 시간이 지나나까 괜찮아지더라구.

이런 일도 있었어. 주간보호센터 선생님들 앞에서 책을 읽는데 한글이 생각이 안 나서 당황스러웠어. 얼마나 창피하던지. 이런 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어. 며느리랑 같이 살 때 그만 내가 큰 것을 모르고 휴지통에 쌌었는데 그때도 비슷한 마음이었지. 그런데 가끔씩 생각도 잘 나고 기분이 좋을 때가 있어. 이런 때는 좋아질 것 같은 희망이 보여 더 살아야지. 우리 딸 결혼하는 것까진 보고 살아야지 그런 마음이 들어.  

외롭고 불안할 때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행복해져. 부모님이 나를 참 이뻐하셨어. 과거로 여행을 떠나면 현실을 잊을 수 있으니 좋아.

치매노인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자식들에게 짐스러운 존재일까봐 괴로워. 우리도 자식들에 대해 걱정을 한다구. 기억을 놓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고 상태가 안 좋으면 차라리 죽어야지 싶다가도 그래도 살아서 우리 손주들 크는 것 봐야지 생각해.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사투를 벌인다고나 할까? 다양한 감정을 겪으면서 나름 치매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구. 

그러니까 초기 치매 노인을 위한 서비스들을 좀 해보라구. 그동안 치매 정보 자료들이 치매 초기와 말기 구분 없이 제시 됐었잖아? 이제는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동기 부여를 해주고, 잊어 가는 기능 등에 대해서는 가족들과 전문가의 지지를 통해 대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줬음 좋겠어.

특히 우리 여성노인들은 치매환자가 되면서 그 동안 돌봄을 주었던 역할에서 갑자기 돌봄을 받는 존재가 돼 버렸어. 오랫동안 돌봐주는 역할만 하다 보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게 조금 불편해.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일과 가족 내 역할을 자꾸 말로 인정을 해줬음 좋겠어. 그러면 자존감이 올라가서 치매가 진전되는 속도가 늦춰질 것 같아. 스트레스를 안 받고 좋은 감정을 많이 느끼면, 그보다 치매 환자에게 좋은 보약은 없다면서?

나도 품위 있는 노인으로 늙어 가고 싶다구. 내 부탁을 들어 줄 수 있겠어?

 ※ 참고문헌
<치매노인 여성의 체험 연구> <치매노인과 부양가족 간의 의사소통과 삶의 질과의 관계>, <치매환자 보호자들의 치매에 대한 태도 연구>, <지역사회 거주 노인의 인지장애, 치매에 대한 지식 및 태도>



태그:#노인의날, #치매, #치매노인, #주간보호센터, #치매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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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밥 대표이자 구술생애사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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