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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몇 주간 계속 부정청탁 금지법(속칭 '김영란법')에 대한 지적을 쏟아내더니 급기야는 '김영란법 때문에 돌잔치를 치를 수 없어 저출산 기조를 강화할 것'이라는 어이없는 이야기까지 했다.
 언론이 몇 주간 계속 부정청탁 금지법(속칭 '김영란법')에 대한 지적을 쏟아내더니 급기야는 '김영란법 때문에 돌잔치를 치를 수 없어 저출산 기조를 강화할 것'이라는 어이없는 이야기까지 했다.
ⓒ 매일경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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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몇 주간 계속 부정청탁 금지법(속칭 '김영란법')에 대한 지적을 쏟아내더니 급기야는 '김영란법 때문에 돌잔치를 치를 수 없어 저출산 기조를 강화할 것'이라는 어이없는 이야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저널리즘 훼손, 내수 부진, 저출산 등 사회의 각종 문제가 김영란법 때문에 생겨난다고 봐야 한다.

이들이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인지도 모르겠지만)의 차이를 몰라서 저런 '염치없는' 말을 쏟아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언론 권력' 행사에 가깝다고 본다.

기자의 임무는 사실관계, 흔히 말하는 '팩트'만 밝힌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사실의 연결, 그러니까 몇 가지 사실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밝히고 충분한 증거를 '연결'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사실을 전달하는 일'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을 연결하는 일, 바꿔 말하면 '빈칸을 채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론은 이 빈칸을 제멋대로 채우거나 의도적으로 빈칸을 누락하며 자신의 임무를 방기하기도 한다. 가령, "물대포를 쏘았다", "사람이 죽었다"는 두 개의 사실은 이미 거의 모든 사람이 안다. 그러나 국가폭력으로 백남기 선생이 쓰러지고 1년여의 사투 끝에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실'들과의 인과관계 논증이 필요하다.

이 죽음은 공식적으로 '병사'가 됐다. 주류 언론은 두 가지 사실 중 '물대포를 쏘았다'와 관련된 몇 가지 빈칸은 누락한 채 내보냈고 '사람이 죽었다'와 관련된 몇 가지 빈칸은 제멋대로 채웠다.

사인은 '병사'? 제멋대로 채운 빈칸에 두 번 죽었다

4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 빈소가 차려진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백남기투쟁본부와 유가족대리인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부검반대 의사를 재차 밝히고, 사망진단서 정정 및 서울대병원장 면담을 요구했다. 고 백남기 농민 부인과 변호사가 서울대병원장 면담을 요구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출발해 병원장실로 향하고 있다.
▲ 서울대병원장 면담하러 출발하는 백남기 유가족 4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 빈소가 차려진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백남기투쟁본부와 유가족대리인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부검반대 의사를 재차 밝히고, 사망진단서 정정 및 서울대병원장 면담을 요구했다. 고 백남기 농민 부인과 변호사가 서울대병원장 면담을 요구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출발해 병원장실로 향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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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를 쏘았다는 사실에서 언론이 누락하고 있는 것은 물대포를 사람에게 직접 겨누어 는 것은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고 그것은 시위대의 불법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류 언론은 이 사실을 누락한 채 '불법 시위가 있었다. (그래서) 물대포를 쏘았다'는 부실한 인과관계를 그대로 확정했다.

반대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이야기를 덧댔다. '물대포에 맞았다 - 쓰러진 뒤 각종 합병증에 시달렸다 -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흘러보냈고 병사로 쓰인 사망진단서와 함께 이 죽음은 ('물대포에 맞았다 - 쓰러진 뒤 각종) 합병증에 시달렸다 - 사람이 죽었다'로 완성되었다. 부검이 이같이 '일부의' 사실에 더 힘을 보탤 거라는 추측과 의심이 강하게 들기에, 지금 사람들은 기를 쓰고 부검을 반대하고 있다.

김영란법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 우스울 정도로 과하긴 하지만, 사실 새롭진 않다. 고백하건대 나도 예전에 콘텐츠 만들 때 몇 가지 사실관계를 누락한 적이 종종 있었다. 가령 어떤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할 때 그 피해자가 투쟁 과정에서 했던 실언 같은 건 굳이 싣지 않았다. 나 아니어도 많이 물고 뜯을 테니 나라도 좀 치사하고 싶었다.

해보니 뻔한 말이지만, 사실 그냥 그 빈칸을 덮기 위한 이 일사불란한 대단위 기획이 늘 버거워서 하는 하소연이다. '선동'이 뭐 별건가. 없는 애들이 자기들 맘에 안 드는 이야기하면 그게 선동인 거지. 사실이야 어쨌든 무슨 상관인가.

여하튼 악을 쓰고 난리 치고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겨우 아주 작은 균열이나 낼 수 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그냥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나라를 뜨고 싶은 생각뿐이다. 오늘도 유가족을 향한, 차마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생각까지 드는 말들을 몇 개나 봤다. 오롯이 그들에게만 향하는 고통이라서 더 미안하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어쩌겠나. 자리라도 채우고 있어야지. 외롭지라도 않게.

지난 9월 28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강제부검 영장을 법원이 발부한 가운데 고인의 유가족과 투쟁본부측은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딸인 백도라지씨는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절대로 닿게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고인의 부인과 딸 백민주화씨가 손을 잡고 있다.
▲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 손 닿게 하고 싶지 않다' 지난 9월 28일 오후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강제부검 영장을 법원이 발부한 가운데 고인의 유가족과 투쟁본부측은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딸인 백도라지씨는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에 다시 경찰의 손이 절대로 닿게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고인의 부인과 딸 백민주화씨가 손을 잡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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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부정청탁 금지법, #백남기 농민, #세월호 참사, #밀양 송전탑, #김영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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