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토요일에도 출근, 아이들과 외출하는 일이 귀찮아져

일과육아
 일과육아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지난 여름에 저는 약 석 달 동안 매주 토요일에도 출근을 했습니다. 지금 직장은 야근을 할지언정 주 5일 근무가 규정으로 명시되어 있는 곳이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주말에는 쉴 수 있었는데요. 평소와 좀 다른 업무를 맡게 돼서 매주 토요일마다 평일과 똑같은 시간에 근무를 하게 된 겁니다. 시간 내 마치지 못한 일은 집으로 싸 들고 오기도 했습니다.

2003년 근로기준법이 변경돼 2004년 7월부터 40시간,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었습니다. 벌써 10년도 넘은 이야기인데요.

당시 짜장면을 먹고 오후 3시쯤 퇴근하던 토요일 일상이 까마득하게만 여겨지는데, 지난 삼 개월 간은 매주 토요일마다 저녁 6~7시까지 풀타임으로 근무를 하게 된 거죠. 토요근무를 안 해본 것도 아닌데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과는 달리 그때와 지금의 저는 나이도 상황도 체력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가진 에너지는 무한정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제로섬(zero-sum)과 같아서 일과 육아라는 두 가지 저울 중 어느 한쪽의 무게가 무거워지면 다른 한쪽은 상대적으로 덜 신경 쓰게 되기 마련입니다.

토요일에도 출근을 했더니 온전히 쉴 수 있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밖에 없어 아이들과 외출하는 일이 귀찮아지더군요. 하루밖에 없는 일요일은 어딘가로 외출하기보다 간단히 먹고 쉬는 쪽을 선택하기 일쑤였습니다.

주말에 풀지 못한 피로 때문에 주중에 사무실에서 일하면서도 몰려오는 잠을 밀어내느라 애써야 했고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과 소통하기보다 얼른 하루 일과를 마치고 쉴 시간이 다가오기만을 바라게 되더군요.

하필이면 남편도 바쁜 업무가 시작돼 주중에 퇴근이 늦어졌고 제가 출근하지 않는 주말 하루에 출근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평일에는 마주치기도 바쁜 엄마 아빠지만 주말만큼은 외출을 통해 온전히 가족만의 시간을 보냈었는데, 저(엄마)의 주말 출근으로 그런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주중에도 피곤에 찌들어 짜증만 내는 엄마를 바라보며 아이들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절대시간이 부족해지자 욕구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한 겁니다.

초기에는 안 그랬는데 생전 안 하던 전화를 해서 아침 인사는 왜 안 하고 갔느냐 따지기도 하고 언제 퇴근하느냐, 오늘은 일찍 오느냐며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대개 아침에 아이들과 출근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서는데 일의 막바지에 몰려서는 시간에 쫓겨 아이들이 깨기도 전에 출근하곤 했거든요.

"오늘은 어디 안가?" 하고 묻는 아이들에게 "응. 안가" 라고 대답할 때마다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의욕이 없어지더군요. 평소 엄마 아빠의 취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던 미술관이었는데 "미술관이라도 가자"며 조르는 아이들에게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일도 아이도 모두 엄마를 원하는 상황,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

일과육아
 일과육아
ⓒ pixabay

관련사진보기


회사는 때때로 직원이 엄마(혹은 아빠)라는 것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시간의 전부를 원할 때가 있습니다. 마감기한이 정해진 일이라던가 물리적으로 많은 일이 쏟아지거나 사고가 발생할 때는 회사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무한정 길어지게 마련이죠.

일도 아이도 모두 엄마를 원하는 상황에 처해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로 난감하더군요. 그나마 이번 일은 마감이 정해져 있는 일이라 아이들을 다독이고 나 자신에게도 '이 고비만 넘기자'며 버텨낼 수 있었지만 앞으로도 종종 육아가 아닌 일에 온전히 시간을 쏟아야 할 상황이 반복되고 길어지면 저와 아이들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다행히 아이들을 친정부모님께서 돌봐주시고, 학교생활도 잘 하고, 부부가 동시에 회사에서 바쁜 것도 늘 있는 일이 아닌, 일시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만 육아를 둘러싼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 대개 엄마인 여성의 퇴직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인 것 같습니다.

저출산에 따른 근로인력의 부족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육아를 위해 소비할 수 있는 절대 시간이 부족하면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회적으로 경력단절 여성의 문제가 심각하고, 경험이 풍부한 인력의 부족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요. 최근 뉴스를 보면 일본에서는 일자리가 남는다며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생활 참여를 유도한답니다.

각종 일터에서 재택근무나 주 4일 근무 제도, 상사의 부하직원 자녀 도움 제도 등을 통해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한편 육아에 필요한 비용의 절반을 지원해주는 등 각종 제도가 도입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여전히 업무 숙련도가 높아 일을 빨리 마치고 퇴근하는 직원보다 야근을 일삼는 직원이 더 일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SNS가 활발해진 요즘에는 퇴근 이후에도 단체톡을 통해서 업무 지시를 받기도 하죠.

엄마든 아빠든 부모가 아이와 소통할 시간 부족에 대해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무관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경제발전이 한창인 시기, 너도나도 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한 절대 가난의 시기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지만 그때보다 훨씬 잘 살게 된 지금도 야근하는 직원이 직장에서 우대받는 문화 때문에 퇴근을 서두를 때마다 눈치가 보입니다. 직장인 대부분이 누군가의 아빠이고 엄마일 텐데 이런 업무 풍조에서는 가정과 일의 양립이 너무 어렵습니다.

신문기사나 육아 전문가의 말에서 종종 인용되고 있는 '육아의 양과 질적 상관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아이와의 애착 형성에 대해 질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라고 하죠.

이 말은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한 워킹맘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워킹맘들이, 아니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더라도 집에 돌아가서는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기 위해 속상한 마음, 힘든 몸을 감추려고 애쓰게 마련입니다.

저 역시 퇴근 후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면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등 아이들과 있는 시간에 충실하려고 얼마나 애썼던지요. 그러나 막상 아이들과 마주칠 절대 시간조차 부족함을 겪어보니까 부모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의 질과 양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습니다.

아무리 질적으로 우수한 양육태도를 지닌 부모더라도 아이와 함께 하는 절대 시간 양이 부족하면 아이에게 부모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될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 좋은 애착을 쌓기 위해 노력하면 그 시간의 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얘기는 혹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는 워킹맘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까요?

워킹맘들에게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사회적 공감론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시간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아이와 질 좋은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오늘 하루에 있었던 즐거운 일 한 가지쯤은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만큼은 확보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 중복게재합니다.



태그:#일과육아균형, #쌍둥이육아, #워킹맘육아, #70점엄마, #토요일출근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