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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줄줄이 감기에 앓아누워버렸다.
▲ 바쁜 엄마 아래 아이들 결국 줄줄이 감기에 앓아누워버렸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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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중학교에 주 4회, 하루 2시간씩 나가는 자유학기제 연극 수업이 끝나는 시각 오후 3시 10분.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와 가족처럼 지내는 동네 작은도서관으로 간다. 수업하는 동안 맡겨두었던(애가 물건도 아닌데 '맡긴다'라니! 그러나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다) 네 살 막내를 찾아(맡겼으니 찾아야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둘째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하원시간까지 아직 2시간이 남았지만 둘째가 낮잠을 자다 열이 오르고 숨 쉬기 힘들어 깨어났다는 전화가 온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몸이 약해 미열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둘째인지라 마음이 급하다.

물건도 아닌데 애를 맡기고 찾는 엄마

신호가 짧은 사거리를 오늘도 한 번에 건너지 못하고 신호에 걸려버렸다. 그때 빗방울이 후드득 차 앞 유리창에 떨어진다. 아침에 마당에 널어놓고 온 빨래 생각이 난다. 시계를 보니 여덟 살 첫째가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올 시각이다.

동생들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다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우산도 엄마도 없이 당황할 텐데……. 신호에 걸린 잠시 잠깐 급히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지만 아직 받지 않는다. 엄마가 우산 갖고 오기를 기다리며 학교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지…….

그 사이 신호가 바뀌고 다시 어린이집을 향해 서둘러 운전을 한다. 반나절 사이에 야윈 듯한 얼굴로 숨을 쌕쌕 몰아쉬며 둘째가 힘없이 간식을 먹고 있다. 미안한 마음에 업고 차까지 걸어 나왔다.

엄마 등에 업힌 형을 보자 막내가 나오지도 않는 기침을 하며 자기도 아프다 야단이다. 그러고 보니 막내도 콧물이 줄줄 흐른다. 친한 동네 이모들과 도서관에서 잘 지냈다고 하지만 엄마 없이 저도 눈치를 봤겠지, 같이 자는 형제인데 어찌 한 녀석만 감기에 걸리겠나. 두 아이를 차에 태우고 동네 소아과로 출발하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빠 회사 옆자리에서 눈치보며 졸기도 하구요
▲ 엄마가 수업하러 간 사이 아빠 회사 옆자리에서 눈치보며 졸기도 하구요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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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어디야? 왜 또 집에 없어?"

그동안 수업과 회의가 있어도 가능하면 첫째의 하교시간에 맞춰 집에서 기다려주려 애를 썼는데 요즘 일이 많아져 첫째를 혼자 집에 들어가게 한 날이 많았다. 미안한 마음으로 상황 설명을 해주고 냉장고에 있는 간식 찾아먹고 30분만 기다려 달라 부탁을 한다.

"응. 그런데 내가 집에 오자마자 비가 잠깐 오더라. 그래서 내가 빨래도 다 걷고 택배 온 것도 집 안에 다 들여놓았어."

"정말? 안그래도 빨래 걱정했는데. 고마워. 비는 안 맞았어?"

"빨래 걷을 때 잠깐 맞았어. 괜찮아. 빨리 와."

운전 8년이 되도록 아직도 시내 운전 차선변경이 어려웠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총알택시 수준으로 1,2차선을 넘나들며 짧은 신호를 한 번에 넘어 소아과에 도착했다.

감기 미열이겠지 했던 둘째는 소아천식이 심하다며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한다. 폐가 약한 나를 닮아 그런 것 같아 더 미안해진다. 약한 코감기이려니 했던 막내도 가래가 심하다며 항생제 처방이 나왔다.

집 뒷 골목에 주차를 하고 내리니 창문으로 첫째가 "엄마" 하고 부르며 내려다보고 있다. 교사였던 친정 엄마의 퇴근길을 기다리며 오후 5시가 되면 창문에 30분 이상 매달려 있던 어린 날 내 얼굴이 첫째 얼굴에 겹쳐진다. 얼마를 저런 얼굴로 창가에 서 있었던 걸까.

뒷베란다에 서서 한참을 엄마 마중 중이다.
▲ 엄마 대신 막내를 돌보는 월요일 오후의 첫째 뒷베란다에 서서 한참을 엄마 마중 중이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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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추석 때 우리 송편 만들 거야?"
"아니, 살 거야."

현관에 들어서 신발도 채 벗기 전에 첫째가 숨도 안 쉬고 추석 송편 타령이다. 제사가 없는 시가는 작년부터 추석은 우리 집에서, 설은 시가에서 보내며 식구들 나눠먹을 몇 가지 음식만 준비해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올해도 차례 같은 거 안 하지? 그래도 외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절하고 그런 건 하지?"

외출복을 갈아입는 내 곁에서 이것저것 자꾸만 묻는 첫째. 옷을 갈아입고 한숨 돌리며 그제야 첫째 얼굴을 보니 눈가가 젖어 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2학기 방과 후 수업 클레이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엄마가 농구를 신청해서 속상했느냐 물어도 아니라고만 한다.

엄마 없는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
 
그제야 창문으로 엄마가 돌아오는 길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의 얼굴이, 어린 날 나의 마음이 생각이 났다.

"엄마가 집에 없어서 맘이 좀 그랬어?"

참았던 아이의 눈물이 터져버렸다.

혼자서 바느질도 하지요
▲ 어느새 다 큰 첫째 혼자서 바느질도 하지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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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래서 그랬던 건 아니고... 혼자 간식 먹는데... 엄마가 너무 바빠서 이번 추석에 우리집만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아무데도 못 가고 그럴까봐... 그래서 눈물이 났어... 오늘 추석에 대해 배웠거든."

학교에서 추석을 맞아 풍성한 가족의 모습들을 배우고 왔는데, 집은 텅 비어 있고, 이제 여덟 살인 아이가 빨래를 걷고, 무거운 택배까지 들여놓고, 혼자 간식을 챙겨먹고 앉아있자니 눈물이 날 만도 하다.

오늘 무엇을 배울까, 오늘 누구와 놀까보다 오늘 급식이 뭔지가 제일 중요한 여덟 살에게 바쁜 엄마의 부재로 추석 때 씨리얼만 먹게 될까 얼마나 걱정이 됐을까.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꼭 끌어안고 추석 때 송편도 만들고(사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만들게 되었다) 갈비, 잡채 등등 맛있는 거 많이 해먹자며 진정을 시켰다. 맛있는 추석 음식 약속에 마음이 풀린 첫째는 언제 울었냐는 듯 방글거리며 품을 빠져나갔다.

짬을 내어 자전거를 타러 나왔다.
▲ 1주일에 겨우 한 번 짬을 내어 자전거를 타러 나왔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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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마흔, 멋지게 복귀할 수 있을까?

저녁 준비를 하러 씽크대 앞에 서니 간식 먹은 설거지까지 해둔 딸아이의 흔적이 보인다. 내년이면 막내도 어린이집에 가고 내 나이도 마흔. 육아로 쉰 8년간의 휴지기를 깨고 멋지게 복귀를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 준비로 올 가을부터 작은 수업과 공연을 시작으로 움직여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마음만큼 몸이 따라와 주지 않는다. 결혼 전엔 며칠 밤을 새며 글을 쓰고 연습을 하고 그랬는데, 늘 어딘가 엉성하지만 살림과 육아를 하는 주부의 시간 위에 수업, 회의, 교육, 공연을 빼곡하게 넣어 돌리다보니 밤 10시도 되기 전에 잠이 드는 날이 태반이다.

오롯이 혼자가 되어 글도 쓰고 공부도 해야 하는 밤 시간을 잠으로 보내버리니 체력은 충전이 되지만 정신은 매일이 방전이다.

안하던 일을 하니 그러려니, 한 달 쯤 지나면 이런 시간에 몸도 익숙해져 틈을 만들어 내겠지 싶었는데 첫째의 눈물을 보고나니 달려가던 마음이 덜컹 멈춰 선다. 아픈 두 아이도 바쁜 내 탓만 같고.

사실 떡볶이가 더 맛있어!
▲ 엄마 가끔씩은 이렇게 저녁을 먹어도 괜찮아, 사실 떡볶이가 더 맛있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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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바쁘면 아이도 바쁘다

엄마가 정신없이 바쁠 때는 아이도 숨 쉴 틈 없이 바쁘다고 한다. 그래 그렇겠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편안하게 아이와 눈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책을 보고, 산책 한 게 언제였더라….

엄마이기 이전에 나의 자리와 일, 꿈이 있었다고 미안함을 덜어보려 하지만, 과거와 미래 사이, 현재의 나는 엄마의 자리. 현재를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멈춰선 마음에서 바람이 슝 하고 빠져버린다.

일하는 엄마 뒷모습만으로도 아이는 자란다고, 나 역시도 워킹맘 아래에서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며 잘 자랐다고, 친정 엄마의 고단했던 젊은 날과 엄마 없는 시간을 견뎌야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위로하고 칭찬해보지만 지금의 쓸쓸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반쪽짜리 워킹맘도 이런데 위킹맘들은 얼마나 마음이 부대낄까?

세 아이와 철창 같은 아파트 육아 감옥에 갇혀 24시간을 보낼 때는 다시 일하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제 겨우 현관문 정도 열고 나왔는데 자꾸 뒤를 돌아본다.

엄마 없는 빈집에서 빨래도 걷고, 설거지도 하는 첫째와 아파도 약병 들고 씩씩하게 어린이집 가는 둘째와 두 세 시간은 엄마 없이 도서관에서 놀아주는 막내는 엄마 잘 다녀오라고 손 흔들어 주는데 말이다.

아이들은 자란다고 믿는다!
▲ 엄마 뒷모습만으로도 아이들은 자란다고 믿는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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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맛있는 거 사올게  
  
나를 위한 일이고, 복귀라고 생각했었다. 엄마 이전의 내 이름을 찾기 위한 길이었다. 그래서 힘을 내다가도 기운이 쏙 빠지고 그랬다. 그러나 엄마인 현재의 내가 가는 길, 아이들 손을 잡고 남편의 응원을 받으며 가야 하는 길이다.

출근하는 아빠들이 왜 "아빠 맛있는 거 사올게"라며 집을 나서는지 진심으로 헤아려진다. 다시 세우는 내 이름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해서 아이들 입에 맛있는 걸 넣어주는 게 더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몇 달 남지 않은 마흔 앞에 조급했던 마음이었다. 아이들 덕분에 잠시 빠진 바람, 더 채우지 않고 덜컹거리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가기로 한다. 복귀가 꼭 화려할 필요 있나,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애가 셋이면 이미 날개옷 입고 하늘로 가긴 힘들다.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말해야지.

"엄마가 열심히 일해서 맛있는 거 사올게!"

이 아이들과 함께, 이 아이들의 힘으로!
▲ 마흔의 복귀는 이 아이들과 함께, 이 아이들의 힘으로!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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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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